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종로를 마다하고 지역주의에 도전하겠다며 부산에 출마했던 노무현 후보가 낙선 후 한 말이다. 정녕 농부는 밭을 탓해서는 안 되는가?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으려면 우선 농사짓기 좋은 땅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지리적 조건과 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노무현이 말한 밭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의 집단이다. 표밭이라고 하지 않은가.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이성적이고 현명해야 한다. 국민이 1류인데 정치가 3류일 수는 없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정치인은 밭을 탓하지 않지만, 국민은 주인답게 이성적으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표밭의 주체들은 올바른 선택을 위해 나라 일에 두루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인간은 제한적으로만 이성적인 감정의 동물이다. 과학이 증명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경험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부단히 학문에 정진하며 수련하라 했던 것이다. 지역주의에 도전한 노무현 후보를 낙선시킨 것은 바로 지역감정이었다. 이성적 선택이 아닌 것이다. 고정관념에 따라 주먹구구식 판단을 하는 인지적 편향이 인간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을 시스템 오류라고 하는데, 인류가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을 엄혹한 환경에서 생존해오면서 익숙해진 직관적 판단이 자연선택에 의해 행동지침으로 뇌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편파적인 보도가 일상이 되고, 그것이 다시 대다수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 정치인은 그 표밭을 정상화 하는 대신에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적응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면해주었다. 그에 부응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것도 아니다. 무지하고 비이성적인 독단이다. 그러나 대통령 탓할 것도 없다.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타를 상실하고 표류하는 민주당도 실은 이성이 작동하는 대신 감정이 지배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의견에는 의견으로 맞서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는 게 민주주의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이성적으로 비방하고 제 철도 아닌 수박 타령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20대를 전후로 한 시기에 형성된 세계관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차단한 상태로 세월을 보내면 보수화된다. 책을 읽는 대신에 유튜브에 의존해온 MZ 세대의 보수화도 예측 가능한 현실이다. 너무 일찍 심도 있는 이성적 사유를 중단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지마을 과수원에는 닭이 외출을 나와 외식을 즐기고 있다. 겨울 동안 갇혀 있다 나와서 그런지 닭들의 기분 좋은 모습을 보게 된다. 발톱으로 흙을 비집어 차내고 날개를 폈다 오므리기도 한다. 수탉은 암탉을 쫓아 따라가고 많은 닭이 새 풀을 쪼며 식도락에 취해 있다. 과수원의 해묵은 나무들은 겨울 모습 그대로 검은 빛이다. 나무들은 올해에는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위하여 꽃을 피울 것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어서 큰 나무 곁에 세대교체를 위해 심어 놓은 어린나무에는 되도록 그늘 지지 않도록 하여 빠른 성장을 돕겠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아침, 이 과수원 길에서 새봄을 발견하고 있다. 새봄에 생각나는 유머가 있다. 생전의 한승헌 변호사가 두 번째 평양 방문 때의 일이다. 숙소인 양강도 호텔 안 책방에서 『세계의 유모아』라는 책을 샀다고 한다. 그 안에 있는 유머 중 하나이다. 아버지 : 네가 좋아하는 과목은 무어냐? 딸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에요. 아버지 : 정말이냐? 그렇다면 이 아버지도 기쁘다. 딸 : 예, 우리 수학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늘 외출을 하거든요. … 누가 뭐라 하든 3월은 졸업과 입학의 시즌이다. 대한민국에 살며 아이들 공부와 학비 걱정 없는 부모 드물 것이다. 검 ‧ 판사, 정치꾼, 비도덕적인 경제인을 제외한 선민(善民)들은. 내 인생살이는 부모 모시고 살면서 아이들 셋 교육시키고 40대 후반에 아파트 한 채 구하고 나니, 부모님 가신 뒤 아내도 놓치고 말았다. 나는 낯 갈이가 심하고 심약했다. 형제 없이 홀로 지내면서 생활의 질보다 삶의 질을 생각했다. 공부하는 습관 속에 자급자족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소신을 지키며 나 자신의 주인답게 살고자 했다. 딱 하나 후회가 있다면 아이들 행복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3월이 오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한 달 동안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공부! 공부! 금메달, 은메달, 서울대, 무슨 의대, 사법고시 합격- 등으로 아이들과 세상 사람 기죽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평소 ‘평범한 삶, 높은 이상’을 생각해 왔다.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다. 유관순 열사, 김구, 안창호, 월남 파병을 위한 교육의 현장에서 순직한 강재구 소령, 이분들도 ‘평범한 삶(plain living)’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다만 그 당시의 나라 꼴이 꼴이 아니었기에 우리 같은 후손을 생각하여 ‘높은 이상(high thinking)’을 실천하며 목숨을 내놓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일하는 습관, 건강관리 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이 잘 지켜졌으면 싶다. 공공의 무대에서 물러나 덕스러운 휴식의 계절을 산다는 것. 이것은 현세와 내세 사이의 틈을 살면서 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이상을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 88올림픽 때는 이어령 선생의 발상에 의해 그 어마어마한 스타디움에서 어린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달려갔다. 그 순간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천지에 가득했다.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감성과 지성을 아우르는 예술적 덕성을 지닌 분이 참으로 그립다. 대한민국의 행복을 위하여.
