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확장 억제’를 주 내용으로 한 한미정상의 ‘워싱턴 선언’이 있었던 지난 달 27일은 공교롭게도 5년 전 ‘판문점선언’이 있었던 날이다. 판문점 선언 이 후 급속히 진전된 남북관계는 6.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이끌면서 북미관계가 정상화 되고 북한비핵화 문제도 해결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고, 9월의 평양 5.1경기장에서 문대통령이 북한 주민 15만 명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과 김정은위원장과의 백두산 동반등정 모습에서 우리 국민 모두 통일의 꿈이 현실로 가시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5년이 지난 지금 한미의 정상이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확장 억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바이든대통령이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할 시 북한정권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위협적 발언을 해 북한..
매년 거듭되는 우려지만 올해는 따뜻한 기온의 영향으로 외래 해충피해가 더욱 걱정된다. 외래 매미충류(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등)의 부화가 평년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5월 상순 외래 매미충류(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등)의 부화를 예측했다. 따라서 적극적인 초기 대처가 중요하다며 5월 하순경에 방제작업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해충 가운데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등 해충은 시기나 장소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해충들은 한 번 유입되면 최악의 경우 엄청난 수로 개체를 불린다. 돌발적으로 발생해 농작물이나 산림에 피해를 준다. 이것들은 잎을 갉아 먹거나 가지에 붙어 즙액을 빨아 먹는다. 뿐만 아니라 분비된 배설물은 그을음병을 불러와 과실의 상품가치를 저하시킨다. 토착..
정지아의『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고 나면 싱겁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자 몸부림 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감마저 인다. 실패한 인생의 그저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소설인 까닭이다. 소설은 문제적 인간의 패배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는 그 패배에서 교훈을 얻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좋은 세상을 꿈꾸며 빨치산이 되어 현실에 역류하다 오랜 수감 생활을 한다. 하지만 동지였던 장기수들과 달리 아버지는 자수를 했기에 일정 형기를 마치고 고향인 구례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여느 농부들처럼 농사에 매진한다. 유물론자로서 관념적으로는 투철하지만 일상은 그렇지 않다. 집안일이나 농사일이나 서투르기 그지없다. 노동 중심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로서 낙제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들과 선술집에 출입하며 주모의 엉덩이를 만지기까지 한다. 성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에 저항은커녕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빨치산에게 일상은 이처럼 뛰어넘기 힘든 벽이다. 하지만 그에게 일상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인간 관계망이다. 농사일 하다 동네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즉각 현장으로 달려간다. 척추 협착증이 있는 빨치산 출신의 아내 지청구에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혁명을 했느냐고 큰소리치며 교통사고 민원을 처리해 준다. 환자에게는 감옥에서의 인맥을 활용해서 의사를 소개시켜 주고, 무직인 청년에게는 직장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돈을 써가며 동네 사람들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지만 단 한 푼의 사례를 받은 적이 없다. 막걸리 한 통 사들고 오는 사람이 없어도 매번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며 껄껄 웃고 만다. 이런 성정은 여고생과 스스럼없이 친구로 지내게 한 요인이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 때문에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그에게 "네 어머니 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이긴 위대한 나라이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빨치산 아버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어울린다. 주변에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돕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위로해주고 응원한다. 혁명 영웅이 아니라 따스한 한 이웃일 뿐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와 다를 바 없다. 목수로 살았던 그의 절규는 마치 빨치산 아버지의 절규로 들린다. "난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이웃이 어려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왔습니다....