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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최명옥 용인시 규방공예연구회 지도교수 "사색과 이음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

 

사색과 이음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웃는 사람, 최명옥 용인특례시 생활개선회 규방공예연구회 지도교수(전 용인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나눔과 베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최 교수의 또 다른 덕목이라고 회원들과 농업기술센터 후배들은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매주 화요일 수업이 있는 날이면 농기센터 주변이 환해지는 이유다. 최 교수의 규방공예는 그렇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됐고,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전통을 고수하겠다는 최 교수의 장인 정신이 그런 삶의 원동력이자 주춧돌로 풀이된다.

 

규방공예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998년 경기도 농업기술원 향토음식전시회 음식 코디를 위한 조각보 제작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더 깊은 뿌리는 어머니(故 전정례 여사, 2021년 작고)였다. 바느질 하나로 가족들의 한복과 양장들을 만드셨던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바느질은)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다. 거기에 남은 천까지 많았으니 바느질에 입문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규방공예에 대한 관심은 처음으로 모시조각보를 만들면서다. 스승인 엄마께 여쭤보고 책을 사보고 하면서 소품부터 만들었던 세월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엄마와 연결된 정신적 연대감이 오랜 세월, 지치지 않고 규방공예 사랑을 밀고온 동력이겠다.   

 

규방공예 교육은 2001년 시작했다. 용인농업기술센터가 원삼면으로 이사오면서 새로운 교육과정을 고민했고, 다른 곳에서 하지않는 규방공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관공서가 개설한 최초의 교육과정이 됐고 이를 계기로 농촌진흥청이 규방공예 사업을 만들어 전국 농업기술센터에 제공하게 하는 겨자씨 역할을 하게 됐다.

 

현재까지 장기간 동안 운영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일까. 최 교수의 겸손한 답은 이렇다. "일단 제가 공무원 신분으로 가르치다 보니 별도의 강사비가 들지 않았고, 재료도 공동구매해서 실비로 제공했으며, 교재도 직접 만들어 배포했기 때문에 (회원들의) 경제적 부담이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며 "여기에 바느질을 좋아한다는 비슷한 성향을 지닌 회원들이 씨줄과 날줄로 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도 한 몫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회원들의 재능기부와 헌신이 오늘을 있게 했고, 앞으로로 그럴 것'이라는 표현을 에둘러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규방공예는 바느질을 매개로한 '이음의 예술'이다. 전문성과 개인주의 등을 표방했던 산업혁명의 물결에 밀려 잠시 사라졌던 '잇다 문화'를 다시 살려내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도 풀이된다. 그 모두를 아우르며 바느질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세상'을 꿈꾸는 최명옥이 속삭이는 규방의 매력은 무엇일까, 귀 기울여 들어보자. 

 

"바느질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며 잡념을 없애기가 아주 좋고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생활에 필요한 소품도 직접 만들수 있고,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큰 작품이 되는 완성의 과정이 매력입니다."     

 

최 교수와  용인특례시 생활개선회 규방공예연구회에서 희망을 보는 까닭이다.

 

[ 경기신문 = 최정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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