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측의 시대이다. 코로나 판데믹 종식 시점이나 미중 무력충돌 지점과 시기,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 시기 등 자칭 전문가들의 각종 예측이 넘쳐난다. 세상이 두려움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면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예측이 더 많아진다. 경제와 외교정책에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1989년 동독 수상 호네커는 공언했다. “베를린 장벽은 50년 이상 버티고 있을 것”이라고. 그 호언장담은 10개월 만에 장벽 붕괴라는 현실 앞에 우스개로 전락했다. 중국의 발전상과 그 여파에 대한 예측도 비슷하다. 1995년 미국 사회학자 Jack A. Goldstone은 “급속한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국 공산당을 구하지 못하고, 10-15년에 중국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중국의 지배집단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신종 개념을 창안했다. 정치..
밭에 가야 맘이 편하다는 선산할매는 일이 끝나면 고추지지대로 쓰던 쇠꼬챙이에 목장갑을 걸어둔다. 굽은 손가락 굵은 손가락 모양대로 피는 목장갑은 억지수절 사십 년 선산할매 상사화.
‘사언지점 불가위야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말이 있어요.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말은 ‘내가 한 번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지요. 요즘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총칼 전쟁보다도 더 가혹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데,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시비들이 정말 살벌하네요. 전자기술의 발달로 10년~20년 전에 했던 말까지 자료가 남아 있어서 무슨 말만 하면 과거의 언행들이 득달같이 소환되곤 하니 놀랍군요.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다가 딱 걸린 후보들이 곤욕 치르는 걸 바라보노라면 “저 노릇도 참 못 해먹을 짓이네”하는 딱한 마음이 먼저 드네요. 내남없이, 살아가는 일이란 그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태반인데, 그렇게 수십 년을 한 점 티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도 대선전 양상은 영락없이 ‘내로남불’..
창을 열면 물안개가 짙다. 늘 그렇다. 강(江)에 기대 사는 마을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안개는 강과 산과 들의 경계를 지우고 기억에 박힌 익숙함 마저 지운다. 물까마귀 울음이 안개 너머에서 날아와 단풍나무 이파리를 흔든다. 안개에 갇힌 까마귀 울음은 반듯하게 착지하지 못하고 마당에 나뒹군다. 강을 건너온 까마귀 울음에 잣나무 숲에 사는 딱따구리가 화답한다. ‘까악’은 애달프고 ‘딱딱’은 절박하다. 둘의 울음은, 전선(戰線)을 사이에 두고 암호를 주고받는 스파이들의 교신 같다. 강을 덮은 물안개는 전쟁의 참상을 덮는 연기(煙氣) 같다. 물안개를 따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미얀마 로힝야족 마을이 흘러간다. 물안개의 발걸음은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더디다. 물안개의 느린 발걸음은, 링거에 의지하고 숨을 뱉는 다섯 살 아이의 맥박 같다. 강을 덮..
긴 진화의 상호 적응과정이 생략된 채 인간 문명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 19는 창궐한 지 20개월 정도 되는 지금, 변이를 계속하며 전세계적으로 2억 이상의 사람을 감염시켜 사망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바이러스가 만든 지옥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경제 활동은 물론 생활양식마저 바꾸며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상황 속에 우리는 부동산 투기라는 또 다른 전염병을 경험한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말 내놓은 ‘2020년 국민대차대조표’만 보아도 주택 시가총액은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말 4000조 원 정도에서 4년 만에 1700조 원 넘게 불어나 폭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희생자가 고령층인 코로나 19와는 달리 2030대 계층이 주요 대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2030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영끌로 버텨야 했고, 이마저 어려운 부동산..
얼마 전 취재 때문에 나태주 시인을 만났는데 ‘어떤 존재가 시인이 되는가. 시 없이 무탈하게 사는 삶, 지옥을 살더라도 시 쓰는 삶 중 택하라면 기꺼이 후 선택을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지옥을 살아봐야 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실제 문인, 예술가 중 오체투지하듯 산 이들 가운데 ‘문학과 예술의 소재, 성찰이 삶의 지옥에서 빚진 게 많아 통과의례라 생각한다’ 라거나 ‘다시 태어나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같은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예술가를 많이 만났다. 그들처럼 예술의 피와 끼가 없는 나는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기에 지옥마저 껴안는가’라는 의문을 더하곤 했다. 스탄 게츠(Stan Gets 1927-1991)를 소개하려고 꺼낸 이야기다.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을 이야기할 때 작곡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
8·15 광복 76돌이 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한국이 1990년 이후 30년 사이에 주요 경제 지표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에서 한국과 일본은 1995년 각각 26위와 4위였는데 지난해는 23위, 34위로 한국이 역전했다. S&P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도 일본보다 높다. 또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에서 1990년 한국과 일본이 각각 17위, 2위였는데 2018년엔 한국이 3위, 일본은 5위가 됐다.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 각각 17위, 2위에서 2020년엔 10위와 3위로 격차가 좁혀졌다. 반면에 기초과학·원천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2020년 글로벌 연구개발(R&D) 1000대 투자기업 수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5배 이상 더 많다. 소..
