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정부와 당 어디에서도 소수파에 불과하였다. 대선 기간에 군의 개혁 등 정치개혁을 주장했지만 누구도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입바른 소리로만 여겼다. 그러나 취임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3월 8일 김영삼은 군 개혁을 단행했다.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하면서 군부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하나회 소속인 대장 7명과 중장 이하 장성 12명 등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장교가 강제 예편되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군 개혁이었다. 김영삼의 개혁 정치는 군부에 머물지 않았다. 취임 이틀 만에 스스로 재산 공개를 하면서 모든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실시해 그동안 무풍지대였던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되었다. 국민을 경악게 할 수준의 부도덕한 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더 이상 부정한 돈이 자리잡을 수 없게 했고 이름뿐인 지방자치제도 도입과 5공 청산, 역사바로세우기 등 김영삼의 초기 정치개혁은 80% 이상 국민의 지지가 유일한 무기였다. 국민은 비로소 자신의 한 표가 나라를 이렇게 개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었다.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보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하는 개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 역사에서 개혁 정치하면 조선 정조대왕 개혁의 성공과 실패가 항상 거론된다. 정조는 기득권 세력을 숙청하기보다는 함께 많은 개혁을 단행했지만 그가 죽자마자 억눌렸던 그들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김영삼의 개혁정치도 초기의 지지율에 취해 이어지질 못하고 스스로 붕괴하고 말았다. 왜 개혁은 실패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사람이라는 점이다. 우리 정치가 한없이 국민을 실망시킨 원인은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운영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정조와 김영삼의 개혁정치도 혼자 하는 개혁, 비선그룹의 전횡 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국민적 지지가 60%를 넘고 있다. 정말 기대 이상이다. 전임자와 비교되는 일하는 지도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만 노파심에 이재명 정부 개혁의 핵심이라고 하는 검찰개혁을 우려한다. 그동안 검찰은 표적 수사와 선택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와 봐주기 수사의 상징이었다. 대통령이 대표적인 피해자이지만 그동안 패가망신한 국민을 생각하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기구가 대한민국의 검찰이다. 그런데 검찰개혁의 대상자들이 처벌이 아닌 영전을 하고 있다. 검찰도 공무원이므로 임명권자에 충성한다는 안이한 생각이라면 글쎄다. 정조도 김영삼 정권도 모두 기득 세력과 함께 시작했지만 한결같이 배신한 자들도 그들이었다. 지금 우리는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하는 순간이기에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