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3월15일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에 세계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용인시 남사읍,이동읍 일원 710만㎡(215만평)에 2042년까지 300조 원을 투입하여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공장(팹)5개를 구축하고,국내외 소부장,팹리스 기업 150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현재의 글로벌 경쟁은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정부가 발표한 용인 세계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작한 현재까지 세계최대인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120만 평의 조성과정을 되돌아보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필자가 경기도 투자진흥국장과 경제투자실장등으로 근무하면서 추진했..
사람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일 곧 모든 일의 근본이 되는 일만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영혼을 개선하고, 영혼의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모든 사람들의 근본 사명인 것은 이를 달성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는 유일한 목표라는 사실에 비추어 봐도 명백하다. 젊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사명은 끊임없는 자기완성이며, 심지어 모든 인류의 죄악과 불행을 제거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공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공상 속에 세속의 때가 묻어 오랫동안 인간 본연의 삶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며 그저 주어진 그대로 살라고 충고하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진리가 들어있다. 젊었을 때의 공상이 잘못된 것은 자기완성과 자기 영혼의 완성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 장차 일어날 일을 지금 당장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다. 나날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보다 좋은 삶은 없으며, 실제로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큰 기쁨은 없다. 이것이 내가 오늘까지 끊임없이 경험해온 행복이며, 내 양심이 나에게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우리의 단점은 너무 많아서 지적받는다고 금방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들을 확실히 알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자극이 되어 양심이 나태한 잠에 빠지는 것을 막으므로 결국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그 단점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된다. (파스칼) 최상의 행복은 일 년 전보다 자신이 나아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소로)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너희의 어버이처럼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말한 것은, 너희 내부에 있는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데 노력하라는 뜻이다. 숨을 거둘 때 ‘왜 죽어’ 소리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이 있을 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숨거둘 때 ‘왜 이래?’, ‘왜?’ 소리가 나와서는 안 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지금 왜 그럴까,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숨거둘 때 ‘왜’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친구니까 부탁합니다. 가족에게도 이런 말은 못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좋다는 것이지요. (류영모)/주요 출처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세종(世宗)의 위대함은 애민(愛民)정신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의지와 식지 않은 열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글창제나 과학기기의 발명을 위해 노예 출신의 장영실을 중용한 일, 그리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맞는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의 창조 등은 모두가 백성을 사랑한 아름다운 꿈을 이루려는 노력의 결실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요즈음의 분열이 극을 이루고 혼탁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를 보며 세종과 같은 지도자를 고대하는 마음이 크다. 특별히 분단 후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 중 남북문제에서 의미가 있었거나 아쉬웠던 점을 돌아보며 현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정권임에도 북한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을 합의하여 민족통합의 대원칙을 만든 것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구데타라는 정통성의 근본적 하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바로 읽고 ‘7.7선언’이라는 가치 있는 정책을 주도한 점은 평가하고 싶다. 북한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면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 낸 점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아쉬움을 남긴 분은 김영삼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1차 북핵위기 시,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방북으로 어렵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직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 했을 때, 조문파동을 일으키면서 북한의 붕괴를 기대한 어리석음은 질타 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당시 상황을 지혜롭게 관리했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의 진보정권 10년의 포용정책과 9년의 보수정권에서의 상반된 정책 실행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를 충분히 시험에 보았다고 생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북한을 대한 결과 판문점, 싱가포르, 평양에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관계 개선, 나아가 북핵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던 일은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미국 강경파의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방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용기와 구체적 행동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매우 크다. 