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잘있노라 하시오나 말씀이 미덥지 아니하오니 염려만 무궁하오며 부디 당신 한 몸으로만 알지 마옵시고 이천리 해외(海外)에 있는 마음을 생각해서 십분 섭생을 잘하여가시기 바라오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56세이던 1841년 10월1일 귀양지인 제주도에서 예산에 있는 부인 예안(禮安) 이(李)씨에게 보낸 한글편지를 풀어쓴 것이다. 사대부의 권위 같은것은 찾아볼 수 없고 병을 앓는 부인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담겨있다.
부인 이씨는 병약하여 지병이 있었고 40대 중반이후 심해져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에 있을 당시 사망했다. 1842년 11월 13일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그 다음날인 14일과 18일 연달아 편지를 보냈다.
"이 동안은 무슨 약을 드시며 아주 몸져 누워 지냅니까. 간절한 심려로 갈수록 걱정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부고는 다음해 1월15일에야 도착했다.
추사가 남긴 한글편지는 총 40통이 알려져있다. 건국대 김일근 교수가 이끄는 연구모임 멱남서당 소장 원본편지 27통, 개인소장 원본편지 5통, 그리고 원본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사진본 8통이다.
이 편지들은 25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한글 편지」전에서 공개된다.
추사의 한글편지는 부인 사후 며느리에게 보낸 마지막 2통을 제외하면 38통 모두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30대, 40대, 50대에 걸쳐 골고루 발견되고 있으며 편지를 쓴 장소 또한 부친의 임지에 함께 가느라, 또는 추사 자신의 유배 때문에 부인과 떨어져살았던 서울과 예산을 중심으로 대구 평양 제주도 등으로 다양하다.
추사의 한글은 자모의 점획이 고전체와는 달리 양식적으로 궁체의 범주에 속하고 흘림체가 주류를 이루고있다.
필획의 태세(太細 굵고 가늠)와 곡직(曲直 굽음과 곧음)의 대비, 방필(方筆 모난 획)과 원필(圓筆 두리뭉실한 획)의 조화, 용묵(用墨)에 있어서 필속(筆速)에 따른 윤갈(潤渴 먹의 퍼짐에 있어 진하고 마른 정도)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측면은 추사의 한자 필법과도 동일하다. 문법적으로는 구어체 중심의 적절한 예법이 드러난다.
한글편지에는 개인의 일상생활 뿐 아니라 당시의 풍속이나 사회상, 의식주와 풍토병도 나타난다.
아들 손자의 탄생, 혼사와 회갑, 가족의 죽음이나 제사 등 종손으로서 본가와 처가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고 있는가 하면 아내의 소식을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조급함, 의복문제, 노환과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평양 기생과의 염문을 해명하는 글, 까다로운 입맛때문에 서울에서 제주까지 먹거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글, 며느리에게 제사지내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당부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편지들은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없이 볼 수 있고 19세기 조선 사대부가의 보편적인 삶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
6월5일 오후 1시부터는 서예박물관 문화사랑방에서 추사의 한글편지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린다. '한글편지를 통해 본 추사 김정희'(김일근, 건국대), '추사 한글편지의 국어학적 특징'(황문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언간을 중심으로 본 필사 격식과 표지에 대하여'(이종덕, 서울시립대)등이 발표된다.☎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