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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칼럼] 누가 진중권을 지식인이라 하는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심설당) 도입부에 나오는 이 문장은 아름다워서 책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하지만 이를 역사적 실존의 문제가 아닌 인문적 상상력의 문제로 보면 쉽게 와 닿는다.

 

별빛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이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가 있었다. 몇 년 전 작고한 전 한양대 리영희 교수는 그런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책과 칼럼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 빽빽하게 차 있는 사실 관계, 명확한 인과 관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메시지. 판금도서였던 그의 명저『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는 군사정권을 폐부에서 균열내기에 충분했다. 거짓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해 당시 한국 사회가 우상을 걷어내고 이성을 회복하는데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즈음 기성 언론이 간판급 지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 진중권, 서민, 강준만, 홍세화씨 등은 그 위상에 부합할까? 리영희 교수가 활동했던 군사독재정권 시대와 다양성에 토대를 둔 다원주의 시대인 지금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지식인에 관한 정의를 달리해야 하는 걸까?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의 『지식인의 종말』(예문)에 서 말하는 대중과의 단절, 현실감각 상실, 도덕적 자아도취, 예측 남발, 임기응변 등을 아예 지식인의 특징으로 인정해야 할까?

 

그러나 이 질문들은 SNS에 자리잡은 지식인들 앞에서 부질없다. 그들은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는 진실을 드러낸다. 고 리영희 교수처럼 우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 우상은 무엇일까? 진중권 씨 등이 겨냥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 질문은 우리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정부 여당에 있는가? 기성 언론과 검찰·법원에 있는가? 이는 다시 한 질문으로 요약된다. 우리 사회의 물적 토대를 움켜쥐고 있는 기득권층의 논리를 누가 대변하고 있는가? 선택적 보도와 선택적 수사·기소, 선택적 판결 등은 명백한 힌트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도 진중권 씨 등은 그 우상 속에서 집권층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SNS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 예술가, 특정 분야 전문가 등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다. 누가 정의의 편에 서있는가? 지식인은 예나 지금이나 정의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존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