윤석렬 대통령께서는 지난 대통령들의 정책에 대한 바른 이해의 토대위에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통찰력을 가졌으면 한다. 북한은 악마가 아닌 같은 민족인 우리의 이웃이며 그들 나름의 국익을 추구하는 정치체제라는 사실, 미국 또한 영원한 구원자가 아니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라는 현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발악에 가까운 근래 북한 행태의 근본적 이유를 파악하고 남북관계 대치 상황의 돌파구 마련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면 한다. 분단을 넘어 평화롭게 통합한 우리 한민족이 세계사를 이끌어 가는 원대한 꿈을 꾸면서 남북문제를 지혜롭게 이끌어 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 반은 3월 20일에 마스크가 해제된 이후에 바로 독감이 유행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싶으면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독감에 걸려 학교를 못 나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인지 다들 꿋꿋하게 벗지 않았다. 그러다 비가 많이 와서 교실이 눅눅해진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놀고 들어 왔다. 샤워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열기와 바깥의 습기가 합쳐지니 교실 안이 금세 끈적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기에는 비가 들이치는 상황이라 조금만 열어뒀고, 에어컨을 틀기에는 추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몸도 마음도 꿉꿉한 채로 수업을 진행했다.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로 습기와 끈적함이 몰아치던 그때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선생님 마스크 벗어도 돼요?”라고 외쳤다. “당연하지!”라는 나의 대답과 함께 아이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마스크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마스크 벗으니까 너무 좋다’, ‘완전 시원해’, ‘마스크 너무 답답했어!’ 라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9살 어린이들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3월 20일에 다 같이 한꺼번에 마스크를 벗었으면 모를까, 한번 타이밍을 놓치니까 관성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언제쯤 벗어야 하나 고민하던 즈음에 내가 목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마스크 뒤에 꼭꼭 숨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봄비 덕분에 아이들의 맨 얼굴을 대면했다. 밥 먹을 때 마스크를 벗긴 하지만 급식지도 하는 데 급급해서 밥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꼼꼼하게 살펴볼 일이 잘 없었다. 마스크 벗은 꼬맹이들이 씩 웃는 데 해사함을 인간화한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들 앞니가 몇 개씩 빠져있어 말할 때마다 이 사이로 새는 발음 덕분에 귀여움이 배가 됐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빼꼼하게 내밀고 있을 때는 작은 인간 특유의 귀여움이 컸다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명 한명이 사랑스러움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스크의 해악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마스크가 감염병 예방에 도움을 줬지만, 교실에 마스크가 등장하고 몇 년이 지난 시점부터 부작용이 컸다. 단적인 예로 마스크 벗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밥 먹을 때 부르카를 쓴 것처럼 음식을 마스크 아래로 넣거나 마스크를 벗어야 해서 밥을 안 먹는 아이들이 종종 보였다. 졸업앨범 찍을 때 마스크를 쓰고 찍는 친구도 있었다. 마스크 벗은 자신의 얼굴을 어색해하는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가 낳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영유아 친구들이 어른들의 발음을 보지 못해 언어 지연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당장은 마스크와 작별하며 이런 부작용들과도 안녕했지만, 주기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탄생할 거라는 예측이 많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얼어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날 거란 전망이 있고, 인간이 가지 못하는 지역, 하지 못하는 행동이 없는 한 언제든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몰려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의 민낯이 소중해진다. 어린이들의 해사한 얼굴을 열심히 봐둬야겠다.
한국경제가 새해들어 점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오랫동안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에 안주해오다, 2020년 이후 블록화와 국가주의,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시시각각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올 들어 3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225억 4000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적자(447억 9000만 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30여년간 ‘달러박스’로 여겨졌던 대중국 수출이 지난해부터 본격 추락하더니 급기야 올 1분기엔 79억달러에 이르는 역대 분기 기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이 최대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30%까지 차지했던 대중국수출 비중도 올해 20% 아래로 떨어졌고 그 여파로 한국은 지난달까지 13개월째 무역적자 행진이다. 대중국 수출이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
