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大學)’은 BC 43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작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후한 때의 경학자인 가규(賈逵)에 의하면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가학(家學)의 민멸(泯滅)을 우려하여 ‘대학’을 지어 경(經)으로 하고, ‘중용’을 지어 위(緯)로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정치철학과 유학(儒學)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경전이다.
그래서 ‘대학’은 천하를 이끄는 군주나 위정자(爲政者)가 익혀야 할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전문(全文)이 1천750여 자(字)의 짧은 글이지만, 송나라 때에 주자학이 일어나면서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 순으로 불리듯 ‘사서(四書)’의 필두에 자리하고 있다. 주자가 쓴 대학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大學(대학)이란 책은 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법(法)이다. 하늘이 백성을 내렸을 때부터 이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부여(賦與)해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기질(氣質)을 품수 받은 것이 혹 같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모두 그 본성에 지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알아 그 성품을 사람마다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하여 능히 그 본성을 다하는 자(者)가 백성들 사이에 나오면, 곧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만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하게 하신다” 하였다.
‘모든 백성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본성은 같으나 그 기질이 다 같지 않으므로 하늘이 내린 현자에게 만백성을 깨우치게 가르치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백성을 새롭게(新民) 할 군자가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조선의 왕들은 대학을 제왕의 정치 귀감으로 편찬하여 어전에서 강의하게 하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인간은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통하여 수신(修身)해야만 제가(齊家)를 이룬 후에 치국(治國)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백성의 지도자, 즉 군자(君子)에게는 혹독한 자기관리와 정심(正心)을 요구하고 있다. 수신(修身)의 귀결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毋自欺)이라고 정의하면서 그러기 위해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조심하는 것(愼獨)이라고 하였다. 옛 선조들은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그림자에게 조차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하며 악(惡)을 행하는 것은 악취를 싫어하는 것같이 하고, 선(善)을 행하는 것은 좋은 색을 좋아하는 것 같이하는 마음 상태, ‘꺼림직한 것 하나 없는 스스로 만족한 상태(自謙)’를 군자가 수신해야 하는 덕목으로 삼았다.
‘대학’에서는 “소인(小人)은 남이 안 보는 곳에서는 못하는 짓이 없고, 군자(君子)가 볼 때는 몰래 그 못된 짓을 감추고 잘난 짓만 드러내려 한다”며 소인의 위선을 비판하였다. 이에 대하여 증자는 “열 눈이 보고 있으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이니, 그 얼마나 엄한 것인가” 하였다. ‘대학’의 가르침은 또 “군자는 자기의 마음으로 남을 헤아린다”라고 하였다. 이는 윗사람이 자신에게 싫은 일을 시키면 자신도 아랫사람에게 그가 싫어할 일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는 사회운동가로, 인권변호사로,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온 대한민국의 탑 반열에 있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과 시정(市井)에 알려지고 있는 추문은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충남 도백(道伯)에 이어 부산시장, 서울시장에 이르는 연속된 지도자들의 성추문은 이 사회의 이면에 있는 도덕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서 더욱 그렇다.
이 땅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자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 ‘꺼림직한 것 하나 없는 스스로 만족한 상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