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대한 일그러진 생각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에 따른 인재인데도 젊은이들이 놀러가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의무인 안전은 오간데 없다. 사회 일각에서 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축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한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를 의미 없는 유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은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축제라기보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인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일주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달성한 것은 그 정점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 자발적 축제문화가 강릉 단오제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끊긴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와 박정희 군사정권 등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축제를 미신으로 프레임 씌웠다. 90년 대 이후 축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지자체 주최의 지역 축제나 상업적 축제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1996년 412개였던 지역 축제는 2018년에 886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척박한 축제 풍토에서 이태원 핼로윈 축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번에 주최 측이 없다는 것이 큰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바로 축제의 본질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축제는 자발적 참여로 공연자와 관람자 경계가 없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하위징아는 『호모루덴스』1장에서 놀이를 여섯 가지 정도로 정리하는데 그 첫 번째로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또는 몰입 행위"로 정의한다. 그래야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축제라 할 수 있는 것이 충족된 만큼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 등장한 가면과 코스튬, 즉흥 공연, 음악 등은 축제의 본질에 가닿게 한다. 참가자들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연유로 짓눌려 있다. 살인적 양극화나 성 불평등, 실업, 후진적 정치 등 현실 문제부터 필멸에 따른 운명이나 불가해한 세계 등 인간의 한계까지 고통의 요인은 차고 넘친다. 류정아의『축제인류학』에 프로이트의 축제론도 소개돼 있는데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프로이트는 축제를 공정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인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로 본다. 즉 그에게 있어서 축제는 '금기의 위반, 과도함과 난장트기'이다." 이는 자신들의 속박을 풀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왜 이태원에 갔는지 알게 해주는 유용한 힌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태원 핼로윈 축제는 과정에 있다. 모든 자발적 축제가 그렇듯이 축제에는 세월이 필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규모로 열린 이번 축제는 달라진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타깝다. 안전장치가 마련된 토대에서 이태원 핼로윈 축제가 젊은이들의 대표 축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참사로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빈다. 축제를 즐겼던 당신들은 멋진 사람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지난 4일 열린 경기도의회 2022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황대호(민주‧수원3) 부위원장은 경기문화재단 소속 박물관·미술관 수장고 포화율을 지적했다.(본보 7일자 3면) 황 부위원장은 수장고 부족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온 것이라면서 수장고가 협소해 보관은 물론 분류조차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문화체육관광국은 관련 예산조차 편성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예산 확보와 신규 수장고 신설 등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물과 미술작품의 수집·보존·전시를 담당하는 시설이다. 일반인들은 전시 기능을 제일 먼저 떠 올리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장 기능이다. 이 기능을 담당하는 수장고는 까다로운 관리 조건을 갖춰야 한다. 보존에 적합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습기를 막을 수 있..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20세기를 빛낸 찬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울림이 있는 색상과 심플한 형태로 자기만의 화법을 개척했다. “예술가는 본능과 직감에 의해 이끌려야 한다”는 명제로 예술을 새롭게 창조한 마티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북부 카토 캄브레시스의 외할아버지 댁이었다. 하지만 유년기를 보낸 건 외가에서 15킬로 떨어진 보엥 앙 베르망드아의 부모님 집이었다. 부친은 곡물과 그림을 파는 가게를 했고 모친은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가 자란 곳은 베틀을 짜는 직물염색공업이 발달했다. 마티스의 색감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마티스는 청년기까지 전혀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법률보조인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화구상자를 주었다. 이는 정녕 신의 한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마티스는 인생의 재미를 느꼈다. 결국 직장을 접고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학창시절 마티스는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채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에게 친구들은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티스의 운명을 바꾼 건 귀스타브 모로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이 선생 덕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다. 물론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고갱, 세잔, 고흐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이었다. 또한 그의 스페인, 모로코, 러시아, 타이티 여행도 크게 한몫했다. 세계 여기저기를 돈 마티스. 그가 최종 닻을 내린 곳은 프랑스남부 방스(Vence)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폭격의 위험에 처한 니스를 떠나 이곳에 왔다. 방스는 마티스에게 니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게 했다. 니스에서 1시간 남짓 떨어졌지만 타이티를 연상시켰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소녀들, 여인들,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달리는 남자들은 시장이 개장될 때의 타이티를 생각나게 했다. 이런 방스는 마티스의 말년을 살찌웠다. 영혼의 안식처인 이곳에 그는 로제르(Rosaire) 소성당을 지었다. 일명 마티스성당인 이곳은 방스의 찬란한 햇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는 검소하지만 하양파랑 기와와 초승달과 불꽃모양의 13미터 철조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난 오로지 성실하게 일만했다. 이 성당은 내 모든 화가생활의 총결산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 성당은 내 최고의 걸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여든네 살까지 장수한 마티스.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과 코르시카 등 여러 곳에 미술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마티스를 한눈에 보려면 방스가 최고다. 마티스성당은 그를 총망라한다. 더구나 방스는 모두의 로망인 프로방스가 아닌가!
