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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젤소미나

젤소미나

/강영은

젖은 기억은 언제나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네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 삼류 극장 자막 위에 내리는 비가, 눈 속에 내리는 비가,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기차를 기다리네 영화가 끝나도 사람들이 흩어져도 기차는 오지 않네 오지 않는 시간이 빗방울을 굴리네 빗방울 바퀴가 덜거덕 덜거덕 토마토 씨를 심네

가엾은 토마토야, 너의 낡아빠진 북을 잡고 세 번 돌아라. 네 슬픔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시집 ‘상냥한 시론’ / 2018

 

 

 

 

오후 2시, 마르고 건조한 지중해의 바람이 구름을 몰고 온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에는 아프리카 먼 바다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이국적인 슬픔 한 덩어리가 박혀 있다. 삶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속해야 한다. 그때 시인은 비테르보 해안의 작은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가 몰고 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간이역에 들어선다. 시인은 역사 내부에 배치된, 기묘한 중세풍의 건축물과 장식품들을 보면서 비현실적 이미지들이 펼쳐놓은 몽환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 틈에 ‘젤소미나’의 가늘고 묵직한 곡조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짐승 같은 잠피노에게 팔려간 젤소미나, 어딘가 모자라지만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처녀의 테마곡이 시인의 입속을 계속 맴도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에도, 삼류 극장 자막에도, 눈 속에도, 흑백의 낡은 마차에도 비는 내리고 시인의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문득, 그는 이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낯선 이국에 던져진 불안일까. 아니면 이국에서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실존에 대한 비애 때문일까. 시인은 이 슬픔을 가져갈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젤소미나의 운명처럼 희망의 기차는 오지 않는다. 시인이 나지막이 노래를 이어가자 젤소미나가 다가와 “낡아빠진 북을 잡”고 “슬픔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시인과 함께 노래 부르기를 시작한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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