14일부터 안산 대부도 지역에 ‘똑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설명에 따르면 똑버스는 ‘경기도형 수요응답형 교통체계’로써 ‘똑똑하게 이동하는 버스’라는 뜻이다. 도내 입주 초기 신도시, 또는 농어촌 지역 등 버스 운행이 드문 지역 주민들의 교통 편리성 증대를 위해 개발됐다. 아파트 단지가 입주할 때마다 땜질식 버스 노선이 신설되는 신도시나 인구 감소에 따른 운송 적자로 운행을 꺼리는 농·어촌 지역의 열악한 대중교통 서비스의 보완재로 등장했다. 사용자가 경기교통공사에서 운영하는 통합교통플랫폼 ‘똑타’ 앱으로 ‘똑버스’를 호출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운행 중인 버스가 경로를 변경해 사용자가 원하는 곳으로 도착한다. 정해진 노선이 있는 기존 버스와 달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승객들의 수요에 맞춰 실시간으로 최적의 이동..
목 디스크는 나이가 면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PC 사용 시간이 늘면서 올바르지 않은 목을 앞으로 숙이는 구부정한 자세로 장시간 취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목에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연령과 관계 없이 목 디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대표적 증상인 뒷목 통증, 두통과 함께 팔까지 저리거나 어깨까지 불편해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을 끼칠 수 있다. 혹시 지금도 사용하는 모니터의 화면이 눈높이보다 낮은데도 불구하고 모니터 아래 받침대를 안쓰고 있지는 않는지, 출퇴근 대중교통 안에서 고개를 숙인채로 휴대폰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틈틈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목 디스크란 튀어나온 경추간판 조직이 신경을 누르거나 자극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목뼈 사이 충격을 완..
얼마 전 까지 안성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하면서 보이스 피싱(대출사기)을 당하지 말자는 내용의 신문 기고를 여러 번 하였으나 지금도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는 계속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리고 이번 발령에 실종 업무를 담당하는 안성경찰서 형사과 실종팀으로 발령을 받았고, 근무 기간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현장에 나가 업무를 접하면서 아쉽다고 느낀 점이 있다. 먼저 실종이란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유형을 보면 유아, 아동, 학생, 장애인, 성인, 치매 노인, 자살우려자, 가출 등 모든 국민이 해당 된다. 이들 중 치매노인, 유아, 부녀자 등 빠른 조치를 요하는 업무가 있으나, 단순 부부싸움으로 집을 나가거나 장애우(자폐 등,)의 거주지 이탈 등도 있다. 빠른 조치를 요하는 업무는 집 주변이나, 관제센터 등에 신속히 출동하여 CC-TV 등을 통해 대상자의 동선을 확인하고, 옷차림 등 인상착의를 빨리 전파하여 전체가 공조 되어야 한다. 단순 부부싸움으로 집을 나가는 경우 시간이 지나 감정이 수그러지면 스스로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며, 장애우의 경우 집 주변에서 발견 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 부부싸움 인한 가출이나 청소년, 장애우의 거주지 상습이탈자 등을 늦게 찾거나 업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부부싸움의 경우 조금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꺼 놓았던 전화기도 켜지고 통화도 되며 스스로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또한 새학기를 맞이하여 우리 어린 자녀들이 들뜬 마음에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역시 휴대전화, 목걸이, 팔찌 등 부착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건소에서 배부하는 배회감지기를 배부 받아 착용 할 수도 있고, 치매(배회) 인식표도 있다. 배회감지기는 손목시계처럼 차는 것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감지기이고, 치매인식표는 치매노인이나 자폐성인 등, 집을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 잘 입는 옷이나 지팡이 등 도구에 인식표를 올려 놓고 다름질을 하면 인식표가 새겨지며 그 인식표에 고유번호가 있어 실종자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인적사항이 확인(프로파일링 검색) 되어 가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창문경보기라는 것은 경보기를 문에 설치하면 문을 열 때 마다 경보가 울려 치매노인이나 장애우 등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어 실종을 미리 예방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신고인 스스로가 자녀나 가족이 집을 나가 배회하는 걱정을 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봄이 다가옴에 따라 야외 나들이가 많을 것이며, 이로 인한 치매노인, 장애우, 미아 발생 등이 우려되며, 가족 중 누군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걱정된다. 따라서, 경찰, 가족, 주변인 모두 실종의 우려가 있는 대상자들을 잘 관찰하고 보살펴 실종으로 인한 걱정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 레토릭(rhetoric)은 ‘말과 글을 도구로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수사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레토릭은 B.C. 467년 시칠리아 시라큐스의 법정 변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레토릭은 양날의 칼이었다. 타당한 설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이는 건강한 레토릭이 있다. 