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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동물들…인천 동구 도축장 터에 남은 ‘동물 넋 위령비’

동구청과 동명초 부지, 과거엔 도축장·두묘제조소
2014년 철거된 동물 넋 위령비…4년 만에 복원

4.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동물들…인천 동구청 도축장 터에 남은 ‘동물 넋 위령비’

 

인천 동구 중심에는 동물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잠들어 있다.

 

주민들의 바쁜 걸음으로 가득한 인천 동구청과 아이들이 뛰노는 동명초등학교가 바로 그 장소다. 동물들의 넋을 달래는 비석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현재 동구청 자리는 ‘인천 도축장’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도축법 제정으로 사설 도축이 제한됐고, 1916년 문을 열고 1963년까지 운영된 정부 시설이었다.

 

학계는 당시 일본인이 많이 살던 번화가인 중구와 멀지 않고, 조선인이 많이 살아 인력 수급이 용이했던 동구에 도축장과 전염병 연구소 등 혐오시설을 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도축장은 부지 2277㎡, 건물 327㎡ 규모였다. 직원으로 부서기 1명과 도살부 3명이 있었다. 주로 소와 돼지를 다뤘고 연평균 6000여 마리를 도살했다.

 

1963년 도축장이었던 자리를 동구청이 이어받았다. 도축장은 관영에서 민간으로 이관돼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했다가 현재 부평구 십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1990년 동구청에 처음으로 동물 넋 위령비가 등장한다.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일부 종교단체가 위령비 철거를 요구해 비석은 모습을 감췄다. 제자리로 돌아온 건 4년이 지나서였다.

 

 

동구에는 동물과 관련된 터가 하나 있다. 과거 동구 송림동에는 동양의 유일한 두묘제조소(종두검사소)가 있었는데, 도축장 바로 옆에 있었다.

 

1933년 동경제국대학 전염병연구소 인천출장소로 이름을 바꿨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은 두창에 걸린 송아지에서 천연두 백신의 원료인 두묘(痘苗)를 채취했다. 두묘는 1년에 두 번, 1회 350만 명 분을 생산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는 박창례 선생이 실험용 우사를 인수해 동명초등학교를 지으면서 연구소는 사라지게 됐다. 지금은 철거와 신축으로 두묘제조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민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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