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은 약속이다. 허락과도 다름없다. 열고 닫음은 허락과 거절의 몸짓인 셈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바다남쪽(海南) 기와집의 솟을대문도 그렇다. 대문은 안으로 열리는 안여닫이 방식인데, 높이와 넓이가 넉넉해서 팔을 벌리거나 들어도 끝에 닿지 않는다. 양쪽 기둥에 매단 두 짝의 문은 각각 여덟 칸의 널빤지를 세로로 켜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세로로 세운 여덟 칸의 널빤지는 네 개의 각목을 가로로 덧대 고정시켰는데, 간격이 고르고 반듯해서 세로로 세운 널빤지의 평생 동무로 적격이다. 잘 짜진 문은 하루에 한 번 열린다. 열림이 한 번이니 닫힘 역시 그렇다. 열렸다 닫히는 하루를 흉내 내듯 문은 안으로부터 딱 한 번 열렸다 닫힌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열림과 닫힘도 한 번이다. 엄마를 열고 나왔다가 세상을 닫고 사라진다. 시간을 열고 생겼다가 기억을 닫고 흩어..
미사일이 마구 날아다니고,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네요. 청백 군사들이 호시탐탐 상대방의 심장을 노려 일격필살의 승기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 모습이 험악하군요. 이러다가 정말 큰 변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수시로 엄습해요. 러시아 침공으로 참혹한 전장이 돼버린 우크라이나 풍경이냐고요? 아니에요. 최근 여야 정쟁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권 이야기에요. ‘적폐 청산’은 사전적으로 ‘과거의 쌓아온 폐단을 없앤다’는 용어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살짝 다른 의미로 느껴왔지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구호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아떨어지면서 반론의 여지가 좁았어요. 그 시절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보수 야당은 사뭇 ‘정치보복’이라며 부글부글 끓었지만요. 지난 3월 대선으로..
지인들과 파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가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다.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목록을 공유하면서 당분간은 다른 커피숍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한 이가 있어서였다. SNS에 ‘#SPC불매’, ‘#멈춰라SPC’ 해시태그가 늘었다. 불매운동 지지가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PC계열사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 지난 15일이다. 동료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직접 수습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가림막을 해 두고 동료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동부가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의 트라우마 등을 이유로 작업 중지를 권하자 그제야 일단 중단했다. 사망한 노동자 빈소에 회사가 놓고 간 파리바게뜨 빵 상자 사진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조금씩 확산했다. 노동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자 관행이고 회사방침..
시종일관 막장극으로 일관한 새 정부 첫 국정감사 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과반 야당이 불참한 썰렁한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날 검찰이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을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하고,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빚어진 파행이다. 국감 기간 중 굳이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상임위가 막말 정쟁에다가 소란을 거듭했다. 도대체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민생은 어쩔 참인가, 국회에 묻고 또 묻는다. 국감 첫날 법사위는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가 쟁점으로 떠올라 개의가 미뤄졌고, 외통위는 박진 외교부 장관 퇴장 여부로 30분 만에 중단됐다. 국방위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다음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그는 외국인 최초로 무형문화재인 가야금 산조(散調) 전수자다. 미국 알래스카 출신, 본명은 Jocelyn Clark. 이 이름에서 한국이름 '조세린'이 나왔다. 그 이름을 "고향 떠나(趙) 이역만리 타향살이(世)에서 중국 황제시대에 신수(神獸)로 여겨졌던 상서로운 동물(麟)이 될 팔자"라고 풀어줬다. 자칭 '알래스카 조씨'라 한다. '얼음 氷, 북쪽 北, 새鳥'를 합하여 옥편에 없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자기존엄성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1970년생 개띠.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다. 그를 만난 건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계기였다. 내용도, 문장도 특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음악을 우주 운행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큰 예술가다. 그도 가야금 뜯으며 손가락이 멍들고 피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고행은 멈춤이 없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의 운명이다. 개천이 쉬지 않고 흘러가야만 강에 이르고, 마침내 대해(大海)에 도달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그는 천재였다. 서너 살에 이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열살 전에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중국 가면 중국어를 빠르게 익혔다. 독일어,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그의 우리말은 99점. 가야금 병창에서 부르는 노랫말들은 이백 년 전 가사인데다, 중국의 고대신화와 당시(唐詩) 등이 줄거리인 문학이다. 그는 그 배움의 과정에서 느낀 문제의식ㅡ가야금 병창 관련ㅡ으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고교를 다니면서 '고토'를, 중국 난징예술대학으로 유학가서는 '쟁'(箏)과 서예를 배웠다. 그리고 1992년에 국립국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가야금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스물 둘 꽃다운 청춘이었다. 고토와 쟁은 각각 그들의 가야금으로 생각하면 된다. 쟁이 둘의 원조다. 그는 가야금을 만나서 힘들지만 깊이 행복한 연주자가 되었다. 가야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여러 종류의 소리로 말하는 생명체다. 역병이 창궐하기 전에는 혼자서 장장 9시간 동안 지속되는 국립극장의 판소리 완창공연을 찾곤하였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진도씻김굿도 서울공연 할 때마다 찾아가서 긴 시간 조상들과 특별한 스승들의 천도를 빌었다. 예외없이 만석이었다. 그 '비합리적인, 이상한, 할 일 없는' 관객들이 실은 21세기에 황금기를 구가하는 한국문화(KㅡCulture)의 듬직한 바탕이다. 