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작가인 정지아 씨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쏟아져 나온 빨치산 문학과는 감성과 메시지가 전혀 다르다. 지난 시절에는 빨치산의 존재와 이데올로기를 알리는데 치중했다면 이 소설은 일상 속에서 구체적 삶을 산 빨치산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렸다. 개성이 있는, 친절한 이웃,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모습. 이 모습이 우리 시대의 감성이자 철학이며 동시에 사회적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장육부 중, 유일하게 문학적인 것,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심장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연주를 듣다가 든 생각이다. 마흔도 못 채우고 떠난 생애 내내, 고국 폴란드의 혁명 실패로 타국에서 떠돌다 절명한 쇼팽. 그의 유언은 심장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바램대로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쇼팽과 같은 떠돌이 삶들의 유언은 대개 ‘내 뼛가루를 고국(고향)에 묻어다오’ 정도지, 심장을 떼내 묻으라는 경우는 드물다. 심장은 마음, 영적인 것의 상징이니, 평생 피아노와 살았던 쇼팽에게 심장은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장기였을 것이다. 내게 폴란드는 쇼팽이고 쇼팽의 음악은 심장이다. 그리고, 폴란드를 각인시키는 또 하나의 심장이 있으니, 폴란드 민요 Dwa Serduszka(Two Hearts; 두 개의 심장)이다. 폴란드 민요하면 ‘산새들이 노래한다. 수풀 속에서, 아가씨들아, 숲으로 가자......’로 시작하는 동요 ‘아가씨들아(Szta dzieweczka)’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폴란드 영화 ‘콜드 워(2019개봉/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속 주제가 Dwa Serduszka를 듣고 감동 끝에 심장이 ‘총 맞은 것처럼’ 되었다. 줄거리를 한 줄로 말하자면, ‘심장 가는대로 사랑하고 예술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대, 음악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정도가 되겠는데, ‘불가능한 시대’라 함은 세계 2차 대전 후 나치의 마수에서 벗어난 폴란드가 공산위성국가로 살던 1950년대 이후의 냉전 시대다. 그 빙하의 온도를 알지 못하면 죽음을 불사한 20년간의 사랑도, 반복돼 나오는 Dwa Serduszka 선율의 격정도 이해할 수 없다. 폴란드는 (그 나라말로 폴스카로 부르는데)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폴라녜 부족이 세운 ‘폴란드인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여러 부족이 살던 이 땅은 966년, 미에슈코 1세 공작이 통합했고 이후 1025년, 폴란드 왕국이 세워져 역사에 등장한다. 1569년,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이 결성돼 17세기까지 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나 1795년, 나폴레옹 전쟁 속에서 제정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분할 지배를 123년간이나 받는 처지로 전락한다. 1918년,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잠시 평화시국을 맞았으나 1939년 9월, 독일의 침공으로 세계 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전쟁 중, 또 독일과 소련에 의해 양분되고 유대인 300만 명을 포함, 600만 명의 국민이 사망하는, 2차 대전 최대 피해국이 된다. 전쟁 후인 1952년, 소련의 전체주의 손아귀에 잡혀 살아야 하는 위성국가가 된다. 1980년, 전기 기술자였던 레흐 바웬사의 연대자유노조 결성 등으로 대표되는 반정부 운동은 1989년, 연대자유노조의 국회 진출, 의회선거 압승, 1990년, 바웬사 대통령 당선으로 대전기를 맞는다. 나아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완전한 독립국가로 선다. 이후 시장경제로 전환한 폴란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시켜나가면서 공산진영이 아닌 자유진영의 최전방 국가로 자리매김한다. 전쟁의 참화, 식민의 설움, 그로 인한 이웃나라 러시아와의 적대시......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영화 ‘콜드 워’의 배경은 1949년에서 1964년까지, 공산주의 체제 하, 사상검증을 받으며 살아가던 냉전 시대다. 음악은 정치적 도구로만 용인 되었다. 국경을 오가며 더 뜨거워지는 20년간의 사랑, 불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폴란드의 시대 배경을 모르고 보면 ‘이해와 용인이 쉽지 않은 사랑 놀음’이고 주제가 ‘Dwa Serduszka’속 반복되는 심장의 은유도 사랑노래의 통속적 표현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지난달 5일 성남시 분당 정자교 붕괴사고 이후 경기도는 경기도건설본부가 관리하는 도내 C등급 교량 58개소에 대한 긴급 점검을 실시했다. 이 결과 교면 상부 139건, 교면 하부 96건, 하부구조 76건, 보행자도로 4건 등 315건의 지적사항이 발견됐다. 철근 노출, 교면 균열 등 심각한 하자도 있다. 교면 상부와 하부에서 균열·포트홀이 발생한 곳이 25군데나 됐으며 슬래브 철근이 노출된 곳은 18군데였다. 8곳은 하부구조에서 골재 노출, 침식·부식 현상이 확인됐다. 특히 파주시 오금교1의 경우 지난달 15일부터 총중량 10톤 이상의 통행을 제한했다. 1979년 준공된 오금교는 노후화에 따른 바닥판 철근 노출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하부구조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에 도는 경미한 47건은 현장 조치하고 141건은 올해 안 공사계약이 완료되는 즉시 보수..