최근 국회에서 음력 8월13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지정하는 법률이 통과되어 1000만 이산가족들의 오래 바람이 현실화 되었다. 이산가족단체들은 이산가족들이 고령화되어 이산가족문제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세대를 이어 두고두고 이산가족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 실천의지를 간직하고자 그동안 이산가족의 날 지정을 희망해 왔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지정이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 문제로 보고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해결노력을 기울여 왔다. 반면 북한은 월남 이산가족은 북한 체제를 등지고 떠났다는 이유로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였다. 비록 남북한간 합의로 고향방문단 교환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수차례 진행하였지만, 가족을 상봉한 이산가족은 2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상봉신청 이산가족 대부분이 70대 이상이어서 북한에 생존해 있을 지도 모르는 혈육 상봉의 기회가 점차 소멸되어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부디 많은 고령 이산가족분들이 건강하게 100세이상 장수하시면서 북한의 혈육과 살아생전에 만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우리는 이산가족문제를 최우선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북한의 선의에 맡겨두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의 유도를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대가로 북한에 식량지원하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접근으로 이산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북한은 이산가족 문제를 국면전환을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 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서독이 동독에 억류된 인사 석방을 위해 현물 제공을 한 ‘프라이카우프’방식이나 동유럽의 인권개선을 위해 경제지원과 안보문제를 함께 다룬 ‘헬싱키프로세스’와 같은 접근을 시도해 본 적이 있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제는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 문제로 보아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는 노력보다는 ‘가족행복추구권’이라고 하는 인류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 보고 북한에게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인권침해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문제의 인권적 성격을 강조할 때 이산가족문제는 더 이상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로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문제 해결을 도모해 나갈 수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북한인권의 일부이다. 북한인권이라고 하면 북한주민의 식량부족과 취약한 보건의료 수준 등 열악한 사회권과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처형 등 자유권 탄압사례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북한인권에는 남한에 혈육을 두고 생사확인, 소식교환, 그리고 상봉이라는 가족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의 인권 침해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넷플릭스의 다큐 시리즈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나는 신이다』를 보며 한숨 내쉰 사람이 한두 명 아닐 것이다. 보편과 상식의 세계에서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입장을 표명하는 등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의문을 하나로 축약하면 '어떻게 사람들이 뻔한 거짓말에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을까?'가 아닐까 한다. 실제 다큐에서 다룬 사이비 교주들은 누가 보더라도 특별난 게 없는 사람들이다. 학력이나 지나온 삶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뒤처진다. JMS 정명석의 경우 학력이 초졸인데 소개된 사이비 교주 대부분이 저학력자들이다. 기독교 교단에서 엘리트 코스는커녕 평범한 과정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 반면에 그들을 떠받든 신자들은 대졸 학력이거나 중산층 이상이다. 성폭력 혐의로 수감 중인 이재록이 세운 교회에는 회계사 등 사회의 엘리트들이 적잖이 포진돼 있다. 이들이 성금 등으로 한 번에 건네는 봉투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 경제적 능력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정명석이 수배 중이었을 때 법률 팀을 이끈 신도는 검사와 국정원 직원, 육사 출신 군 간부, 대학교수 등 사회 엘리트층이었다. JMS 교회 중 신도수가 가장 많은 곳이 분당 백현동의 모 교회라는 건 상징적이다. 사이비 교주를 떠받드는 층이 고학력자에 중산층 이상인 것이다. 고학력자·중산층이 저학력자·가난한 집안 출신 사이비 교주에게 가스라이팅 당한다는 건 너무 비대칭적이지 않는가?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이 가능하려면 그 반대여야 할 것이다. 학력이나 경제적 능력 등이 우위에 있는 쪽이 모든 면에서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상을 일거에 깼기에 『나는 신이다』가 준 충격이 컸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은해 씨의 용소계곡 살인 사건도 비대칭적이다. 수사 전문가들이 가스라이팅 사건으로 이름 붙인 이 사건의 살인 용의자 이 씨는 중졸인데 반해 숨진 남편은 명문대 출신인데다 대기업 연구소 직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여성을 가스라이팅해 무려 2500번이나 성매매 시킨 혐의로 지난 달 붙잡힌 여성도 피해자와 가깝게 지낸 회사 동료였다. 이같은 비대칭적 가스라이팅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의 상식인 수직적 신분 관계가 가스라이팅의 상수가 아니라는 강력한 반증이다. 가스라이팅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인이나 부부, 친구, 직장 선후배 등 가까운 사이에서 가스라이팅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널리 알고 있다시피 가스라이팅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의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한 이래 1946년 조지 쿠거 감독의 동명 영화를 통해 일반화되었다. 이 용어 하나로 인간과 인간의 잘못된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사례를 살펴보면 가스라이팅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동정심, 연민을 파고든다. 한 번 걸려들면 자신이 심리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돈도 학력도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철학의 주제 중 하나인 주인의식은 그래서 영원하다는 걸 확인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는 가스라이팅의 폐해가 그만큼 넓고 깊기 때문이다.
경기신문 3일자 1면에는 한 여성의 옆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사진이 실렸다. 이 여성은 발달장애를 겪는 두 자녀를 홀로 키우는 의왕시민 김미하 씨다. 그녀는 유방암 4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이며 남편은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났다. 극한의 정신‧신체적 고통을 견뎌야 하는 항암치료를 받는 몸이면서도 경기도와 의왕시에 발달장애인들의 주거유지 돌봄체계를 요구해왔다. 도는 발달장애 24시간 돌봄, 장애인 기회소득, 훈련장애인 기회수당, 장애인 누림통장, 장애인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지원 강화 등 장애인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등 발달장애 지원책을 마련했다. 지난 3월 30일 김 지사와 만난 자리에서 김 씨는 김 지사와 경기도에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다. 김 씨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우리 아이보다..
