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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화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들

 

또 다시 4월이 왔다. 터져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까운 꽃잎들이 비와 바람으로 흩날리는 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생명들은 어쩌면 저리도 연약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오늘은 모네의 1879년작 <카미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카미유는 모네의 부인이자, 어려웠던 시절 그의 곁을 지켜준 동료였고, 또 그의 모델이기도 했다. 32세의 여인은 깊은 한숨처럼 꺼져버렸고 그의 눈꺼풀과 입술도 죽음의 기운으로 눌러 앉았다. 회색과 보라와 노란빛들이, 날아다니는 꽃잎처럼 휘날리며 그녀를 감싸고 있다. 죽음조차 찬연한 빛으로 묘사한 모네다. 먼 훗날 모네는 카미유의 죽음이 찾아 온 순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색채의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고 회고했다.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한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1928) 빛이 얼마 들지도 않았을 것 같은 깜깜한 방 안에서 모네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화가라는 천직은 그로 하여금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가는 순간에조차 폭주하는 감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서 자신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었던 걸까. 죽은 이의 영혼은 부서지는 빛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고, 살아있는 이에게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겨졌다.

죽은 아내의 시신을 그렸다는 화가의 소식에 세간에서는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묵묵히 모네의 곁을 지키며 말없이 모델이 되어주었던 카미유였기에, 그가 임종의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나무라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카미유에게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모네의 그림이라고 하면 한편으로는 드레스에 모자, 양산 차림을 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는데, 대부분은 바로 카미유의 모습이다.

그녀는 짙은 눈썹과 순박한 인상을 지닌 여인이었다. 작품 안에서 카미유의 모습은 휘갈기는 붓 터치 속에서 선명함을 잃곤 하지만 그 짙은 눈썹만큼은 잘 드러나곤 한다. 1866년 <녹색 옷의 여인>에서도 녹색 드레스와 함께 그녀의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모네로 하여금 비평가들의 관심을 모으게 했고, 정물화와 풍경화에 주력하던 것에서 벗어나 인물화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1866년의 <정원의 여인들>에는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모두 카미유의 모습이다. 카미유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인내력을 발휘하며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해 주었다. 살롱전에서의 큰 성공을 바랐던 작품이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67년 일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모네와 함께 서있는 여인도 카미유이다. 이 시기에 모네는 물결을 탁월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68년 <점심식사>에서 나른하고 행복한 프랑스의 가정의 평범한 오후를 연상시키는 그림에도 모네의 가족이 등장한다. 가정집의 정원에 든 햇살과 그늘이 인상적인 72년 작 <점심>에도 멀리서 흰옷을 입은 카미유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테이블 주변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들 장의 모습이 보인다. 73년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에서는 카미유가 양귀비꽃이 흐드러진 들판을 가로지르며 장과 함께 걷고 있다.

75년 <일본 여인>에서는 카미유가 붉은 기모노를 입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은 천진하지만 이 무렵 모네와 카미유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병들기 시작한다. 같은 해에 완성한 <파라솔을 든 여인>에서도 아들 장과 함께 카미유가 등장한다. 녹색 파라솔을 들고 레이스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바람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카미유는 풍경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모네에게 그림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그녀가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라도 되는 양 풍경 속에 카미유를 열심히도 그려 넣었다. 에밀 졸라는 그런 모네를 일컬어 “화려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를 덧붙이지 않고는 풍경화를 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카미유를 떠나보낸 뒤 모네의 작품에서는 그전처럼 인물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두 번째 부인 오슈데와 의붓딸의 모습을 종종 그리긴 했지만 매우 적은 수일뿐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은 카미유가 죽은 뒤에나 찾아왔고 이때부터 모네는 시시각각 연출되는 빛의 드라마에 좀 더 충실함으로써 순간과 영원이라는 테마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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