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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난세를 타개하는 정치 교과서-한비자(韓非子)

 

 

 

한비자(韓非子)는 기원전 230년경에 한비(韓非)가 쓴 법가사상(法家思想)의 이론과 그의 후학들이 정리한 논저로 55편 2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진나라 시황제에게 제공한 반(反) 유가(儒家)의 선봉이자 법가 이론의 총괄서로 평가받는다. 원래 한비(韓非)는 한자(韓子)라고 불렸으나 당나라 때 유가(儒家)의 석학인 한유(韓愈)도 한자(韓子)로 불리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비자로 구분하게 되었으며 저서 또한 그의 이름을 따서 한비자(韓非子)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한(韓)나라 귀족 출신으로 유가사상(儒家思想)을 전수받은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한계와 봉건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유가사상을 승계하지 않고 법가의 사상을 따르게 되었고, 그의 법가사상은 후에 진시황에 의하여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졌다.

전국시대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심했던 혼돈의 시대로 구분되고 있으나 역설적이게도 사상적으로는 황금기이기도 하다. 제자백가라고 하는 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서로 다투어 자기의 설(說)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한다. 이들 여러 설(說)가운데 가장 정치적으로 비중이 있고 영향을 미친 사상이 유가와 법가였다. 유가는 공자와 증자, 맹자로 이어지는 인의(仁義)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사상이고, 법가는 상앙, 신불해를 거쳐 한비에게 계승된 사상으로 법의 통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사상이다.

진시황은 전제정부(專制政府)에 관한 한비의 탁월한 이론에 감명받아 국가를 통일한 후 그의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였으며 지배기술(支配技術)에 관한 교과서로 삼았다. 그러나 진시황의 통치는 인의니 관용이니 하는 것은 일고의 여지도 없이 배격하고 냉혹하고 까다로운 법치만을 세웠기 때문에 진(秦)나라는 겨우 2대만에 멸망한 제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또 시대가 변천될수록 한비자가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인간이 공동생활하는 사회에서는 일정한 질서가 없이는 삶이 불가능하다. 서로가 지켜야 하고 지키도록 강요해야 할 일정한 표준이 바로 법이다. 그러므로 2천 수백년 전에,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이며 법이라고 주장한 한비의 사상이 근대 정치이론에 더 부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의나 도덕에 의존하여 국가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사회의 시민은 없을 것이다.

한비자는 안위편(安危篇)에서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길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위정자가 국가를 위태하게 몰아넣는 길은 “첫째, 법을 집행함에 손이 안으로 굽듯 자기편에게 맞게 집행하는 것. 둘째, 법을 법 밖으로 확대하여 임의로 해석하는 것. 셋째, 남에게 해로운 것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 것. 넷째, 남의 화란(禍亂)을 즐거워하는 것. 다섯째, 남이 행복해야 할 것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 여섯째, 아까운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아깝지 않은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것” 등이다. 위정자가 이렇게 하면 “백성들은 상실감에 빠지고 군주(君主)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죽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군주의 명령은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환란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지(豫指)한 한비자의 능력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소위 ‘코로나19’가 유입된 지 수개월이 지나도 병세(病勢)가 완화될 기미는커녕 정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연일 역(疫)의 공포에 떨며 세균과 사투를 벌이고 있으나 정치는 실종되었다. 국민을 위무하고 안정을 꾀하기보다 총선정국에서 자기 진영에 유리한 꼼수를 생산해 내기가 바쁘고, 상대를 향한 손가락질에 몰입하고 있다.

“외교에 지혜를 게을리하고, 안으로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국가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한 한비자의 경고를 위정자는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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