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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사고 실험- 죽음을 기억하기

 

철학에서 사고실험이라는 수행방법이 있다. 철학적 개념이나 이론의 적합성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특정한 가정과 상황을 설정하여 생각으로 실험해보는 작업을 말한다.


상아탑속에 갇혀버린 철학을 현실로 불러내어 삶의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철학상담에서 김선희 교수는 사고실험을 방법론으로 제안한다. 이는 내담자로 하여금 철학적 사고실험에 참여토록 함으로써 자신의 사고구조를 개선하도록 돕거나, 내담자의 사고에 새로운 통찰과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고정되고 폐쇄된 사고체계에 전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 알수 없는 이유로 내던져진 본질적으로 삶에 대해 순진한 인간은 대게는 어리석고 실수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발생한다. 한나아렌트는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과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과 기대를 벗어나는 경우들이 많아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소재로 둔갑한다. 몸과 마음의 증상들은 복합적인 삶의 상황들과 얽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치유의 과정에서 이런 상황들을 잘 살펴서 정돈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 나는 사고실험을 적용하곤 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질문은 현재에서 멀리 떨어져서 지금을 조망할수 있게 해준다.  


당장 죽어도 좋은가? 그렇지 않다면 왜 당장 죽어선 안되는가?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도록 요청하는 삶의 이유찾기 사고실험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빨간약을 먹으면 죽고 파란약을 먹으면 산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은지 깊이 생각해 본다. 그런후 죽음을 피하고 살기 위해 파란약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의 이유는 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다음 나는 한가지 질문을 더한다. 당신에게 남은 삶이 3년이 있다면 시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간단한 이 두가지 질문에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가슴으로 치밀어오르는 화병증상으로 내원한 임신 9주차 임산부는 친정부모님과 시간을 같이 많이 못보낸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면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면서 자신도 예상치 못한 눈물을 왈칵 쏟는다. 어렸을때부터 10년 넘게 열심히 운동만 해오다가 왜하는지 의미를 모르겠다며 내원한 운동선수는 여행다니고 요리를 하는 평범한 휴식을 원함을 알게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오래전에 작성했다는 공개된 유언장을 보건대 꼼꼼히 작성된 글속에 자신의 죽음의 상황을 직면해보며 원하는 삶을 그려보았을 분이었을 것 이라고 생각된다. 짐작컨대 그때 꿈꾸었던 죽음의 모습은 지금과 같진 않을 듯 한데 성희롱을 범죄로 규정하게 한 역사적인 재판의 변론을 맡았고 여성인권, 시민운동의 대명사였던 그가 성추행 고소장의 대상이 된것은 왜일까? 세월과 권력의 마성으로 유언장의 기억이 희미해진걸까? 아니면 그마져도 애초에 법정에서와 일상에서의 인권의 기준이 달랐던 것일까?


죽음속에 모든 삶의 사건들은 소등이 된다. 빛을 잃어버린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삶의 시간 뿐만아니라 평생 주장했던 정의도, 인권과 여성주의도 빛이 바래버렸다. 삶은 참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예전에  한번 보았던  고인의 소탈한 웃음이  쓸쓸히  떠오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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