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지난달 말일 ‘2022년 제1차 경기도공공보건의료위원회’를 열었다.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가치가 새롭게 각인된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신설된 정책기구다. ‘건강 격차 없는 환경 조성’이라는 선진복지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큰 활약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차별 없는 보건의료 환경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정책 방향이다. 경기도공공보건의료위원회(이하 위원회)에는 행정1부지사와 경기도의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경기도의료원장·경기응급의료지원센터장·보건소장·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등 20명의 도정 핵심 책임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첫 회의에서 ‘응급·외상·심뇌혈관·암 등 중증의료’..
현실은 소설보다 잔인했다. 이태원에서 젊은 청춘들이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지난밤, 연락이 닿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애를 태운 부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핼로윈의 밤은 끔찍했다. 옆에는 푸른 천에 시신들이 덮여있고 다른 쪽에선 구급대원들이 미친 듯이 CPR처치를 하고 있는데 상황을 모르는 지척에선 클럽의 음악에 맞춰 떼창과 춤이 멈추지 않았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왜 대한민국에선 이런 말도 안되는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인지.. 이를 묻고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애도는 희생자를 능멸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행사는 많다. 특히 대한민국은 수십만 명정도의 집회는 주말마다 예사로 치러낸다. 여의도나 해운대 등에서 매년 개최되는 불꽃축제도 백만명은 우습게 모..
이태원 무더기 압사 참극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대형 사고였다. 이번 비극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불감증’ 고질병이 치유 불능상태에 다다랐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참사를 계기로 연중 수많은 행사를 치르는 지역의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모든 이벤트에 관리주체를 분명히 하고 적용할 엄격한 ‘안전사고 예방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불행을 소재로 시도하는 분열 작당만큼은 철저히 배격돼야 할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에서 핼러윈을 맞아 몰려든 군중이 내리막길에서 밀려 쓰러지고 밟히면서 무려 150여 명의 국내외 인명이 희생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유례없는 참변이 일어났다. 좁은 내리막길 폭 4m, 길이 45m 내외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이 깔리거나 밀려 선 채..
마스크 시대가 지나간다. 숨쉬기 불편하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답답한 마스크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와 더불어 서서히 절대적이던 위력을 잃어간다. 하지만 2년 전 코로나가 끝나면 마스크를 불 질러버리겠다던 사람들은 이미 마스크 의존에 빠졌다. 콘서트장이나 축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산길을 걷거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조차 마스크와 한몸이다. 알레르기나 감기 예방, 수시로 돌아오는 코로나 재 유행에 대한 불안 때문만은 아니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자신의 보호막을 잃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오 판츠(顔パン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마스크의 별명은 ‘얼굴 팬티’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팬티를 입지 않은 것처럼 얼굴이 허전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물론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쓴 모습이 더 멋져 보인다..
10월의 끄트머리에서 청춘 154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지경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최우선 순위의 수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예방할 수 있었던 후진국형 인재(人災)였다. SBS는 지난 28일, “경찰이 핼러윈 기간 동안 총 30만 명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알고 있었다. 사전 통제 부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사건 발생 하루 전, 28일에도 이태원엔 사람이 엄청 많이 몰렸다. 참사 조짐이 있었다(연합뉴스, 2022.10.30.). 압사 사건 당일, 이태원엔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용산구청장, 용산지역구 국회의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행정은 부재중’이었다. 2021년 핼러윈 축제엔 17만 명이 몰렸다. 지자체 공무원과 경찰 4600명이 투입됐었다. 올핸 200여명 투입. 인원 통제 인력이 아닌, 마약 단속 병력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 29일 밤부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국민이 바보가 된 순간이다. NYT, WP, WSJ, CNN 등 외신은 일제히 "좁은 지역에 10만 명, 군중 통제 없어"라고 문제를 지적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안전한 대한민국’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기 전, 전조 현상들이 있었다.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공장에선 20대 여성근로자가 소스 배합 작업 중에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23일엔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샤니 공장에선 40대 남성근로자가 기계에 검지가 절단됐다. 25일엔 대구 매천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6일 봉화 광산에선 광부들이 매몰됐다. ‘인간 존중’을 도외시하는 제도, 관습, 인식 등에서 문제점들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재난을 폄하하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발 뉴욕타임스는 “생명을 앗아간 인파로 윤석열 대통령은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Deadly crowd surge is yet another trial for South Korea’s President Yoon.)”고 지적했다. 가계와 기업에선 인재(人災) 속에서 ‘각자도생’의 기류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인간 존중’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의식마저 시나브로 퇴조하는 분위기다. 국민은 이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명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8년 6개월 만이다. 이슈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관심을 갖는 위기관리.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국민, 정부, 언론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위기관리의 중심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 리더십이 바로 서야 공직기강이 바로 선다. 대통령의 사저 출퇴근, 꼬리를 무는 실언, 퇴근 후 음주 논란 등이 해소돼야 한다. 청와대 이전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관해서도 정직한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의 기강은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 공직기강 해이로는 국가의 위기를 예방할 수 없게 된다.
