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나라 조선의 역사에서 정도전은 신권국가(臣權國家)를 꿈꾼 발칙한 혁명가였죠. 태종 이방원에게 되치기당해 뜻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당시 정도전의 이상에 동조한 여론이 있었다는 것은 무소불위 왕권국가(王權國家)에 대한 민심의 저항이 만만찮았다는 정황을 반증해요. 조선의 역사를 아예 ‘신하의 나라’로 보는 해석도 있어요. 마음에 안 드는 왕들은 독살로 명을 끊곤 했었다는 끔찍한 주장까지 나와 있죠. 현대정치에서 테크노크랫(technocrat 기술관료) 세력이 권력의 핵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에요. 인구가 늘고,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칼 잘 쓰는 무사들 둘러 세우는 일로만 리더 십이 발휘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테크노크랫이 직접 권력자가 되는 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됐어요.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망(羨望)해 온 역사는 깊어요. 5급 행정·외무·사법고시라는 현대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집단을 이뤄 공부하는 신림동 녹두거리가 가장 먼저 생겨났죠. 그리고 21세기 들어 9급, 7급 공무원 열풍이 일면서 공시생들이 즐비한 노량진까지 고시촌이 늘어났지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1위가 공무원이었다는 통계청 조사도 있어요. 그런데 며칠 전 우리 공무원 중 절반가량이 ‘기회가 있다면 이직하겠다’고 밝혔다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네요. 중앙 및 광역자치단체 공무원 중 45.2%가 이직 의향을 표명했어요. 조사에 처음 포함된 기초단체 공무원 중 이직 의향 공무원은 46.8%로 중앙·광역보다 1.6% 포인트 높게 나타났군요. 지난 2017년에는 28.0% 수준이었으니 불과 5년 새에 두 배 가까이 치솟았군요.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공무원직의 인기가 시들해진 건 요 몇 년간의 추세였어요. 작년 6월 국가공무원 7급 공채 시험 경쟁률이 42.7대1을 기록하자 ‘43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호들갑 기사들이 떴었죠. 인재들이 첨단기업이 아닌 공직에 몰려드는 것은 ‘후진적’ 현상이라던 전문가들의 맹비판이 기억나네요. 드디어 ‘철밥통’ 깨지는 소리가 시작됐나요? 이제 바람직한 직업의식이 자리 잡나요? 미안하지만 대답은 “NO”예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일 거예요. ‘철밥통’으로 인식됐던 그동안의 공시 열풍 원인을 다 소각하고도 남을 만큼 아이들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공직 진출 기피, 이직 바람은 ‘박봉(薄俸)’과 ‘격무(激務)’탓이라는군요. 그동안의 열풍을 테크노크랫 출세욕이나 애국심 발로로 해석할 수 없듯이, 조건이 열악한 직업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풍조 때문이라는 거죠. 왕도 권신도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시대에 공무원의 의식은 이제 어디로 가나요? ‘철밥통’ 깨지는 소리는 좋다고 쳐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괜찮은 걸까요?
