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성
/이희섭
익숙한 길로만 가게 된다
낯익은 간판을 끼고 돌아가면
길이 늘 끌어당기지
가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것
발길을 돌려보지만 길이 휘청거린다
잠시 멈춰서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중심이 자꾸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 안에서 내면의 목격자가 되어간다
되돌아가면 누군가 뒤에서
위태로운 경적 소리를 낼지도 몰라
수평감각을 잃고 엎질러진 길 위에서
지나가다와 지나치다의 의미를 되새긴다
가려던 길이 오버랩되며 포개진다
지나온 궤적들이 드러눕는다
경적 소리를 내며 차량들이 그 길 위를
지나간다
지나친다
- 이희섭 시집 ‘초록방정식’
덜컥,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나만이 걸어야 할 나의 길인지 겁이 날 때가 있다. 한번밖에 갈 수 없는 길인데 혹 나의 길이 아닌 남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그저 관성에 따라 익숙하고 낯익은 방식대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목숨만큼 소중한 것들을 그저 지나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깜짝 놀라 멈추어 설 때가 있다. 잠시, 지나온 궤적들을 되돌아보기로 하자.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