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상처
/김선
벽이 못에 찔려있다
이삿짐 싸느라 액자들 모두 떼어내자
벽이 움찔한다
상처를 안고 있는 것들은 도무지 말이 없는지
췌장 속에 암을 키우다 마지막 가는 길
어린 자식 앞에서 끝내 울지 못하고
가슴만 꽝꽝 치던 시작은어머니
못에 찔려 철철 피가 나는데도
이 앙다물고 버티고 있다
벽은 제 몸에 박힌 못을 다 뺄 때까지도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는다
벽은 지금 살신성인 중이다
또 다른 상처를 안기 위해
둘러보는 텅 빈 반지하 단칸방에
환한 상처들이 꽃등불로 가득하다
- 김선 시집 ‘눈 뜨는 달력’ 중에서
이사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체험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하나의 시로써 승화시킨 시인의 눈길이 따뜻하다. 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내던 중, 못에 찔려 상처를 입은 벽은 아픔을 아무 말 없이 혼자서 감내하고 있음에 감탄을 한다. 특히, 이를 하나의 시상으로 연계하여 췌장암에 걸렸음에도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자식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가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 시작은어머니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날을 반추하며 과거 반 지하 단칸방에서의 상처들이 지금은 시인의 가슴속에 환한 꽃등불로 가득 차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