지난 3월말, 3박 4일이란 짧은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다녀왔다. 도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나머지 유수한 도시들은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지인들과 다녀오게 되었다. 마침 윤석렬 대통령의 전격적인 일본방문으로 문재인 정부시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에 가고픈 열망이 솟구쳤다. 소설 같은 상상일 수 있겠지만, 일본 저변에 흐르는 한국에 대한 감정도 느끼고 싶은 것도 전격적인 투어의 요인이기도 했다. ‘나라’는 고대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다 경주처럼 일본 고도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 있어 인상적이었고, 오사카의 대표적 명물인 오사카성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데요시를 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오사카성 입구에 히데요시를 배향한 ‘豊國神社(풍국신사)’가 자리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사카 중심가를 비롯한 그 어느 곳에서도 반한 감정이나 물결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적어도 외양만은 그랬다. 오사카 중심가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명동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도 불러 일으켰다. 350여석에 달하는 귀국 비행기는 한국인만으로도 만석이었다. 이 상황을 며칠 간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의 방일로 불거진 ‘반일 논란’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은 역사를 지나치게 정치 무기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정파의 이익에 매몰되어 국가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가?, 반일팔이는 언제쯤 멈출 것인가? 등 새롭지도 않으면서 반복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역사가 웅변해주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힘이 약한 국가는 언제든 종속되고 망할 수 있다는 진실이다. 고대에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삼척동자도 알듯이 노예로 전락했다. 그러나 현대판 노예는 첨단 기술 보유여부가 가른다. 반도체가 상징하는 첨단기술 개발에 뒤져 선진/첨단기술에 종속되면 ‘현대판 기술노예’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일본을 이기고 있지 않나. 물론 소/부/장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반도체는 일본을 추월했고, 자동차는 나란히 어깨를 견주고 있으며, 일본이 자랑하는 벚꽃도 우리가 한 수 위다. 교토 호센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이스 병력 360여명과 기시다군이 벌인 실내전투에서 생긴 血天井(혈천정)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피 흘린 흔적은 영원히 잊지 않되, 그 설움과 한을 승화시켜 보다 대승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치인들의 ’반일 팔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각지를 여행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한일 관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했다. 일본 어디를 가도 도시의 청결은 최고이고 몸에 베인 겸손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다. 귀국 행 비행기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와 에도 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존경한 전쟁의 신으로 불린 다케다 신겐의 잠언을 떠올렸다. 풍·림·화·산 이란 네 글자다. “산처럼 인내하고, 숲처럼 고요히 생각하며, 바람과 불같이 전광석화처럼 행동하라.” 역사의 아픈 교훈은 길이 새기되, 나무보다 숲을 보며 불처럼 행동할 때 그 언젠가 우리가 일본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가져 보았다.
19년 만에 개최된 국회의원 전원위원회 회의에 대한 국민 관심이 뜨겁다. 전원위가 논의를 시작한 주제들은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연계된 정치개혁의 핵심 요소들을 포괄한다. 무엇보다도 기득권과 당리당략에 휩싸여 개혁 과제를 소아병적으로 인식하는 소탐대실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국회 혁신’을 소원하는 국민 여망에 부응하여 이번엔 반드시 감동적인 ‘정치개혁’의 변곡점을 만들어내길 신신당부한다. 전원위는 토론에 앞서 지난달 30일 첫 회의를 열고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그리고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3가지 안건을 상정했다. 이 안건들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마련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수원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부선 철도 서쪽 지역을 서수원지역이라고 한다. 평동, 금곡동, 호매실동, 서둔동, 구운동, 입북동, 율천동이 해당된다. 예전 이 지역은 논밭과 오래된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한가로운 농촌지역이었다. 게다가 군공항과 그린벨트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느렸다. 지금은 호매실지구 개발사업 등으로 약 26만 명(2월 기준)이 거주하는 신도시가 됐다. 그럼에도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시설이 없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기반시설이 취약하다. 따라서 지역민들은 문화센터 등 지역생활권 내에서 여가와 문화예술을 즐기면서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 건립을 염원했다.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문화기반시설은 필요했다. 이곳에 서수원 주민들의 여가와 문화생활을 도울 수원문화원사가 오는 12월에 건립된다. 