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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반기문의 불출마와 국민 의식

 

반기문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여러 가지로 우리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반기문 전 총장과 같은 공직자 출신 대선 후보의 불출마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1월 26일 고건 전 총리 역시 반기문 전 총장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 당시 유력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가고 있었다. 그런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2월 “고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말하며 고건 총리를 공격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건 전 총리는 “일 년 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 왔으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 부족함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정계 은퇴까지 했다. 고건 전 총리 이외에도 이수성 전 총리 역시 2007년 대선 직전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정통 관료 출신들은 대선 출마를 시도했다가 하나같이 중도에 그 꿈을 접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관료 출신들이 살아왔던 세계와 정치판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관료 사회는 상명하복이 중요한 반면, 정치판은 그야말로 상하 상관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이기 때문에 관료 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은 이런 무차별적 투쟁 상황에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반기문 전 총장 역시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그 이유로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됐다”며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는 점을 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정치판은 웬만한 강심장을 갖지 못하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또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고자 했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런 반 전 총장의 시도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갈지자 행보”로 깎아내렸다. 그리고 국민 여론마저 “당신의 정체는 대체 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 점은 상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자고 정치권은 거의 매일 외치고 있고, 국민들 역시 진영 논리는 신물난다고 외치고 있지만, 막상 정치 신인이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면, 정체를 밝히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와 정치권의 행동은 우리나라를 갉아먹고 있는 보수 진보의 갈등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우리 국민들 역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극명하게 된 셈이다. 즉, 국민들 역시 정치권의 진영논리에 매몰돼 진영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을 흔드는 데 일조했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여태 정치권만 욕을 했고,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보면서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정치판이 맨날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을 욕은 하지만 그런 정치권을 추종하고 있는 우리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반기문 전 총장을 떠나게 했고, 이제 남은 전형적인 정치인들 중에 한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전형적인 정치인이란, 결국은 권력 게임에 능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한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 사람이 과거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는 결국 우리 유권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잘못된 역사가 한 정권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감을 우리 모두는 느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 탓 그만하고 이제라도 좀 정신을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