어제(10월 30일) 수원시 주민자치회, 통장협의회 등 주민단체 회원들과 시민, 이재준 수원특례시장, 관내 국회의원, 시·도 의원 등이 참석해 오후 3시부터 수원시청 맞은 편 올림픽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수원시민 규탄 결의대회’가 이태원참사로 취소됐다. ‘발바리’라고 불렸던 연쇄 성폭행범이 출소해 수원에 거주하게 된다는 소식에 시민들의 불안감은 매우 크다. 악질적이고 비인간적인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수원시 출입을 거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 28일 이재준 시장과 박광온(수원시정)·백혜련(수원시을)·김영진(수원시병)·김승원(수원시갑) 의원은 법무부를 찾아가 범죄예방정책국장에게 ‘연쇄성폭행범 수원 거주 반대 건의서’를 전달했다.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연쇄성폭행범의 수원시 출입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연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공간적 단절은 사람들에게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생산해 냈다. 지난 3년은 각자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거나 또는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았던 코로나19 상황도 조금씩 종식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활기를 찾고 코로나19의 대표적 제재 대상이었던 해외여행도 시작되었다. 아마도 공간적 단절의 대표적 사례가 해외여행의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내게도 베트남을 가야 할 일이 생겼기에 오래전부터 꼭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한국인에게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진 다낭의 시골 마을인 퐁니퐁넛(Phong Nhi and Phong Nhat massacre)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정책과 정치는 다르다. 정책은 정치과정의 산물이지만 그 둘은 목표가 다르다. 정치가 집권과 권력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정책은 국가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목표로 한다. 며칠 전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권 속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해당 소위를 통과했다. 법사위와 본회의가 남아있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이 작심하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쌀 초과생산량이 3% 이상,가격하락이 5% 이상이면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2005년 81kg에서 2021년 57kg으로 줄어들었다. 식생활문화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된다. 재배면적을 줄여야 할 판에 세금을 들여 남는 쌀을 사면 쌀 재배 유인이 증가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심화될 것이라는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30년의..
지난 10월24일은 48년 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선언 대회를 열고 권력의 탄압을 거부하고 사실보도를 다짐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유신 시절 죽어가던 이 땅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기자들의 희생적인 투쟁은 1980년 광주학살의 진실 보도를 막은 신군부의 검열거부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의 자유 언론을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직 언론인들은 선배들의 투쟁에 빚을 졌다고 생각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이처럼 빛나는 역사가 벌써 빛이 바랬던 것일까? 오늘의 우리 언론 현실에는 온통 비루하고 추악한 보도가 난무하니 어찌 된 일인가? 그 일그러진 대표적 사례가 바로 ‘청담동 룸바’ 관련 언론의 보도행태라고 할 수 있다. 탐사전문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심야에, 론스타 사건을 비롯한 주로 국익에 반하는 소송을 도맡아온 국내 최대의 로비스트 변호사들 다수와 어울려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을 기사화했다. 더탐사는 이 보도와 관련해 현장에 있었던 첼리스트의 남자친구와의 통화 녹취록과,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대행의 사실확인 통화내용을 인용했다.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킬 큰 뉴스이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당연히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큰 뉴스가 터지면 언론사들은 긴급 취재팀을 꾸려 진실파악을 향한 후속 취재에 나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언론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첼로 연주자와 밴드 마스터가 윤과 한,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여명과 동석해 이들의 노래 반주를 위해 장시간 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취재원 수도 적지 않고 추가 취재도 어렵지 않을 텐데, 모든 언론이 지금껏 묵언수행 중이다. ‘기사가 안된다’는 듯이 후속보도에 무심한 채 ‘술집 위치도 특정하지 못했다’느니,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기엔 두 사람 모두 쌩쌩했다’느니 하면서 윤석열과 한동훈을 감싸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을 공격하기도 한다. 한 장관의 명명백백한 해명을 촉구하기는커녕 김 의원과 더탐사에 대한 반격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제보자 녹취록에 담긴 첼리스트 대화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데다 술자리에서 첼로 공연 대가로 지급한 입금자 이름과 입금 액수를 특정했음에도 한동훈 등이 불러주는 일방적 주장만 ‘받아쓰기’에 올인하는 비루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언론인들은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공동체가 당면한 의제의 해결을 위해 공론의 장을 형성할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이 기본적 책무를 내팽개친 오늘의 게으르고 무심한 언론인들을 개탄한다.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성찰하는 언론이 돼야 한다. 그러지 못한 언론은 재앙이고 흉기이다.