경기신문(4월 7일자 6면)에 따르면 수원시가 총사업비 245억 7300만 원(도비 54억 7500만 원, 시비 190억 9800만 원)을 투입해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1366번지에 지하 1층·지상 3층, 전체면적 1543평(5101.78㎡) 규모의 문화원사를 건립한다는 것이다. 문화원사에는 공연장, 전시공간, 미디어실, 다목적실, 카페, 지역문화연구소 등 문화·휴게시설이 갖춰진다. 지난 1990년 3월 위동현 씨는 수원문화원에 팔달산 아래 부지를 기증했다. 문화원은 이 부지를 수원시에 기부했고 이에 시는 호매실동 땅을 문화원사 부지로 내줬다. 수원문화원은 독립원사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난해 5월 23일 공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수원문화원은 “문화 시설이 부족했던 서수원권 문화거점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줄 시설이 필요하며, 인구 120만 특례시의 위상에 어울리는 문화원사가 절실하다”고 호소해왔다. 인구 6만 명이 채 안 되는 과천시는 4293m²나 되는 원사가 있다. 15만 여명의 의왕시와 10만 여명의 동두천시 역시 번듯한 원사를 자랑하는 등 도내 거의 모든 지역 문화원이 수준급의 원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수원시만 특례시란 지위에 맞지 않는 낡은 시민회관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산 중턱에 있기 때문에 노약자나 장애인들의 이용이 쉽지 않다. 교육실도 부족하다. 문화원 소속 동아리 회원만 1000명이 넘기 때문이다. 수원의 문화 콘텐츠를 담은 독립원사를 건립해야 한다는 것은 수원문화가족들의 꿈이었다. 수원문화원 김봉식 원장은 “특례시의 문화원은 그에 걸 맞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특례시이자 경기도의 수부도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보유한 수원시의 자존심 문제”라고 강조한다. 주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그동안 호매실동을 포함해 서수원지역 주민들은 공연, 전시회와 함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을 기다려왔다. 모쪼록 문화시설 건립이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란다”는 한 호매실동 주민의 기대처럼 서수원지역에 수원문화원이 건립되면 지역의 문화 발전·보전 활동과 함께 문화 제공 기회가 더 확대될 것이다. 수원시는 문화원사 인근 호매실동 1366-1번지에 수영장, 다목적 체육관 등 체육시설을 갖춘 호매실체육관(가칭)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수원지역에 수원문화원과 체육관이 들어서면 주민의 삶의 질은 더욱 향상될 것이다.
"독도! 끝내 창씨개명 되는건가. 왜놈들이 조만간 이곳에 대나무를 심을건가. 그리하여 마침내, 다께시마, 竹島로 소유권 이전을 완료할건가. 세찬 바닷바람 몰아치는 대숲 한가운데서 욱일기 당당하게 펄럭일건가." '2023년 대통령 3.1절 기념사 쇼크' 이후, 나는 홀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계제에 독도 관련 서책들을 여러 권 읽어보았다. 그 중 조선 숙종 때 인물 안용복 장군(1658~ ?)과 6.25 참전 상이용사 33인이 결성한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1929~1986)의 삶에 특별히 마음이 쏠렸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여당 사람들이 한결 같이 이 위대한 인물들의 대칭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정치모리배들도 별 차이 없고. 역사적으로 '우산국(于山國)'이었던 울릉도는 신라 지증왕이 복속한 때(512년)부터 우리 영토로 되어 있다. 우산국은 신라가 강성해지는 과정에서 먹힌 군소 왕조의 저항세력들이 도주하여 건너가서 세운 나라였다. 대마도와도 가깝기 때문에 오랫 동안 왜인들도 다수 거주하거나 왕래하였다. 고려와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를 중시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 관심 밖이었고, 왕래는 죽음의 리스크를 져야만 했다. 세종조차 울릉도를 무인도로 만들어버리는 공도(空島)정책을 썼다. 대한제국 때(1883년) 고종이 마침내 500년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일본정부에 항의하여, 일본인들의 울릉도 체류와 출입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잘한 일이다. 친일파였다고 비판받는 김옥균이 고종의 특명을 받아 이를 주도했다. 울릉도 이주 희망자를 모집하여 실행에 옮긴 것은, 소위 '실효적 지배'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독도는 우리땅'의 대못을 친 쾌거의 국정사례였다. 독도가 위태롭다. 17세기에 안용복은 목숨 걸고 도쿠가와 막부와 담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았다. 홍순칠의 독도수비대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일본의 강점야욕을 분쇄하고 독도를 지켜냈다. 조선왕조는 안용복을 고문치사에 이르게 했다. 한국정부는 홍순칠 의병대에 배은망덕으로 일관한다. 울릉도 갑부 홍순칠 가문은 가난뱅이가 되었다. 별로 놀랍지 않다. 이 나라에는 안용복과 홍순칠들이 부지기수다. 권력은 언제나 그들을 홀대하거나 적대시한다. 당시에 일본은 사사건건 독도를 불법점령했다며 홍순칠을 비난했다. 미군도 살신성인하는 홍순칠을 사상적으로 의심하여 강제 연행했다. 한국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독도로 돌아온 홍순칠은 "독도에 상륙하는 자는 국적과 피아(彼我)를 불문하고 총살한다"고 바위에 새겼다. 그후 5.16 세력의 핵심인사들은 '한일국교 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독도를 공군사격장으로 지정하여 없애버리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입장은 불변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자는 것이다. 그 저의가 무엇이겠나. 돈과 각종 이권 주고받기로 승소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독도는 동도가 88미터, 서도가 168미터의 작은 봉우리지만, 해수면 아래로는 2천미터가 넘는 큰 산이다. 해양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독도주변은 해양생태의 보고이며, 광물자원의 값어치는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고 한다. 독도로부터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원칙을 기준으로 우리 해양영토는 육지의 두배나 된다. 일본이 언어도단의 어거지를 쓰는 유일한 이유다. 독도는 풍전등화다. 김탁환의 '독도평전'은 울릉도 독도와 관련한 거의 모든 문헌과 저작들의 결정판이다. 진지하고도 흥미진진하다. 압권이다.