그 역사와 전통, 즉 근본없는 딴따라의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서서 국악을 홀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학대다. '교실에서 국악의 설 자리'를 없애려는 거다. 씨를 말리겠다는 눈초리다. 혹시 미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든다. 조교수는 말한다. "나는 국악에 인생을 걸었다. 온 세상 인산인해의 외국인들이 선망하는 한국문화의 근본, 그 국악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배척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학교에서 1)영화로 읽는 동아시아 종교철학, 2)동아시아의 미학, 3)국악에서 K-Pop까지, 4)영화를 통한 격동의 동아시아 근대사 등 네 과목을 강의한다. 내년 2023년 故성금연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가야금 산조 음반을 낼 예정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40호인 지성자 선생(성선생의 딸)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 후 가야금 병창에 매진할 계획이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잘 쓰는 일이다. 큰 자산을 모은 사람은 많아도 잘 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잘 쓰는 것을 넘어 의를 위해 잘 쓰는 일은 더욱 어렵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을 불러들이는 일에 나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그래도 자신이 누리던 것을 포기하고 의를 위해 가진 것과 누리던 것을 내놓은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에도 그런 드문 의인들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진 이회영 형제가 대표적이다. 삼한갑족으로 불리던 이회영의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회영의 형제와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해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이끌었던 안동 권문세가의 종손 이상룡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정부가 장애인의 취업 기회를 늘리기 위해 1991년부터 시행해 온 장애인의무고용제도를 공공기관들마저 아직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장애인고용 촉진’이 주요 업무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고용률이 지난 5년 사이 반토막 났다는 어이없는 현상까지 폭로됐다.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들의 행태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고용 대신에 부담금으로 때우면 된다는 비뚤어진 인식부터 확실하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의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공공기관은 모두 24곳이다. 이들 중 경기도의회와 경기의료원 등 13곳이 올해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경기도인권센터의 조사 결과 장애인의무고용제도를 어겨 시정 권고를 받은 기관은 모두 5곳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권고를 받은 기관들 가운데 경기도의..
‘아~베`마리~~아(Ave Maria)!~’ 한국어로 번역하면 ‘안녕하세요 마리아님!’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를 수태한 사실을 알리며 건넨 인사라고 한다. 이를 모태로 슈베르트가 ‘아베마리아’를 작곡했고, 카치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아름답고 손색이 없지만, 아베마리아는 역시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으뜸이다. 이 곡은 천재 작곡가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1853년 바흐의 서곡에 가사를 넣어 만든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되고 영혼이 맑아진다.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 구노. 그는 1818년 파리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을 해 생계를 유지했다. 어린 구노는 어머니께 레슨을 받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 피아노를 배웠다. 그 후 파리음악원에 들어 가 앙뚜안 레이체의 지도를 받으며 화성을 공부했고, 스무 살 때 이미 로마 대상을 받았다. 구노는 초년기 종교음악에 몰두했다. 하지만 세속적 영감으로 눈을 돌렸고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가 첫 오페라 사포(Sapho)를 작곡한 건 1851년. 그로부터 5년 후 걸작 ‘파우스트’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의 대중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뒤 이어 작곡한 ‘필레몽과 보시스’, ‘시바의 여왕’도 마찬가지였다. 숱한 시련이 계속됐다. 그때 구노의 펜이자 당대 최고의 작가인 프레데릭 미스트랄이 그를 생레미드프로방스(Saint-Rémy-de-Provence)로 초대했다. 이곳에서 구노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여기는 내가 사고하기에 안성맞춤이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빛으로 가득 차 있소. (...) 창공은 푸르고 나의 창문은 열려 있소. 내게 들리는 건 마당에서 노는 비둘기들의 울음소리뿐.” 구노에게 심호흡을 가능하게 했던 생레미드프로방스.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고향이다. 알필의 작은 수도로 아비뇽과 아를, 타라스코 세 도시로 휘감겨 있어 너무 아름답다. 게다가 원시의 야생들과 역사유적지가 그득하고, 소성당과 수녀원이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누비고 있어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으러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도 여기서 무한한 산책을 즐겼고 15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밖에 글라뉨 지역은 고대 유적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멋진 지구의 메종 안에 있는 알필 박물관에는 이 지역의 민속학 자료가 총집합돼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레미 올리브오일과 자연산 포도주 보드프로방스까지. 매주 수요장터에는 이것들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전통을 보물로 여기는 이 마을에는 아직도 투우경기와 양 양떼이동 축제가 벌어지고, 말 시장과 고물시장이 열린다. 어느 것 하나 빠진 게 없는 생레미드프로방스. 