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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풍경의 깊이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이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멧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키 낮은 풀들과 나를 동일시한 철저한 감정이입이다. 김소월의 ‘산유화’ 中 ‘저만치 홀로’와도 상통한다고 본다. 나는 이렇게 떨고 있는데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다. 그러나 그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도 비로소 저물어간다고. 그 모든 고요 속에서 꿈결엔 듯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하며 둘러보니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무심히 스쳐 가는 것들이 이제야 또렷이 보인다. /김은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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