정부는 지난 3월15일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에 세계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용인시 남사읍,이동읍 일원 710만㎡(215만평)에 2042년까지 300조 원을 투입하여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공장(팹)5개를 구축하고,국내외 소부장,팹리스 기업 150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현재의 글로벌 경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정부가 발표한 용인 세계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작한 현재까지 세계최대인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120만 평의 조성과정을 되돌아보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필자가 경기도 투자진흥국장과 경제투자실장등으로 근무하면서 추진했..
사람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일 곧 모든 일의 근본이 되는 일만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영혼을 개선하고, 영혼의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모든 사람들의 근본 사명인 것은 이를 달성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는 유일한 목표라는 사실에 비추어 봐도 명백하다. 젊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사명은 끊임없는 자기완성이며, 심지어 모든 인류의 죄악과 불행을 제거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공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공상 속에 세속의 때가 묻어 오랫동안 인간 본연의 삶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며 그저 주어진 그대로 살라고 충고하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진리가 들어있다. 젊었을 때의 공상이 잘못된 것은 자기완성과 자기 영혼의 완성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 장차 일어날 일을 지금 당장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다. 나날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보다 좋은 삶은 없으며, 실제로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큰 기쁨은 없다. 이것이 내가 오늘까지 끊임없이 경험해온 행복이며, 내 양심이 나에게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우리의 단점은 너무 많아서 지적받는다고 금방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들을 확실히 알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자극이 되어 양심이 나태한 잠에 빠지는 것을 막으므로 결국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그 단점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된다. (파스칼) 최상의 행복은 일 년 전보다 자신이 나아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소로)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너희의 어버이처럼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말한 것은, 너희 내부에 있는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데 노력하라는 뜻이다. 숨을 거둘 때 ‘왜 죽어’ 소리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이 있을 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숨거둘 때 ‘왜 이래?’, ‘왜?’ 소리가 나와서는 안 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지금 왜 그럴까,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숨거둘 때 ‘왜’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친구니까 부탁합니다. 가족에게도 이런 말은 못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좋다는 것이지요. (류영모)/주요 출처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세종(世宗)의 위대함은 애민(愛民)정신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의지와 식지 않은 열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글창제나 과학기기의 발명을 위해 노예 출신의 장영실을 중용한 일, 그리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맞는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의 창조 등은 모두가 백성을 사랑한 아름다운 꿈을 이루려는 노력의 결실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요즈음의 분열이 극을 이루고 혼탁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를 보며 세종과 같은 지도자를 고대하는 마음이 크다. 특별히 분단 후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 중 남북문제에서 의미가 있었거나 아쉬웠던 점을 돌아보며 현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정권임에도 북한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을 합의하여 민족통합의 대원칙을 만든 것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구데타라는 정통성의 근본적 하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바로 읽고 ‘7.7선언’이라는 가치 있는 정책을 주도한 점은 평가하고 싶다. 북한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면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 낸 점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아쉬움을 남긴 분은 김영삼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1차 북핵위기 시,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방북으로 어렵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직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 했을 때, 조문파동을 일으키면서 북한의 붕괴를 기대한 어리석음은 질타 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당시 상황을 지혜롭게 관리했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의 진보정권 10년의 포용정책과 9년의 보수정권에서의 상반된 정책 실행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를 충분히 시험에 보았다고 생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북한을 대한 결과 판문점, 싱가포르, 평양에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관계 개선,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던 일은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미국 강경파의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방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용기와 구체적 행동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매우 크다. 