반면에 일그러진 언어로 진실을 왜곡하는 타락한 레토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은 작전 수행 시 의도치 않게 민간인이 사망하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다. 가치판단을 말끔히 소거함으로써 현실의 참혹을 감추는 타락한 레토릭의 전형이다. 윤석열정부가 앞선 정부들과 크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압도적으로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압수수색 횟수 또한 역대 최고다. 과거에는 정치권 내부 공방에 불과했던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실이 직접 형사고발을 한다.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취재권리 억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자 접근 금지를 법원에 신청하기도 한다. 2.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차별점은 역시 기괴한 레토릭의 대잔치다.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바이든이 날리면” 소동은 접어두자.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핵심 개혁 대상으로 연금문제, 교육 문제, 노동문제를 제시했다. 이후 발언 빈도를 살펴보면 세 가지 가운데 노동문제, 특히 노동조합 문제가 타깃임이 분명해 보인다. 과연 한국의 노동조합 상황이 개혁의 대상인가?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다. OECD 국가 중 영국이 23.5%, 이탈리아 32.5%, 덴마크가 67.0%다. 유명무실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징하듯, 대한민국은 경제 수준에 대비해서 거꾸로 노동자 권리가 가장 억압된 국가 중 하나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 레토릭’은 중요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건폭(건설현장의 노조 폭력)이란 작명이 예시하듯, 팩트의 일면을 침소봉대함으로써 교묘하게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기업규모와 유형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쌍둥이 2중구조의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 대통령이 지칭하는 귀족화된 노동기득권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7.4%에 불과한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국한되는 것이다. 3. 이러할 때 개혁을 빙자한 대통령의‘전면적’ 노동조합 공격은 사회 저변의 반 노동조합 정서를 이용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를 갈라 치는 정치경제적 선동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노동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통해 보수 유권자 정서를 자극하고 지지율을 확대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지난 2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연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자신이 추진하는 혁신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혁신은 낡은 생각이나 구조를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중립적 개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낯 두껍지 않은가. 나부끼는 검찰 통치의 깃발 아래 재벌자본, 고급관료, 보수언론 등 우리 사회 과두 기득권의 이익을 앞장서서 실현하는 사람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진하는 경제, 사회, 복지 전 분야의 심대한 양극화. 주 69시간 근무제로 대표되는 노동환경의 극단적 퇴행. 남북관계의 긴장과 전쟁위험 고조를 어찌 감히 혁신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4. 매국노 이완용은 1919년의 삼일운동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이렇게 썼다. “대저 조선과 일본은 상고 이래 동종동족이며 동종동근임은 역사에 있는 바이라, 그런즉 일한합병(日韓合倂)으로 말하자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로 단행”되었다, 고.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삼일절 기념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변했다. 국권 상실의 원인을 일본의 침략이 아닌 우리 책임으로 몰아가는 기괴한 레토릭이다. 곧이어 튀어나온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수단방법 안 가리고 본질을 숨기는 이들 레토릭이 일시적으로 대중을 현혹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원히 속지 않는다. 마그마의 압력이 증폭되듯 언젠가는 진실이 지표를 뚫고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닮은 것은, 언어의 왜곡이 극단에 이르면 ‘리플리증후군’이 온다는 거다. 가짜를 웅얼거리다가 스스로의 정체성까지 착각하는 것이다. 2023년 3월 8일 고양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통령이 입장하는 순간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가 왕왕 울려 퍼졌다. 그가 민중의 대변인이라는 뜻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윤석열은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의 확고부동한 대리인이다.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 극단적 수구 정치인이다. 군내 나는 신자유주의 레코드판을 틀어대며 온갖 극우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권력집단의 수장을 향해 민중의 노래라니. 언어가 타락하면 그렇게 나라가 타락한다.