2002년 영국에서 출간된 장하준 교수의 명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는 ‘선진국의 후진국 죽이기’를 별도로 정리한 책이지요.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간 선진국들이 갑자기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을 개발 도상국들이 뒤따르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동이라고 명쾌하게 비유한 이 책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렀죠. 원래 외국에서 ‘별장’이나 ‘저택’을 뜻하는 용어인 빌라(villa)는 한국에서 묘하게 변화했어요.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집합건물인데, 집장사들의 묘한 차별화 상술이 소비자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요. 주거환경에서 비싼 아파트와 큰 차이가 없는 빌라건축 붐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실로 대단해요. 빌라는 오피스텔 대비 전용률이 높고, 아파트에 비해 동일 면적대비 가격이 낮다는 이점이 있어요. 주차장이 넉넉하지 않은 단점을 빼면 그냥 살기에는 참 괜찮은 집 형태에요. 빌라는 무주택자들에게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한 사다리처럼 기능해왔어요. 그 사다리의 가장 든든한 뼈대가 바로 우리나라의 독특한 임대제도인 전세(傳貰) 방식이지요. 전세 빌라는 고정지출을 절약해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그런데 근년에 이 빌라 전세 제도가 그만 동티가 나고 말았네요.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소위 ‘빌라왕’이라는 희대의 사기꾼들에게 주로 젊은이들이 걸려들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비극이 벌어졌어요. 빌라 전세 사기는 중간 단계에 있는 분양대행사와 갭투자자, 공인중개사 등이 소위 불법 리베이트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기극의 배우 역할을 분담했어요. 감언이설(甘言利說) 실력이 프로급인 사기꾼들의 사탕발림 꾐수에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한번 걸려들었다 하면 빠져나갈 재간이 없었겠지요. 인천과 강원도 일대에 500억대 의혹을 사고 있는 남모 씨, 수도권에 170억대 피해를 남기고 사망한 빌라왕 김모 씨, 인천에 100억대 피해를 남기고 사망한 청년 빌라왕 송모 씨…화성 동탄에서 약 250채의 범죄 의혹을 받는 부부 등 피해는 전국에서 연일 불거지며 무한 확산하고 있군요.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한 사람이 수백 채씩의 빌라를 주무르는 위험천만한 장난질을 칠 동안 정부 기관, 여야 정치권은 도대체 무엇을 한 건가요? 권력을 한 줌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드잡이질에 빠져서 아예 눈감고 산 게 아닌가요? 전세 사기는, 어떻게든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려고 발버둥 치는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사다리를 그냥 걷어차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빼앗아 불태워 없애는 만행이에요. 위정자들은 모두 이 악랄한 사건의 공범이나 마찬가지예요. 하루빨리 해결하지 못하고 ‘남탓’ 공방만 거듭할 양이면 모두 자리에서 내려오세요. 더 이상 국민 혈세 축낼 자격 없잖아요. 안 그래요?
미국, 일본과의 정상회담이 끝났다. 한반도와 미래세대에 관한 생각이 없는 언론들은 찬양으로 넘쳐났지만 남은 것은 굴욕감뿐이다. 일본에 100년 전 일로 무릎 꿇게 하지 말자더니 미국에서는 그렇게 외치던 핵공유는커녕 NCG(핵협의그룹)라는 감시기구만 만들어 왔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핵개발이나 핵관련 모든 사안은 NCG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남북교류에 사사건건이 발목을 잡았던 그 워킹그룹이 윤석열 정부의 NCG가 될 모양이다. 외교에 있어서 최우선적 고려사항은 국익이다. 어떤 나라도 대외적으로는 그것이 원칙이다. 국익이라는 명제 앞에 이념도 가치도 후순위일 뿐이다. 정의와 불의의 전쟁으로 인식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제재에 동의하지 않거나 소극적 개입에 그치는 인도, 튀르크에, 사우디, 브라질 등이 그 증거이다. 그중에서 중국의 대두를 주목해야 한다. 이미 세계 경제에서 위안화의 결재율이 달러를 능가했고, 적대국가였던 사우디와 이란의 평화협정을 중재한 것도 중국이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이후 동맹은 속국이 아니라며 미국 위주의 국제질서를 공격하였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이제 달러의 시대를 끝내자고까지 하고 있다. 모두 이념이나 가치동맹이 아닌 국익이라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우리는 이번 방미 결과 과연 국익을 얼마나 챙겼는가. 북핵 확산억제라는 큰 틀의 선물을 받았다고? 그럼 이전에는 북핵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우리를 포기했을까? 이미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액이 133조 원에 이르는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받아온 투자액은 화려하게 치장된 넷플릭스를 포함해 8조 원이었다. 대통령의 미 의회 영어연설에 미 의원들의 엄청난 환호가 쏟아진 이유를 진정 몰라서인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대한민국이 국익은 고사하고 시대착오적인 20세기의 냉전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전 세계는 냉전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였다. 한반도 역시 냉전을 벗어나고자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를 시작으로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구사회주의권 국가들과 교역을 넓히며 그것을 북한에 대한 지렛대로 삼아 왔다. 이들과의 교역 확대는 그대로 북한에 압박이 되었고 남북교류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의 친북노선에서의 이탈은 북방정책의 쾌거였으며 이들 나라에서 얻는 경제적 수익은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그러나 로이터통신 인터뷰 한 번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졸지에 적대적 국가로 만드는 신공을 발휘한 윤 대통령은 연일 압도적 힘의 우위로 북핵을 누를 수 있다고 외친다. 도청 건도 일본과의 굴욕외교도 긴급한 안보 우려 때문이란다. 한미일 군사훈련 강화는 그대로 북중러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져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야기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진정 핵무기로 상호견제하여 균형을 이룬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power)의 냉전을 원하는가? 탈냉전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냉전을 부추기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어쩌란 말이냐.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생산인구 감소,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유일한 정책적 대안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의 존재는 이제 한국경제를 뒷받침하는 상수(常數)가 됐다. 그러나 이처럼 소중한 소임을 맡은 그들의 생활환경을 비롯한 처우는 여전히 야만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경기도는 앞장서서 이주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책무가 있다. 더 집중해야 한다. 지난 2020년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던 한 외국인 노동자가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사망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주거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 3월,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10년째 일해오던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돼지 배설물의 악취와 유독가스가 가득한 방에서 생활..