10월 한 달 동안 여섯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탄생(결혼)보다 죽음이 많으니 인구 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이 곧 탄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다며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딩크(DINK : Double Income No Kid)족들이 부쩍 많아진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질 인구 증가율은 마이너스이다. 노동력은 점점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4차 혁명에 걸맞게 첨단 로봇이 거의 사람 수준으로 개발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데다 한편으론 그 같은 자동화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는 저소득 노동자층의 노동권 박탈을 해소할 방법이나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일종의 21세기 형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벌어질 판이다. 주차장에서 주차 요원으로 일하던 노년층들은 주차 시스템의 자동화로 거의 사라졌다. 카페나 식당의 서빙 노동자들도 로봇의 등장으로 조금씩이긴 해도 교체될 전망이다. 결국은 이런 등등의 고민을 해결할 유일한 방향은 복지의 확대이다. 병원을 가거나 교육을 받는 일, 흔히 얘기하는 웰다잉(Well-dying)에 있어 치매 노인 돌봄 같은 사회적 서비스를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보장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우려가 모이면 출산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비루하고 고단한 인생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기 싫은 법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지난 열흘 간 지병이 재발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병동, 그리고 외래 진료를 돌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의료 환경은,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복지 시스템을 잘 장착시킨 분야라는 점이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이 결실이다. 혼미했던 정신 탓에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MRI만 세 번을 찍었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고 일반 병동에서는 간병 간호인 시스템에 의해 가족면회조차 금지된 상태에서 비교적‘서럽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그 병동 복도에는 서예 작품이 하나 걸려 있다. 이렇게 쓰여 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순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병들어서 가장 서러울 때는 아무도 내 병을 돌보지도 않을뿐더러 관심조차 없을 때이다. 가족이 찾아올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들 것이다. 요즘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가족의 역할을 다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간호 인력을 그만큼 충분히 투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병들어 서러운 것 중에 으뜸은 돈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서조차 나갈 때 내야 할 치료비가 걱정이라면 서러움이 북받쳐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 ‘문-케어’는 이런 걱정을 크게 낮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낸 돈은 3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MRI 세 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임을 실감케 한다. 항간에서는 이런 문-케어가 축소되거나 없어지기 전에 아픈 것도 빨리 아픈 게 낫다는 말이 돌고 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과잉 진료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보재정 건전화를 추진할 의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의료 민영화를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일이 빈번해지고, 반면 취약 소득계층은 의료 서비스에 있어 점점 더 소외받는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와병을 반복할 때마다 93세 노모의 걱정과 잔소리도 늘어난다. 노모는 카톡으로 건강이 최고다, 일을 줄이고 몸을 돌보라, 적어도 몇 달은 쉬어야 한다는 둥의 얘기를 보내신다. 다 옳은 말이지만 한국 자본주의 환경에서는 아플 권리 역시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을 쉬면 당장 한 달의 생계가 끊기는 상황에서, 기본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가하게 요양을 한다느니, 시골에 내려가서 건강을 회복하며 지낸다느니 하는 얘기는 다 헛소리일 뿐이다.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프리랜서 노동자, 글 노동자들의 원고료는 200자 원고지 1장 당 8천 원에서 만원인데 이 가격은 지난 30년간 단 1원의 변화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원고 프리랜서가 3인 가족을 유지하려면 최소 300매의 원고를 써야 한다. 한 번에 100매씩 세 건의 원고를 쓰는 건 노동강도가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한 번에 10 매씩 30 건의 원고를 쓰는 건 지옥의 노동에 해당한다. 원고료의 현실화는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주무부처에서 주도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는 30년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하고 그 노동 때문에 다시 병이 도지고, 결국 이것 역시 빈곤의 악순환이다. 어디선가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지금의 윤 정부가 그러한 위업을 달성해 낼 수 있을까.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윤 정부 실력으로는 정치의 민주화를 달성하거나 국방의 선진화를 이루어 내지도 못할뿐더러 경제와 민생을 잘 챙기지 못할 것이다. 부자 감세만으로도 그건 이미 판명이 난 일이다. 춘천의 레고 랜드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천억 막으려고 50조 플러스알파의 양적 완화를 시행한 것은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준 것일까. IMF 때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론 스타 사태처럼 해외 헤지펀드의‘먹튀 장난질’이 더 큰 판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상의 시름이 깊어진다. 국민 개개인의 걱정을 사는 국가는 옳게 작동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그렇다. 그것도 집권 단 5개월 만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국가 운영을 한 줌의 특수부 검사로만 해 낼 것인가. 그들의 비뚤어진 소명의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1918년에서 1933년까지 단 15년만 반짝했다. 이후엔 바로 히틀러 시대로 넘어갔다. 이때의 독일 문화의 부흥은 후대의 세계사에 남을 정도다. 지금 K콘텐츠가 세계를 주름잡는다. 반짝하는 모양새일 수 있다. 앞으로의 한국사회가 걱정되는 건 바이마르 시대가 생각나서이다. 당신은 정말 걱정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