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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무능과 불순의 역대급 재난

  • 최영
  • 등록 2023.08.11 06:00:00
  • 13면

 

전쟁이 끝나자 경북 성주에서 대도시 대구 변두리로 이주한 우리 집에는 70년대가 되자 손님맞이가 잦았다. 성주의 일가친척들이 대구 나들이를 할라치면 대부분 우리 집에 들러 숙식을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해방전후 좌익활동 여파로 고향을 등져야 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 찾아오는 고향 손님치레로 큰집 맏아들 역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엄마와 자식들은 찢어지는 살림에 주린 배를 더 졸라매어야 했다. 자식들은 갱죽조차 배불리 못먹어도 혹여 손님이 올세라 쌀 한되박은 고이고이 모셔두어야 했고, 우리는 윗묵에 둔 걸레가 꽝꽝 얼어붙는 방에서 자다가도 손님이 오면 아랫묵이 절절 끓도록 군불을 넣고는 인근 이모댁으로 피신해야 했으니.. 그래야 손님에게 할 도리를 다한 것이라 여긴 살림살이에 간난신고가 오죽했겠는가?

 

우리 집만 그런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원래 그랬다. 국민 생존권보다도 손님맞이가 우선이었던 때, 88올림픽 때는 미관상 서울의 판자촌까지 깡거리 밀어버렸다. 나는 심지어 87년 민주화투쟁과 직선제 쟁취 조차도 ‘88올림픽 성공개최’라는 명분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불과 7년전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군사정권이 87년이라고 무력으로 진압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허나 그랬다간 다음해 올림픽에 국제적인 보이콧 운동이 일어날게 틀림없었다. 지금에 빗대면 미얀마의 쿠데타정권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꼴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한 측면으론 손님맞이가 민주화까지 앞당긴 셈이다. 그런 전통 때문에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등 무수한 국제행사를 유치했고, 좀 과하다 싶을만치 손님맞이에 진심인 덕분에 겉으론 번듯하게 치루어내지 못한게 없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물이 흥건한, 그늘하나 없는 땡볕 매립지에 4만3000명의 손님을 재우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손님들이 먼저 보따리를 쌌다. 단군이래 처음이다. 지금까지 국민은 개돼지로 취급하더라도 손님들에게 이런 적은 없었다. 왜 이 지경이 벌어졌을까? 난 두 가지가 의심스럽다. 첫째, 정권 전체가 잼버리에 관심이 없었다. 뭘 한다니 한번 들러서 사진만 찍고 홍보하면 그만인 행사였다. 왜 그렇게 무관심했을까? 잼버리가 수도권이나 대구경북 권에서 열렸다면 과연 똑같이 대응했을지 나는 궁금하다. 둘째, 시작부터 의도가 불순했다. 생명의 보고인 새만금 해창갯벌을 메워 잼버리 영지로 만들었다. 잼버리를 디딤돌로 새만금을 개발하고자 하는 목적이 앞섰다. 대충 행사 치른 후 개발에만 목을 매다는 사람들이 야영지 정비에 뭐 그리 애착이 있었을까? 이는 중앙정부의 무능과 지방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어우러진 역대급 재난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면 염불조차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달이 나면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문제가 터진 후 보여주는 추태에는 참담함을 넘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집권한지 15개월이나 지난 정권이 전 정권 탓만 하면 도데체 당신들은 언제쯤 되어야 자신들이 집행하는 사안에 책임을 질 작정인가? 그렇게 책임지기 싫으면 아예 자리를 맡지를 말던가.. 왜 늘 부끄러움은 국민들의 몫이던가? 권한이 많은 자의 무능조차 죄악일진데 무능보다 나쁜 것은 염치가 없는 파렴치함이다. 우리는 언제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의 진심어린 사죄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하나 남은 수라갯벌을 메워 공항을 짓겠단다. 국민 해먹기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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