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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관계 잇기와 인생의 소중한 가치

 

 

 

스무 살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의 일이다. 1년 간 자취를 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 때 자취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이후 양부모가 되었고, 나는 그분들의 양아들이 되었다. 지금 시대는 양부모 양아들 같은 관계는 드물다. 남을 내 집에 들여서 먹이고 재우고 하는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할 수 없다. 1980년대는 사람과의 정이 남아있던 시절이다.

입시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학원을 다닐 때, 후배를 통해서 알게 된 지인은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주신다고 했다. 방 한 칸 원룸을 얻으려고 해도 매달 월세를 내고, 계약 관계를 맺어야 하는 지금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에 사는 것은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일이다. 서로 불편하고 귀찮은 일도 생긴다. 같이 자고 밥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던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다.

그 분에게는 아들 하나, 딸 셋이 있었다. 나중에는 자취집 주인아줌마가 “아침에 쌀 한 공기만 내놔라. 같이 씻어서 밥 해 먹자”라고 하셨다. 나는 쌀을 사다 드렸고 밥을 해주셨다. 어차피 밥 하는 김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된다고 하면서 밥을 함께 먹는 사이가 됐다. 밥 같이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한다. 나는 그분들의 식구, 아니 나중에는 자식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들이 하나이니 둘이 서로 의형제를 맺으면 어떻겠냐”고 제안까지 하셨다. 고민이 되었다. 누군가의 아들이 되는 것은 당연히 부모를 또 모시는 일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나는 수양아들이 되었다. 두 분은 나에게 두 번째 부모님이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맺어졌다.

1년 간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 집, 내 부모가 되어 주셨던 분들과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계속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내자고 하였다. 일 년이면 일곱 여덟 차례 그 집에 드나들면서 가족처럼 살았다. 내가 수양아들이 된 데는 어떤 운명이 있었던 걸까. 당신 아들이 혼자니까 수양 아들 삼자고 했던 말은 그대로 이뤄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월이 흘러 내가 그분들의 외아들이 된 것이다.

2008년도의 일이다. 수양아버지는 “아들이 백혈병으로 입원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전화하셨다.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고, 친동생처럼 여겼던 그는 마흔 일곱 세상을 떠났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친아들을 잃고, 나를 더욱 아들처럼 의지하게 된 양부모님께 잘해드리려고 애썼다. 두 분은 30년도 훨씬 전에 왜 나를 수양아들 삼자고 하셨던 걸까. 혹시 미래의 일을 예견하셨던 건 아닐까. 지금 그 양부모님은 아쉽게도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셨다.

정이 메마른 시대라고 한다. 자식 부모를 살해하는 일,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 등이 생기는 무서운 세상이다. 내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남의 자식을 어떻게 키우냐고 말한다. 하지만 양부모님은 내게 한없는 사랑을 베푸셨다. 어떤 대가도 필요하지 않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싶어진다. 조건을 달지 않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어진다. 왜 우리는 꼭 혈연적인 관계로 중요성을 판단할까. 피를 나누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관계 맺는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할 때 되돌아오는 것은 너무도 크다. 내 마음속에 간직된 사람도 소중하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 내가 간직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자주 연락하고, 정을 나누고, 소중함을 표현하고,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