부산에서 ‘체인지(體仁智)’라는 이름의 0교시 아침운동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갈 조짐이라고 한다. 체인지는 체육(體育), 인(仁), 지육(智育)의 줄임말이면서 ‘변화’의 영어(change)겠다. 센스 만점의 언어 변주(變奏)다. 이 변화를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덕체(智德體)라는 흔히 쓰는 말의 굴레를 이제야 벗어나는가 싶은 (필자의) 설레는 마음 때문이다. 거꾸로 체덕지(體德智)다. 학교 현장이 이런 개념을 터득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도 중요하다. 큰 박수를 보낸다. ‘체인지’라는 말로 교육을, 아이들을 ‘바꿔보자’는 뜻까지 표현하고자 덕(德)을 인(仁)으로 바꿨겠다. 德은 ‘크고 착한 마음’이다. ‘어진(仁) 마음’의 뜻과 거의 같다. (말의) 순서는 현장에서 ‘정치적’이다. ‘박정희’ 때는 군관민(軍官民)이었다. 언젠가 민관군(民..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의 지난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맞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당대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한때 나라를 빼앗겼다. 중요한 것은 빼앗긴 나라를 어떻게 되찾고 다시 세웠느냐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기울인 노력은 정녕 부끄러운 것이었을까. 아니다.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었는가는 이석영 일가의 선택과 결단 하나만 살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1855년 이조판서 이유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석영은 영의정을 지낸 종숙 이유승의 양아들이 되었다. 서른 살에 과거에 급제해 고종을 보좌하는 승지로 관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그는 미련 없이 관직을 떠났다. 고종이 중추원 의관에 임명했지만 그는 남양주로 낙향해 돌아가지 않았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간판마저 떼어내자 이석영의 6형제는 만주로 가 항일운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이석영의 동생 이회영이 먼저 서간도로 가 독립군 기지를 물색하고 돌아왔다. 이석영은 양주 일대의 만 석 재산과 토지를 모두 처분했다. 이석영이 양아버지 이유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조 단위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양주에서 서울까지 오면서 80리 길을 남의 땅을 밟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석영의 나머지 5형제도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60여 명의 가족이 함께 만주로 떠났다. 그들 형제가 소유했던 토지는 여의도 면적의 세 배가 넘었다. 이석영과 그 형제들의 자산으로 신흥무관학교가 개교했다. 이석영은 독립을 위한 일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으면서도 어떤 자리와 영예도 사양했다. 자기를 내세우는 일을 한사코 사양한 이석영이 지녔던 직함은 ‘신흥무관학교 교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10여 년에 걸쳐 배출한 3500여 명의 졸업생은 대한독립군의 근간으로 항일무장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대한제국의 병력이 7000이었던 데 반해 1920년대 전후로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약한 독립군은 1만을 헤아렸다. 전재산을 아낌없이 독립군 양성에 바친 이석영은 76세에 몸져누웠다. 막냇동생 이호영이 그를 국내로 몰래 데려와 치료한 덕분에 기력을 회복한 이석영은 다시 동지들이 있는 중국으로 떠나려 했다. 건강을 염려한 동생이 여비를 마련해주지 않자 금강산 유람을 다녀올 여비를 달라고 해 기어이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비지로 겨우 연명하던 조선 최고의 부호 이석영은 여든 살에 상해의 빈민가에서 아사했다. 그들 6형제 중에서 살아서 조국으로 귀환한 이는 다섯째 이시영 하나였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당대 최고의 부호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고 아사의 길을 걸어간 애국자가 있었던가. 여섯 형제와 그 가족들이 기꺼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풍찬노숙하면서도 조금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끝까지 형제애를 발휘했다. 그런 위엄을 지닌 이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과연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