지난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였다. 이로써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을 지렛대로 멀어져가는 미국의 주의를 환기하고, 총력을 다하여 추진하고 있는 경제 개혁의 장애물인 안보 위협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이란은 최근의 시위로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파할 계기를 마련하였다.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파키스탄 등에서도 양국이 관여하였던 내전이 종료되거나 갈등이 완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과거 수십 년 동안 보아 왔던 미국의 역할을 중국이 대신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평화 중재자로서 역할을 완수한 이 사건은 중국의 외교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사례다. 향후 중국의 일대일로는 이란-페르시아만-사우디아라비아-홍해-아프리카 통로와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지중해 통로를 통하여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3월 29일 상하이협력기구에 ‘대화 파트너’로서 참여를 결정하였고, 올해 2월 이라크가 허용한 원유 거래의 위안화 결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 보여준 새로운 외교 모델, 즉 ‘공정 중재 모델’은 중재자의 공정성에 대한 당사자의 공감을 바탕으로, 당사자가 처한 지경학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를 통하여 해결책을 찾는다. 이 모델은 이데올로기적 맹목성, 선악 이분법, 경제제재, 기축통화의 무기화, 군사적 위협 등을 앞세우는 ‘강압 모델’과 차별화한다. 이 모델의 확산 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겉으로는 평화 합의를 지지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스라엘도 숙적 이란을 겨냥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안보 연대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을 들여왔던 아브라함 협정과 I2U2(중동판 쿼드)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1980년 걸프만을 미국의 배타적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으로 선언하였던 카터 독트린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선 중동 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완화됨으로써 원유 수송로의 안전성이 제고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페트로 위안의 현실화로 인한 원화 환율의 위안화 동조화 문제와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비책이 요구된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이라는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미국에 370억 달러에 달하는 보잉 여객기의 구매를 확약하고 아브라함 협정에도 가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헤징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는 중견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주의적 균형 외교의 모범 사례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벌였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향해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나라의 참모가 주군인 양공에게 건의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라며 거절했다. 강을 건넌 초나라가 채 진용을 갖추려 하는 순간 다시 건의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거절했고 전쟁의 결과는 송나라의 패배와 송양공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송양지인’이라 하여 제 분수를 모르고 명분만을 내세워 상대방을 동정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영웅 안중근 의사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1908년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함경북도 경흥과 신아산 부근에서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면서 5명의 일본군을 포로로 잡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포로 처리를 두고 안중근은 주위의 반대에 국제공법을 들어 처벌치 않고 석방해 주었다. 포로의 정보로 일본군은 독립군의 아지트를 정확하게 공격해 안중근 부대는 괴멸하고 해체되었다. 명분을 중시하다 참혹한 결과를 야기한 그는 독립운동진영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12명의 동지와 단지동맹을 하고 다시금 일어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러 가게 된 계기도 민족과 동지들 앞에 참회가 있었다. 이처럼 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워 감동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은 결코 명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베푼다는 것도 명분에 맞아야 하지만 이 역시 실질적 이해타산이 전제이다. 송양공이나 안중근 의사를 탓하는 이유도 전쟁 중인 상황에서의 명분 논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양공의 잘못된 명분으로 수없이 죽임을 당했을 송나라 군인들과 백성, 그리고 베풂의 결과로 희생되었어야 할 독립군들 모두 지도자의 명분 집착의 결과였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의 결과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징용피해자들의 제3자 변제로 시작된 명분이 멍게와 수산물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일본 초계기, 급기야 독도문제까지 온통 일방적인 결과들 뿐이다. 단 한 번의 정상회담 결과치고는 완패도 이런 완패가 없다. 그런데도 폼생폼사, 일본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란다. 이제 3주 뒤면 한미정상회담이다. 이번엔 또 무슨 청구서를 받아들고 올까.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반도체법 등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한국을 미국이 특별히 국빈 대접을 한다고 한다. 1년에 한두 차례뿐인 미국의 국빈초대를 한다고. 왜? 설마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와 러시아의 관계는... 국제외교의 무대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지만, 현실은 국익을 위한 치열한 각축의 장이자 소리 없는 전쟁터이다. 제발 송양지인의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