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 첫 여성 부통령도 나왔다. 이번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은 지난 2백년 동안 지속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바마의 말이었다. 이어 부시가 입을 열었다. “우리 세 전직 대통령이 이렇게 한 자리에 서서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자체가 바로 그런 전통의 제도화가 존재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자 클린턴이 조금 길게 마무리한다. “정말 이례적인 사태였다.(트럼프 추종자들의 의회점령사건을 의미.) 우리 모두는 미국이 ‘정상’(normalcy)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도대체가 전적으로 비정상적인 도전이었다. 정상회복이 된 것은 이걸 잘 다룬 결과가 아니겠는가? 정말 짜릿할 정도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합창, 평화적 정권교체 오바마, 부시 그리고 클린턴 세 전직 대통령이 취임식 다음날인 지난 1월 21일 저녁 워싱턴 국립묘지 앞에 함께 서서 바이든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의 한 대목이었다. 트럼프 시기에 경험한 미국의 분열을 넘어 건국 이래 오랫동안 유지했던 민주주의의 전통이 미국의 정상상태를 지켜준다는 논조였다. 바이든이 수
“누가 이런 권리를 당신에게 주었는가? 우리는 준 적이 없는데.” 지배세력과 맞선 미라보의 연설은 프랑스 혁명의 심장을 뛰게 했다. “인민들이여, 어제의 투쟁은 그대들의 오늘을 결정하오.” 시이예스의 연설은 투쟁의 의미를 일깨웠다. “왕이 무죄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 혁명을 기득권과의 타협으로 바꾸려 한 세력에게 던진 로베스피에르의 일격이었다. 왕은 연설하지 않는다. 명령할 뿐이다. 거만하게 웅얼거려도 어떻게든 알아들어야 하는 게 절대군주의 칙령이었다. 루이 16세는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이렇게 바보처럼 읇조렸단다. “내가 다스리는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묵과하지 않겠다. 나의 백성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보호하는 것을 믿고 내 사랑 안에 거하라.” 하지만 왕도 이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1789년 7월, 프랑스는 왕에게 복종하던 백성이 혁명의 주체가 되는 걸 목격한다. 새로운 인민의 탄생이었다. 무너져야 할 낡은 체제 “앙시앙 레짐”이라는 말이 파리의 카페에서 유행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우리가 먹을 빵을 강탈해간 자들이여, 너희들은 부자의 종이며 가난한 자를 억
어떤 주인이 모든 걸 다 준비해주고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다. 그런데 정작 상대는 딴 맘을 먹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는 신뢰할 만하니 그랬을 텐데 말이다. 과연 그 끝은 어찌 될까? 예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포도농사를 위해 직접 울타리도 세우고 즙 짜는 틀도 만들어놓고 망대까지 세웠다. 이렇게 일일이 다 챙겨 주는 주인은 없었다. 그는 마을의 어떤 이들에게 세를 받기로 하고 여행길을 떠났다. 이제는 수확철이겠거니 하고 세를 거두려 자기 수하를 보냈다. 주인없다고 어느새 주인 행세를 하던 자들이 주인이 보낸 이를 실컷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버렸다.” 뭔가 잘못 알아보고 그랬지, 하고 주인은 다른 자기 하인을 이곳으로 보냈더니 머리를 거의 박살내다시피 하고 능욕까지 했다. 상황이 좀 이상하긴 했으나 그래도 혹시, 하고 또 사람을 보냈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내 아들을 보내면 다르게 대하겠지.” 오산이었다. 상대가 얼마나 악한 지 미처 알지 못했던 거다. 아들이 오자 “이 자는 상속자다. 해치우면 이 포도원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된다.” 그리고는 그 시신(屍身)을 밖에 버렸다. 너무나 무서운 사태가 벌어졌다. 어느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남과 북의 흥겨웠던 시간은 어느새 백년은 지났나 싶게 아득하다. 실제 백년 전쯤으로 한번 돌아가볼까. 1898년은 “제국 아메리카의 시발점”이다. 미국은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와 필리핀을 독립시키겠다며 노쇠한 스페인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사실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쿠바와 필리핀은 독립은커녕 졸지에 주인만 바뀐 식민지로 다시 전락했다. 1895년 청일전쟁으로 조선반도에서 중국을 몰아내고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선언했으나 조선을 식민지 비슷하게 거머쥔 일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되자 조선의 식민지화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일본 혼자의 힘이었던가. 러일전쟁 자체가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치러진 전쟁인데다가 태프트-카츠라 조약에 따른 거래가 깔려있지 않았는가? 그 거래라는 게 뭔지 이제는 다 안다. 필리핀의 주인은 미국이고 조선의 주인은 일본으로 하자는 거 아니던가. 미국의 이른바 아시아 태평양 체제는 이렇게 우리에게 역사적 고통을 강요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미일전쟁(美日戰爭)이기도 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마무리를 한 19
자작나무 숲이 눈 속에 묻혀 있는 사진을 본다. 폭설이 주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겪어보지도 않은 러시아의 겨울인데 상상만으로 이미 샤프카라고 불리는 털모자와 함께 두터운 옷을 당장 꺼내 입어야 할 것 같다. 꽁꽁 언 굵은 수염에 긴 외투를 온통 걸친 장대한 사나이가 거침없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느낌이다. 동장군(冬將軍)이다. 고골의 <외투>는 그런 혹한(酷寒)의 현실에서 태어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단다.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강철같은 바람 가릴 길 없는 빈궁의 구덩이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의 뼈아픈 서사, 그 기원에 대한 증언이다. - 외투를 빼앗긴 사람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라는 만년 9등관 하급관리는 성실하나 남루한 인생을 살아간다. 입고 있던 외투는 더이상 수선해봐야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낡아 그는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형편에 넘치는 돈으로 새 외투를 산다. 무척 행복해졌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강도에게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사라진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끈많은 상류계급도 아닌 터에 황량한 도시에서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를 말단관리를 지켜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