지난 11일 저녁 여권 대선경선후보 6인이 3차 TV토론을 벌였다. 이재명 후보가 지난 8월 8일 여권 후보자간의 네거티브를 중단하고 캠프간의 소통채널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후 진행된 첫 토론회였다. 백제논란에서 인성시비, 경기도 지사직 유지문제, 탄핵찬성, 조국사태 방조, 삼부토건 비리 연루설 등으로 이어진 이낙연 캠프와 이재명 진영의 날 선 공방은 ‘명락대전’이라 부를 정도로 과열된 면이 있다. 주류언론은 양 캠프의 갈등을 부추겨 ‘명락공멸’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배설물 같은 말’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언론사들을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3차 TV토론회에서 경선후보들은 상대적으로 뭔가를 ‘자제’하며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기본정책에 대한 공방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인신공격과 같은 네거티브..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오는 30일 후보 등록과 함께 본격 개막된다. 하지만 시작전부터 당내 파열음이 도를 넘고 있다. 무엇보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며 벌써부터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표 부재중 윤 전 총장의 전격 입당과 이후 당 공식 행사 불참 등이 ‘대표 패싱’ 논란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이번에는 경선준비위가 제시한 후보자간 정책토론회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윤석열 캠프 종합상황실의 신지호 총괄부실장이 11일 한 방송에 나와 “당 대표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탄핵도 되고 그런 거 아닌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탄핵 얘기까지 꺼내는 것을 보니 계속된 보이콧..
코로나 때문에 1년 반 동안 거의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운동장 곳곳에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남자아이 하나가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풀을 조금만 더 자라게 두면 천연 잔디구장이 될 거 같다고 좋아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수풀처럼 변해가는 운동장을 보다 못해 가끔 직접 잡초 제거를 하셨지만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승자는 이름 모를 잡초였다. 풀들은 여름 햇볕을 받고 더 맹렬하게 자라고 있다. 운동장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새로 지은 건물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작게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나마 1년 뒤에 별관이 신설되면서 운동장 크기가 더 줄어들었다. 그곳에서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공을 차며 놀았다. 물론 그렇게 놀았던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내가 유년 시절 내내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려 놀았다. 나는 언제나 놀이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과 놀 때도 있었지만 남자아이들이 하는 축구와 야구 같은 운동을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한 여자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축구를 하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운동장 한쪽의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거나 그네를 탔다. 체육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남자아이들은 축구공을 받아서 운동장을 누볐는데 여자아이들은 배구공을 받아 운동장 구석진 곳에 라인을 그려 놓고 피구를 했다. 피구는 공에 맞으면 탈락하는 게임이라 피하려고 애쓰다가 공에 맞으면 아프고 분했던 기억이 있다. 피구 할 때 공에 맞은 기억 안 좋게 남아서 공으로 하는 운동을 싫어하게 된 친구도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때가 아니면 격렬한 운동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운동을 좋아했던 나조차도 여자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공을 직접 만질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중 여고의 점심시간 운동장은 황량한 벌판 그 자체였다. 체육수업이 있었지만 힘도 맥아리도 없이 병든 닭처럼 앉아있는 우리를 보며 체육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했다. 그나마 CA활동으로 배드민턴부에 가입해서 3년 동안 열심히 배드민턴을 친 거로 운동의 구색을 갖췄다. 그마저도 안 했으면 땀 흘릴 일이 전혀 없었을 거다. 어릴 때 운동을 경험해봐야 어른이 되어서도 운동하는 생활체육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린 시절 사교육으로라도 태권도를 오래 배운 사람과 살면서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커서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생긴다.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조기축구회나 야구단, 농구 같은 스포츠 팀 스포츠를 즐기는 반면에 팀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 어른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릴 때 다양한 종목을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꾸준히 접해봤어야 그 종목에 재미를 느끼고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지 않을까. 지금처럼 학교 운동장 양 사이드에 한 쌍의 축구 골대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 농구 골대가 있거나 없는 모습이라면 여자아이들은 앞으로도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쌍의 축구 골대를 차지하기 위해 남자아이들 사이에도 점심시간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는 판에 여자아이들이 낄 자리는 없다. 운동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축구 골대 대신에 우리 학교처럼 운동장이 매우 넓다면 풋살장 규격으로 골포스트를 두 쌍 만들어서 남자, 여자가 따로 이용할 수 있게 지도하거나, 다양한 종목의 코트가 들어서면 아이들 전체가 사용하는 모두의 운동장이 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반쪽짜리 운동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