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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생각의 굴레 너머

 

 

 

그는 눈과 목이 마르다. 특히 밤에는 너무 말라서 잠이 깬다. 눈에는 인공눈물과 눈 보호제를 포함해서 4가지 종류의 안약을 넣는다. 1년 몇개월째 원인과 치료법을 찾기 위해 온갖 검사와 병원순례를 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검사상 이상은 없으나 일상에서는 너무 힘든 상태, 그냥 가끔이 아니라 매일 밤 여러 번 깨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기에 더욱 힘들다. 수분이 부족하니 물을 자주 드세요.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물을 많이 먹기도 힘들다. 물만 먹으면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그렇게 화장실을 여러번 가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문진을 거듭할수록 물 한잔 먹기가 부담스럽고 넘치는 물량에 간단한 식사로 때우며 저녁 늦게까지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난 2월 코로나 19로 전국이 움츠러들기 시작할 때 내가 마주한 15년차 베태랑 택배기사의 모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바빠진 몇 개 안되는 직업군 중 하나, 나날이 느는 물량에 체력이 소진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인간은 타인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서 나를 넘어 다른 세계로 통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한의사인 나는 다른 삶들에 닿는다. 몸의 고통은 우리의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여러 물음들, 이어지는 일상에 대한 질문 속에 알게 된다. 편리하게 받았던 택배 한건당 택배기사의 몫은 몇백원(2018년 3월 기준 평균 738.5원)이니 개인사업자로 생계를 위해서는 숨가쁘게 종일 뛰어야 한다. 물량이 많은 날은 저녁 먹을시간도 거의 없이 밤 10시가 되어야 끝난다. 고객들의 재촉과 요구에 수시로 마음이 쫓긴다. 고객의 무례한 재촉과 요구에도 화를 낼 수 없다. 직접적인 평점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업무량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티칭하지만 택배업체의 관행, 조직체계에서 그가 얼마나 표현의 여지가 있는지, 어떤 목소리를 낼수 있는지, 또한 그가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의 무게감 등등에 대한 디테일에 관여할 수 없기에 최대한 치료에만 묵묵히 열중할 때 그 말을 매스컴이 대신 보도한다. 한 배송업체의 직원이 죽었다. 잊을만할 때 또 다른 택배기사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또 보도되었다. 먼 타인의 죽음인데 멀지 않게 느껴지는 아픔은 무엇일까?

몸은 자율적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음양의 조화라는 것은 그런 동적평형상태를 의미한다. 당신은 내 근육이 잘 이완되어있는지 침이 잘 나오고 있는지 눈물은 적당히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지 체크하는가? 우리 몸은 우리의 의식의 범위 밖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활동을 한다. 그 조화를 이루는 힘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 살면서 연이은 야근으로 몇날밤을 새고 또는 새로 시작한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느라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과로를 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쫓기면서 지낼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버틴다. 생명은 생각보다 힘이 크다. 하지만 신축성이 최고로 좋은 고무줄도 너무 늘리면 끊어지듯 어느 순간 몸은 자율성을 잃어버린다. 회복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위의 환자는 4개월 가량의 전방위적 치료를 받으면서 생명력, 증상은 조금씩 회복중이다. 허나 한의학적 치료로 고군분투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에서 김누리 교수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기착취가 심한 나라라고 말한다. 타인이 나를 착취하면 저항의식이 생길수도 있지만 내가 나를 착취하면 죄의식이 생긴다고 한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해, 내가 더 잘하면 돼, 내가 못해서 그런거야, 내가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몰아붙이는 끝에 세계 자살률 1위가 있다고 한다.

언젠가 외부에서 주어졌고 생존에 필요해서 몸에 배어버린, 지금은 내면화되어 있는 규범들, 믿음, 생각들은 지금은 내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때때로 느낄 때가 있지 않는가? 깨달음과 실천의 간극을 하루하루 좁혀가길 기도하며 한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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