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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인민의 벗 L’Ami du peuple”

 

“누가 이런 권리를 당신에게 주었는가? 우리는 준 적이 없는데.” 지배세력과 맞선 미라보의 연설은 프랑스 혁명의 심장을 뛰게 했다. “인민들이여, 어제의 투쟁은 그대들의 오늘을 결정하오.” 시이예스의 연설은 투쟁의 의미를 일깨웠다. “왕이 무죄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 혁명을 기득권과의 타협으로 바꾸려 한 세력에게 던진 로베스피에르의 일격이었다.

 

왕은 연설하지 않는다. 명령할 뿐이다. 거만하게 웅얼거려도 어떻게든 알아들어야 하는 게 절대군주의 칙령이었다. 루이 16세는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이렇게 바보처럼 읇조렸단다. “내가 다스리는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묵과하지 않겠다. 나의 백성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보호하는 것을 믿고 내 사랑 안에 거하라.” 하지만 왕도 이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1789년 7월, 프랑스는 왕에게 복종하던 백성이 혁명의 주체가 되는 걸 목격한다. 새로운 인민의 탄생이었다. 무너져야 할 낡은 체제 “앙시앙 레짐”이라는 말이 파리의 카페에서 유행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우리가 먹을 빵을 강탈해간 자들이여, 너희들은 부자의 종이며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폭군이다. 과부와 고아의 피를 마시는 자들이여, 종말이 오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대중연설의 시대를 열었다. 민중 대다수의 정치적 기세를 모으는 일이 역사를 움직이는 관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렷한 어조로 핵심을 찔러야 한다. 그것은 어떤 착오도 허용하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는 일이다.

 

대중연설의 시대는 즉시 언론의 시대로 이어졌다. 장 뽈 마라가 펴낸 ‘인민의 벗 L’Ami du peuple‘은 가장 강력했다. 얼마나 인기였는지 글을 읽지 못하는 최하층 노동자 계급까지도 열렬한 구독자들이었다. 글 읽을 수 있는 이가 소리내어 읽으면 모두가 함께 열정적 토론을 펼쳤고 토론은 다시 신문에 기사로 옮겨졌다. ‘인민의 벗’은 인민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비열하고 잔혹한 언어로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끊임없이 손상시키는 언론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의 동의도 없이 칼을 들고 우리의 전두엽을 잘라내고 있다. 뇌 수술이다. 우리를 자기들이 조종하는 기계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 기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독을 섞은 인민의 아편을 먹인다. 촛불시민혁명의 의식세계를 절단하고 폐기처분하려는 것이다.

 

언론의 난도질로 헌법재판관 후보에서 추방당했던 이유정 변호사가 4년의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자들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런 암담한 시절에 ‘경기신문’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오늘의 왕 노릇하는 자들에게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함께 만들어가자, 인민의 뜨거운 벗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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