직업병의 대물림이라는 비극적인 태아 산재 보상에 대한 시행령 개정안이 2022년 10월 17일 드디어 입법예고 되었다. 더불어 2017년 직업성 암의 추정의 원칙 도입 이슈 등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 있어서 산업재해 적용의 확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터의 위험으로부터 손상된 자녀의 건강도 산재보호 받는다 2023년 1월부터 뱃속의 태아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임산부 근로자의 업무 환경 탓에 선천적으로 건강 손상을 입고 태어난 자녀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에는 태아의 건강이 업무상 재해로 인해 손상받더라도 근로자 당사자가 아닌 태아는 청구권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산재법상 보험급여 청구자는 수급자와 동일해야 하는데, 근로자 뱃속의 태아는 근로자 당사자가 아니기..
파란 하늘이다. 물걸레로 닦아낸 칠판 같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아서,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지 못한다. 슬쩍 한 칸 내려서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해 걸어가지 못한다. 파란 하늘이라서. 다 벗겨지고 속살만 남은 가을날이라서. 없어서. 보이지 않아서. 나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명랑한 하루 앞에 그림자로 선다. 처남이 죽었다.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 처남의 죽음이 합쳐진다. 화장터 소각로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주검이 눕는다. 주검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은 자들이 운다. 울음의 사연은 소각로마다 다르지만, 울음이 향하는 방향은 시뻘건 불꽃 너머로 같다. 아무리 울어도 불꽃 너머는 꿈쩍없다. 할아버지가 운다. 처남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이다. ‘인수’일까 ‘연수’일까.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할아버지의 슬픔이 버스를 삼킨다. 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 늙은 아비의 울음 앞에 모두가 침묵한다. 눈시울을 훔치는 승객도 몇 있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의 동행이다. 죽음 다음은 늘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남은 자들은 묻고 덮고 잊는 일을 견디며 산다. 살아내는 일처럼 오랜 견딤이 또 어디 있을까. 망각이란 것도 견딤을 위한 돌출행동일지 모른다. 음식을 씹어 삼키는 행동조차 견딤을 위한 준비동작일 수 있다. 견디기 위한 망각본능 비슷한 것. 보고 듣고 씻고 자는 것 역시 그런 것 아닐까. 파란 하늘이다. 막 눈을 뜬 새벽 같다. 어쩌면 그런 까닭으로 헤어지는지 모른다. 가을 말이다. 계절을 가려가며 작별하는 건 아니지만, 유독 가을날의 이별은 쓸쓸하다. 나뭇가지를 버리고 추락하는 낙엽 때문일까. 아니면 둥지를 버리고 떠나는 철새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바다를 버리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 죽는 연어 때문일까. 버림이든 떠남이든 죽음이든 가을과 만나면 파랗게 멍이 든다. 멍든 속살을 다독이며 견디는 건 버림과 떠남과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생명의 몫이니. 가을은 견딤의 계절일 수밖에. 그렇다고 무작정 견딤을 강요하진 말자. 산에 떨어진 빗방울이 계곡물을 만나지 않고 강에 도달할 순 없으니까. 온전한 견딤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과 만나야 할 시간. 만나지도 않고 헤어질 순 없지 않는가. 헤어짐이 두려워서 만남을 외면하진 말자. 버림보다 고달픈 건 고립이고 떠남보다 야속한 건 고독이다. 오지도 않은 내일이 두려워 뜬눈으로 밤을 새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오고야 말 것은 마침내 오고야 마는 것이니. 가을 다음은 겨울이고 겨울 다음은 기필코 봄이다. 기꺼운 봄이라고 겨울을 건너뛸 순 없다. 기꺼운 것이 가슴에 살아 꿈틀거린다면, 꿈틀거리는 그것을 붙들고 이 계절을 견뎌내자. 참고 버티며 살아내자.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것도 결국은 참고 버티는 일인데, 사랑이라거나 헌신이라는 것들은 오죽하겠는가. 파란 하늘이다. 당신이 딛고 선 가을 또한 그러한가.
