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약전(滿空略傳)
/윤제림
지구가 한 송이 꽃이란 사실을 유리 가가린보다 먼저,
닐 암스트롱보다 먼저 알고 온 사람이 있었다
가야산 수덕사에 그의 글씨가 있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송이 꽃
어디서 보았을까
달에서 보았을 것이다
월면月面이란 이름도 쓰던 사람이니까
1946년 어는 날, UFO를 타고
돌아갔을 것이다
아무도 보진 못했지만
그 탈것엔 온통
꽃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앞 유리창엔 행선지 표시가 있었을 것이다
만공滿空
-월간문학 / 2017년 4월호
世界一花란, 수덕사 당우의 편액이다. 간화선을 중흥시킨 근세 불교계의 고승 만공스님이 해방을 접하고 무궁화꽃에 먹물을 찍어 쓰신 말이라 한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니 지렁이 한 마리, 참새 한 마리, 심지어 원수까지도 부처로 보라는 가르침으로 그 뜻이야말로 대승적 불교의 진수라 하겠다. 시인은 그 내밀한 뜻에 그치지 않고 시적 상상력으로 그 출처를 궁금해 한다. 스님의 법명이 月面이니 달에서 보았을 거라는 유추와 사후에도 UFO를 타고 자유자재 달에 이르렀다는 설정, 탈것에 온통 꽃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리라는 상상이 시를 맛깔스럽게 하고 있다. 끝 연은 법호 滿空의 의미에 허공에 두루 가득 찬 법신이라는 의미를 덧입혀 행선지로 상정한 위트가 한 방 할喝처럼 꽂힌다. 이 반목과 질시의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종교적 가르침을 시를 통해 접하니 더 새롭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