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지난 30일 소방기본법 개정안(소방차의 현장 접근성 제고), 도로교통법 개정안(소방관련 시설 주변 주`정차 금지),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방염처리업자 능력인증제 도입) 등 3건의 소방 관련 안건이 의결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공동 주택의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되며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시키거나 진입을 방해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이 법안들이 상임위에서 계류된 지 14개월 만이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와 올해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연이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되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양 화재참사 때 문제점으로 나타난 스프링클러 설치 등과 관련된 법안은 빠져 있다.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참 답답하다. 정치나 행정 모두 꼭 큰 일이 벌어져야 호들갑을 떤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또는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적돼 온 ‘부족한 소방 인력, 열악한 장비’ 문제도 그렇다. 이번 밀양 화재 참사 때 유족들은 소방관들의 장비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7일 현장을 방문, 조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화재 현장을 보니 소방관들이 너무 고생하고 장비가 열악했다. 소방관이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게끔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당장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뒤 현장의 소방관들을 위로 격려하기도 했다. 소방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공포 속에서 화마와 맞서고 있다. 소방관들은 업무와 관련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참혹한 사고를 목격하면서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무기력, 불안을 겪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부족, 노후화된 장비 등 열악한 근무환경은 언제나 개선될지 모른다.
실제로 지난번 대형 참사를 빚은 제천시 전체 출동인력은 34명밖에 없었다. 운전요원 1명이 소방차 2대를 맡고 있단다. 제천시가 속한 충북 소방관 수는 정원의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는 불법 주차차량, 비상구 폐쇄행위 등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제일 급선무는 대형화재가 발생했을 때 즉각 출동해 대처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것이다. 정부의 빠른 조치를 바란다.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