경기도의회가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두 달 가까이 지연하면서 다음 달부터 일부 학교의 학교급식이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는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온다. 현재 학교 기본운영비로 교육청 부담액을 충당해 집행 중인 상태이지만, 일부 지역은 다음 달부터 학교급식을 중단해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맘카페 등에 지방의회의 지각없는 드잡이 정쟁 행태에 대한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당리당략에만 빠진 정치인들의 반성과 대책이 요구된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9월 8일 경기도가 제출한 6천282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2개월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교육청도 본예산 대비 5조62억 원 증액한 24조2천21억 원 규모의 ‘2022년도 제1회 경기도교육비특별회계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지만, 심의가 중단된 상태다. 이 추경안..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이태원 압사 참변의 애도 기간이 지나자마자 정치권의 죽기살기식 정쟁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네요. 여야 정당이 쏟아내는 악담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정말 이태원에서 횡액을 당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요. 앞서서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어떻게 하면 악재를 극복해 볼까 전전긍긍이고, 야권은 때 만난 듯이 물어뜯는 하이에나 떼와 조금도 다르지 않군요. 일단 드러난 사실만으로 논하더라도, 이태원 비극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진 국가의 계통 부실이 빚어낸 처참한 결과물이에요. 국민 안전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은 어떻게든 민심이 용납할 수준의 책임 판단에 있어야 할 거예요.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대형 참..
체험학습으로 북한산 원효봉 등산을 다녀왔다. 처음 아이들과 북한산에 가는 걸 떠올렸을 때는 1학기 초반이었고 그때는 코로나 때문에 올해도 수학여행을 못 가는 게 거의 기정사실인 상태였다. 수학여행을 못 간다면 6학년 마지막으로 뭔가 기억에 남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야외면서 밀집도를 낮출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친구들과 종종 가는 북한산이 떠올랐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어떤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2박 3일 지리산 등산을 갔다는 것도 등산 체험학습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등산은 몹시 위험한 체험활동 중 하나이다. 절벽 부근에서 낙상하면 크게 다칠 위험이 존재한다. 활동 중에 체력 저하나, 다리 부상으로 인해 낙오되는 학생이 있을 확률도 있다.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계획이 필요했다. 주변에 친한 교사..
지난주 실시된 ‘비질런트 스톰’ 한미연합 대규모 공중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다. 휴전 후 최초로 동해 NLL 이남지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ICBM을 포함, 다양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에게 공포심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 군은 NLL 이북 공해상에 대등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도발에 강력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도 이번 사태에 대한 평가를, 계획된 방어훈련인데 북한이 7차 핵실험의 구실을 찾기 위해 도발을 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남북 상호간 강 대 강 대처가 상승작용을 하다 혹시라도 원치 않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 올까 걱정이 크다. 북한의 저의(real intention)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5년 만에 실시되는 최신예 공군기가..
믿기지 않는 참사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가 일어났다. 핼러윈 축제에 참여하려고 찾은 젊은 청춘들이 어처구니없이 길바닥에서 스러졌다. 사상자들 중에는 외국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은 20대들이다.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밀려드는 곳에서 출동한 소방구조대원들과 시민들이 넘어진 사람들을 들어내고 긴급 CPR을 실시하였으나 희생자는 너무나 컸다. 그런데 이후에 드러나는 경찰과 행정자치부, 용산구청 등 관계 기관의 무대응과 책임자들의 발언과 그 인식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말의 전쟁 언어 전쟁 여권은 이를 두고 사고라 하고, 야권은 참사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사망자라고 하고, 다른 측에서는 희생자라고 한다. 분향소에 조화만 있고 영정과 위패는 없다. 국가애도 기간을 선포했지만 검은 리본 띠에는 ‘근조(謹弔)’가 없다. 커뮤니케이션학은 사람들의 소통 현상을 커뮤니케이션의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말이나 글로써 감정이나 정보, 지식을 소통한다. 화자와 청자는 말로써 서로의 의사를 전하고 수용하고 토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화자와 청자는 전하고 수용하는 양자 간의 ‘의미 공유’가 핵심적인 과정과 결과가 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는 말과 글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게 되고 상징화가 이루어진다. 사고, 사망자라는 단어는 중립적이나 무미건조하다. 스물여섯 명의 외국인을 포함해서 156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고를 그저 ‘사고(事故)’라 할 수 있고 ‘사망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이 말로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와 그 주검을 받아든 가족들의 심정을 어찌 위로할 것인가. 사고, 사망자로 칭한 이들의 공감의 뜨거운 ‘심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참사(慘事)이다. 그것도 대참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분향소에는 왜 영정과 위패가 없는가. 숨진 이들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고 조화와 조문객만 있는가. ‘근조’ 없는 검은 리본을 패용(佩用)한다고 근조의 위로가 될 수 있는가. 공감과 소통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메시지는 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화자는 특히 책임자의 말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물론 사람들(言衆)들의 언어 느낌과 뉘앙스를 잘 이해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정말로 무엇이 문제인지, 왜 참사는 반복되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과 사회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