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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중구 ‘인천신사·애탕신사’와 미추홀구 ‘주안신사’

인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높은 곳에 신사 조성
인천시교육청, 인천신사 터 역사교육장소로 활용

 

6.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중구 ‘인천신사·애탕신사’와 미추홀구 ‘주안신사’

 

인천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다.

 

개항으로 인해 많은 일본인의 신도들이 인천에 머물렀다. 이들은 높은 곳에 ‘신사(神社)’를 세웠다. 찬탈자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신사는 잊어서는 안 되는 상흔이다.

 

현재 기록을 통해 확인된 인천의 신사는 중구 ‘인천신사, 애탕신사’와 미추홀구 ‘주안신사’ 등 3곳이다.

 

인천 중구 신생동에 있는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는 ‘인천신사’가 있었다. 14명의 일본인이 대신궁건립을 발의하고 모금운동을 통해 1890년에 지어졌다.

 

이전에는 인천대신궁으로 불렸다. 일본왕의 조상신인 천조대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대신궁이라는 이름과 달리 규모는 매우 작았다.

 

1916년 개축되면서 명칭도 인천신사로 바뀌었다. 같은 해 메이지신궁에서 보내온 신령을 합사해 인천신사의 제신은 천조대신과 메이지천황 등 2좌로 정해졌다.

 

인천신사 인근에는 일본인 전용 공원인 ‘동공원’도 만들어졌는데, 일본인들이 벚꽃놀이 등을 즐겼다. 당시 자유공원은 ‘서공원’이라고 불렸다.

 

 

신사의 흔적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래도 도리이(기둥)과 일본식 석등 등이 아직 남아있다.

 

인천여상 입구를 따라가면 작은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정원에는 신사의 상징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돌계단 위에는 도리이로 보이는 돌기둥 두 개가 맞이하며, 석등이 고요히 서 있다.

 

인천신사의 석등은 전형적인 가스가 석등이다. 가스가 석등이란 일본 나라의 가스가신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대표적인 일본식 석등의 형태다. 옥개 처마 부분이 고사리순처럼 말려 올라간 모습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일제 잔재 청산과 독립운동사 교육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인천여상의 신사터를 역사교육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월미산 정상에는 ‘애탕신사(아타고신사)’가 자리를 잡았다.

 

1908년 세워져 1929년 한 차례의 개축이 있었다. 애탕신사는 교토에 있는 아타고신사가 본사로 화재를 예방하는 아타고신을 모셨다. 신사 입구에는 청일전쟁 때 죽은 일본군을 추모하는 충혼비가 있었다.

 

해방 이후 시설 대부분이 소실됐다. 봉안전에 오르는 계단만 남아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이마저도 사라졌다.

 

현재 월미산 정상에 있는 안내판만이 애탕신사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미추홀구 주안동에도 ‘주안신사’가 있었다. 인천신사, 애탕신사와 달리 남은 자료가 거의 없어 언제 지어지고 사라졌는지, 어떤 신을 모셨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주안신사(朱安神社)라고 적힌 비석만이 남아있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민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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