윤석렬 대통령께서는 지난 대통령들의 정책에 대한 바른 이해의 토대위에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통찰력을 가졌으면 한다. 북한은 악마가 아닌 같은 민족인 우리의 이웃이며 그들 나름의 국익을 추구하는 정치체제라는 사실, 미국 또한 영원한 구원자가 아니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라는 현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발악에 가까운 근래 북한 행태의 근본적 이유를 파악하고 남북관계 대치 상황의 돌파구 마련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면 한다. 분단을 넘어 평화롭게 통합한 우리 한민족이 세계사를 이끌어 가는 원대한 꿈을 꾸면서 남북문제를 지혜롭게 이끌어 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 반은 3월 20일에 마스크가 해제된 이후에 바로 독감이 유행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싶으면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독감에 걸려 학교를 못 나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인지 다들 꿋꿋하게 벗지 않았다. 그러다 비가 많이 와서 교실이 눅눅해진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놀고 들어 왔다. 샤워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열기와 바깥의 습기가 합쳐지니 교실 안이 금세 끈적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기에는 비가 들이치는 상황이라 조금만 열어뒀고, 에어컨을 틀기에는 추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몸도 마음도 꿉꿉한 채로 수업을 진행했다.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로 습기와 끈적함이 몰아치던 그때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선생님 마스크 벗어도 돼요?”라고 외쳤다. “당연하지!”라는 나의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마스크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마스크 벗으니까 너무 좋다’, ‘완전 시원해’, ‘마스크 너무 답답했어!’ 라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9살 어린이들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3월 20일에 다 같이 한꺼번에 마스크를 벗었으면 모를까, 한번 타이밍을 놓치니까 관성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언제쯤 벗어야 하나 고민하던 즈음에 내가 목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마스크 뒤에 꼭꼭 숨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봄비 덕분에 아이들의 맨 얼굴을 대면했다. 밥 먹을 때 마스크를 벗긴 하지만 급식지도 하는 데 급급해서 밥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꼼꼼하게 살펴볼 일이 잘 없었다. 마스크 벗은 꼬맹이들이 씩 웃는 데 해사함을 인간화한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들 앞니가 몇 개씩 빠져있어 말할 때마다 이 사이로 새는 발음 덕분에 귀여움이 배가 됐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빼꼼하게 내밀고 있을 때는 작은 인간 특유의 귀여움이 컸다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명 한명이 사랑스러움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스크의 해악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마스크가 감염병 예방에 도움을 줬지만, 교실에 마스크가 등장하고 몇 년이 지난 시점부터 부작용이 컸다. 단적인 예로 마스크 벗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밥 먹을 때 부르카를 쓴 것처럼 음식을 마스크 아래로 넣거나 마스크를 벗어야 해서 밥을 안 먹는 아이들이 종종 보였다. 졸업앨범 찍을 때 마스크를 쓰고 찍는 친구도 있었다. 마스크 벗은 자신의 얼굴을 어색해하는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가 낳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영유아 친구들이 어른들의 발음을 보지 못해 언어 지연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당장은 마스크와 작별하며 이런 부작용들과도 안녕했지만, 주기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탄생할 거라는 예측이 많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얼어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날 거란 전망이 있고, 인간이 가지 못하는 지역, 하지 못하는 행동이 없는 한 언제든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몰려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의 민낯이 소중해진다. 어린이들의 해사한 얼굴을 열심히 봐둬야겠다.
한국경제가 새해들어 점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오랫동안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에 안주해오다, 2020년 이후 블록화와 국가주의,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시시각각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올 들어 3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225억 4000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적자(447억 9000만 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30여년간 ‘달러박스’로 여겨졌던 대중국 수출이 지난해부터 본격 추락하더니 급기야 올 1분기엔 79억달러에 이르는 역대 분기 기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이 최대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30%까지 차지했던 대중국수출 비중도 올해 20% 아래로 떨어졌고 그 여파로 한국은 지난달까지 13개월째 무역적자 행진이다. 대중국 수출이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