완벽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프로방스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을 꼭 리스트에 챙겨 넣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정치권이 극심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9일 긴급 체포됐고, 이와 관련해 검찰이 민주당사 내부에 있는 민주연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민주당을 압수수색하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이 제1야당 당사에 압수수색을 나왔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도한 행태"라며 적극 저지에 나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확한 팩트가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당원 불법 모집 혐의와 관련해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중앙당사를 압수수색하려 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보여주기식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김용 부원장이 취임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김 부원장은 지금까지 총 세 차례의 회의에 참석했을 뿐이며, 당사에 머문 시간은 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둘째 민주연구원 내에는 김 부원장 개인 사무실은 없고 다수가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개인 소장품이나 비품도 당사 내 갖다 놓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또한, 중앙당사 압수수색에 대해 저항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은 반발은 했지만, 압수수색을 받아들이는 대신, 검찰이 찾는 자료들을 보여주기는 했었다. 하지만, 야간 수색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자료 압수는 거부했었다. 대신 다음 날 해당 자료를 충남 도당으로 보내 검찰이 그곳에서 그 자료들을 압수하도록 했었다. 법치 차원에서 보자면, 압수수색이란 검찰 단독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법부인 법원도 수색의 필요성을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를 앞장서서 구현해야 할 공당의 정당한 행위라고 보기는 힘들다. 2006년 당시 “반발 후 간접적 수사 협조”를 했던 한나라당도 잘한 것은 없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 당사 압수수색 시도 중단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 ▲이원석 검찰총장 사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과 강백신 반부패수사3부장 등의 문책을 요구하면서 국정감사를 거부했는데, 이런 입장도 문제는 있다. 국정감사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견제는 민생을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민생을 외치는 민주당이 국감을 거부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국감 거부 역시 긍정적으로 비쳐지지는 않는 것이다. 또한 이번 압수수색의 원인이 되는 김용 부원장의 체포영장을 보면, 검찰은 이 돈의 성격을 '대선자금'이라고 적시했다고 하는데, 대선 자금 의혹은 중차대한 범죄 의혹이다. 즉, 민주당이 반발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시련의 시기가 닥친 것인지 모른다. 자연에서만 겨울이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근래 북한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도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허둥지둥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국민들의 불안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대놓고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서민들의 일상의 대화에서 잠재적인 전쟁 공포심을 엿볼 수가 있다.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명의(名醫)는 정확한 병의 원인에 대한 진단을 가지고 처방을 한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해야 옳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먼저 북한을 보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북의 핵보유 목적이 남한 적화통일이나 경제적 지원 확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핵이 공갈 협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 정권의 안전담보라는 사실은 북한의 일관된 주장과 핵개발을 시작한 후 이제까지의 행태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주민 15만 명 앞에서 핵을 떠난 평화를 연설할 기회를 주는 행위, 북미수교를 간절히 소망하는 행동, 식량 등 인도적지원에 대해 비본질적 문제라고 거절하는 행태는 바로 그 증표다. 둘째로, 미국의 행태를 보자. 말로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조건 없는 대화를 하자고 북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문제는 북이 미국의 제안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핵 포기가 전제된 대화라는 사실을 북한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굴복을 죽음으로 생각한다.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비핵화 문제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북이 굴복하면 NPT체제의 유지,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에 도움이 되어서 좋고, 그렇지 않고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통해 일본과 한국을 자신들의 영향권 하에 확실하게 잡아 둘 수 있어 미중갈등상황 관리에도 이롭고, 한국과 일본의 무기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어 자국의 군산복합체 이익에 도움이 되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핵보유, 전술핵 도입, 나토식 핵 공유 모두 현실성 없는 주장을 하거나 미국의 핵 확장억제 정책에 목숨을 거는듯하다. 그러다보니 일본을 독도 인근 연합훈련에 참여시키는데도 반대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정책, 우리의 용기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안보불안을 해소해 주기 위해 먼저 남북간의 교류를 재개하고 확대발전하는 길이 거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그 길로 가기 위해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미국 의존적 정책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한미연합훈련의 잠정적 중단이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다는 1992년의 경험을 되살리고, 2018년의 평양공동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약속하면서,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이 이행되도록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북한도 흔쾌히 받아 드릴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초점을 두지 말고 도발의 원인을 제공한 우리와 미국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한다. 제재만으로는 이 난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이제까지의 경험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대화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