인류 사회의 진보와 향상을 위한 진지한 첫걸음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 주된 원인으로서 신앙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므로 신앙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가르침은 사회의 개선에 언제나 무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가르침이 훌륭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식에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훔친 불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사회 기구를 위한 첫걸음은 언제나, 땅에 대한 당연하고 평등하며 빼앗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럼으로써 그 밖의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 보장이 없는 한 다른 모든 것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헨리 조지) 사회는 공통의 신앙과 공통의 목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인 활동은 종교에 의해서 성립된 원칙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치니)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다. 어쩌면 “옛 성인들에게서 배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한다. 실천을 통한 살아 있는 신앙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짐승보다 더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다. (이오안 즐라토우스트) 그리스도교는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다이너마이트처럼 모든 낡은 것들을 부수고 새롭고 무한한 진보의 지평선을 펼쳐 갈 것이다. 만일 네가 현재의 잘못된 사회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더욱 선량해지는 것이 그것인데, 이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네 자신부터 더욱 선량해지는 일이다. 사람의 얼이라는 것은 온갖 힘의 물둥지다. 모든 냇물이 흘러서는 물둥지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는 흘러나서 여러 갈래의 냇물이 되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마지막에 한 번은 반드시 정신으로 바뀌어져 생명의 물둥지를 이루게 되고, 거기서야 또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다. (함석헌) /주요 출처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전기자동차 시장 생태계가 급변하며 우리의 대응 능력이 걱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점유율 등 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각국과 기업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미국 테슬라가 올초 모델Y 가격을 한꺼번에 1만3000달러 내리는 등 가격전쟁을 선언했다. 또 독일의 폭스바겐은 15일 2만5000유로(약 3500만원)의 소형 SUV 전기차를 공개했다. 전기차가 내연 엔진 차량보다 저렴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에다 미국이 자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광폭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한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광물 공급망 강화 등에 나서며 한국 기업들이 이중삼중의 협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 취약하..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쓴다는 건 알았다. 스포츠, 날씨, 증시 같은 분야로 한정해 있긴 해도 어느 쪽이 사람이 쓴 건지 구분 못 할 정도로 인정해 줄 만하다고 들었다. ‘로봇 기자’라고 불렀다. 로봇 기자가 단순 반복형 기사를 맡아 써준다면 인간 기자는 복잡하고 심층적인 뉴스에 전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나왔다. ‘상대적 기대’지만 AI 기자가 인간 기자를 대체할 정도까진 다다르지 못했다고 평가했을 때 얘기다. 이번엔 좀 다르다. 오픈AI가 출시한 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를 돌파했다. 인공지능 챗봇이어서 이용자가 질문을 해야 답변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인증 후기가 넘친다. 정치 연설문을 작성했다거나,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는 것들이다. 청년문제를 주제로 하는 기사 작성을 주문했더니 놀라움을 안겼다는 반응이 있고, “챗GPT에게 기후위기를 물었다”, “챗GPT가 작성한 여론조사 분석기사”라는 뉴스도 등장했다. 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은 챗GPT로 작성한 논문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덕분에 전문성과 숙련성이 필요한 문서 작업도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근거가 생긴 상황이다. 챗GPT의 한계를 밝혀내려 하는 시도가 느는 것은 재밌는 현상이다. 수학 계산을 틀린 경우가 많다거나, 영어 아닌 한국어에는 기대에 못 미친다 등이 그런 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살짝씩 틀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쯤이야 챗봇의 학습 속도로 보면 곧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항상 따라붙는다. 놀라운 것은 답변한 내용 중에 단순 사실 몇 군데 틀린 것이 대수냐 하는 반응이다. 그럴듯하게 문장을 완성하고 설득력 있게 답변하는 챗GPT에 너도나도 놀랍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보편화는 막을 수 없다. 로봇이 만든 것이라고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결과물의 종류가 넘쳐날 가능성이 는다는 의미다. 인간 기자가 쓴 기사일수록 논리가 빈약하거나 비문으로 쓰였다는 식의 비꼬는 평가가 나오는 일이 머지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하지 않게 교육방식과 과제출제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AI를 거치면 손쉽게 전문가 수준의 지식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지식의 접근으로는 사람이 한 분야의 전문가나 달인이 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만들어내고, 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정해 가는 과정을 제대로 하게 만들지 못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선택과 주의, 집중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은 인공지능이 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때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독립운동은, 조국을 떠나 반제 해방 투쟁의 길로 나선 사람들과, 남아서 광복을 준비한 애국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동포들과 남은 가족들은 독립운동의 큰 뜻을 같이 하면서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광복의 새날을 기다렸다. 따라서 광복 이후 세워져야 하는 민족 국가는 이들 독립운동가와, 그 뜻을 함께 하면서 독립투사들을 지원한 민중이 중심이 돼 건설돼야 마땅했다. 민족을 배반하여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부와 권력을 챙긴 친일세력은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민족사적 正義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반민족 행위자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해방 정국에서 패권을 이어가는 뒤틀린 역사가 펼쳐졌다. 외세의 한반도 분할 지배로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득세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결과다. 이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