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의 기업대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급증하는 가계대출에 대해 고삐를 조이면서 기업대출의 흥행 여부가 하반기 은행의 수익성을 좌우하게 된 탓이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건전성 관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747조 4895억 원으로 전월 대비 8조 5974억 원 증가했다. 전체 원화대출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1.6%로 지난해 말(49.6%) 대비 2%p 늘었다.
지난 1월 707조 6043억 원이었던 기업대출 잔액은 8개월 만에 43조 8146억 원 늘어났다. 평균적으로 매월 5조 원 이상 늘며 꾸준히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은 129조 4044억 원으로 같은 기간 18조 3486억 원 늘었다. 개인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은 618조 849억 원으로 18조 2171억 원 증가했다. 개인사업자대출은 315조 8306억 원으로 4조 5603억 원 증가했다.
특히 이들 은행 중 기업대출 잔액이 가장 적은 우리은행이 공격적인 영업을 예고하면서 은행권의 기업대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일 '기업금융 명가 재건 전략발표회'를 열고 오는 2027년까지 기업대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의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영업 공세를 통해 올해 기업대출을 16조 7390억 원(12.1%) 확대하며 신흥 강자로 떠오른 하나은행은 우량자산 위주의 기업대출 확대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제조업 및 유망업종을 타깃으로 금리 등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기업금융 관련 조직을 전면 개편하며 역량 강화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기업금융에 디지털 서비스를 결합한 '쏠 비즈(SOL-Biz)'를 통해 기업금융 고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이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 확대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급등하는 가계대출의 주범으로 꼽으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동시에 인터넷전문은행들을 상대로 가계부채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은행들도 잇달아 50년 만기 주담대를 판매 중지하는 등 가계대출 영업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에서 전반적으로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은행권에선 기업대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기업대출 쪽으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치고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며 은행 기업대출의 매력도가 늘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짐에 따라 기업들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하기 어려워지면서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을 찾고 있는 것. 실제로 지난 7월 연 4.4%대였던 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무보증, 3년물) 금리는 8월 들어 연 4.569%까지 올랐다.
다만 경기전망이 불투명해 기업대출 시장 전망이 마냥 밝지많은 않은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고금리에 경기침체까지 지속되면서 중소기업 대출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금융업을 제외한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의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6.9다. BSI가 100보다 높으면 전월보다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며,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도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회의에서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완화된 금융환경 등으로 기업의 잠재 리스크가 누적된 가운데 최근 생산비용 증가, 고금리․긴축적 금융환경 등으로 여건이 변화하면서 한계기업의 기업 신용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