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2 (일)

  • -동두천 20.8℃
  • -강릉 18.0℃
  • 구름많음서울 22.7℃
  • 흐림대전 22.9℃
  • 흐림대구 20.9℃
  • 흐림울산 19.7℃
  • 광주 23.0℃
  • 흐림부산 20.6℃
  • -고창 23.0℃
  • 제주 23.1℃
  • -강화 21.0℃
  • -보은 21.4℃
  • -금산 21.7℃
  • -강진군 21.9℃
  • -경주시 19.8℃
  • -거제 20.6℃
기상청 제공

[고서의 향기]매점매석의 개론서-허생뎐(許生傳)

 

 

 

허생전(許生傳)은 연암 박지원의 문집인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수록된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있는 한문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연암이 중국에 연경사절단(燕京使節團)으로 가서 열하로부터 북경으로 돌아오던 중에 옥갑(玉匣)이라는 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동행했던 여러 비장(裨將)들과 주고받은 설화(說話)들을 이야기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지은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박지원이 중국에 다녀온 것이 1780년(정조4)이고 열하일기를 기술한 것이 1793년이므로 이 허생전도 그때쯤 쓴 것으로 보인다.

<연암집(燕巖集)>은 박지원이 죽은 후에 아들 종채(宗采)가 편집한 57권 18책의 필사본으로 전해져 왔는데 그중 별집에 있는 열하일기 중 <옥갑야화>에 있는 허생전 이야기는 본래 제목이 없이 한 부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편의상<허생> 또는 <허생전>이라 부른다.

이 이야기는 실학 사상가인 연암이 허생이라는 일사(逸士)를 동원하여 주인공이 벌이는 상행위를 통해 18세기 당시 허약한 국가의 경제구조를 비판하고 양반들의 무능함과 허위적인 의식을 풍자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대강 한양 남산골에 사는 허생이라는 선비가 평생 글만 읽고 아무런 경제적인 책임이 없이 지내므로 가계를 떠맡고 사는 아내가 이를 보다 못해 ‘돈을 벌어 올 수 없다면 도둑질이라도 해오라’는 타박을 하였다.

이를 견디다 못한 허생은 집을 나가 장안의 거부(巨富) 변씨에게서 일금 만 냥을 빌리고 이를 밑천으로 장사를 하여 거금을 벌어들인다.

이 돈으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 도적들을 모아 갱생의 길을 열어주는 등 사회활동을 하고 빌린 돈 만 냥을 십만 냥으로 불려서 갚는다는 허생의 상행위가 주된 내용인데, 허생이 장사하는 기본 방침은 매점매석(買占賣惜)이다.

이야기 속의 한 장면을 보자. 변씨로부터 만 냥의 돈을 빌린 허생은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안성이 경기와 호서 사이에 있고, 삼남의 길목이기도 한 지역적 이점을 노려’ 안성(安城)으로 가서 머물면서, 대추, 밤, 감, 배 등을 모조리 두 배씩 값을 쳐주고 사들였다.

그렇게 허생이 과일을 다 사들이자, 온 나라 백성들이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자, 허생에게 두 배씩 돈을 받은 과일 장수들이 도리어 열 배씩 돈을 내고 사 갔다.

허생은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일만 냥으로 온통 재화를 휘어잡았으니, 이 나라 경제의 깊고 얕음을 알 만하구나.”라고 하였다.

또 그는 칼, 호미, 베, 명주, 솜 등을 사서 제주도로 가서 모두 말총과 바꾸어 거두며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나라 안의 망건값이 열 배로 뛰었다.

18세기의 허생이 써먹었던 매점매석 행위가 현재 코로나 정국을 틈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평소에는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마스크가 갑자기 품귀현상을 빚고 그나마 살 수 있는 마스크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국민들이 방제 마스크를 사지 못하고 일반 면 마스크를 빨아서 재활용하는 상황이 되자 급기야 정부에서 배급제로 공영 마스크를 공급하기에 이르렀고 매점매석 할 경우에는 물가안전에 관한 법률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정부나 국민이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민들은 마스크를 사지 못하는 불편이나 실망보다도 21세기에,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하고 있는 절망감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일만 냥으로 시정(市井)의 상권을 쥐락펴락하며 “이 나라 경제의 깊고 얕음을 알 만하다”고 비웃던 허생의 신랄한 비판을 오늘 다시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