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당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법무부 장관 가족을 수사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정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제1 야당 대선 후보까지 되었다. 하지만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는 ‘동양대 강사 휴게실 PC’라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기소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입에 달고 다녔던 “법과 원칙에 따라”는 도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그런데 최근 윤 후보는 그 의심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했다. “이런 확정적 중범죄,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가 그것이다. 지난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칭해 한 말이다. “법원 원칙에 따라”를 입에 달고 다..
세상에서 최악의 통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이 겪은 병치레를 근거로 답할 것이다. 나는 통풍(痛風), 산통(産痛), 참척(慘慽)의 고통을 꼽는다. 참척은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는 비극을 말한다. 악상(惡喪)이라고도 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아픈 병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통풍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통풍을 앓고 있거나 심하게 앓았던 사람들은 이 문답을 어리석다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 때 처음 어느 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겪었다. 6.25처럼 그날 잊을 수 없다. 병원에 가서 통풍이라는 관절염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나의 투병사는 과장 없이 핏빛이다. 처절하고 혹독했다. 어린 딸 앞에 두고 울었다. 초반에는 1년에 두세 차례, 나이 들면서는 분기에 한 번, 이후에는 한 달..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지난해와 똑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전 지구적인 환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할 정도로 망가트렸다. 누구나 겪었던 이 불행한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더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은혜와 원한은 사회적 참사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감사함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함께 경험하는 아픔은 서로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과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또 힘들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심리적인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경우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병원을 찾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힘들어..
사전, 지도, 시계, mp3, 카메라, 종이신문, 녹음기, 달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즉답은 어려울거다. 하지만 듣고 나면 다소 허탈해진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라져가는 제품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통하여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것을 별도로 사서 썼다. 인류학자들은 지구상의 인류는(Homo) 대략 25종이 살았다고 말한다. 이중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아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사피엔스란 말처럼 생각하는 기능이 다른 육체적 조건의 우위를 이겨낸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이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류의 삶은 혁신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omist)란 잡지에서는 우리의 삶을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ce)라 지칭하였다. 우리나라에 이 개념을 디지털 사회의..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21 KB 자영업 보고서: 수도권 소상공인의 코로나19 영향 조사’에 의하면 소상공인 상당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계속될 경우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연매출 50억 원 이하 또는 직원 10인 이하 소상공인 700명(서울 460명, 경기 194명, 인천 4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앞으로 3년간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이란 질문에 응답자의 48%가 매출 하락으로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응답자들은 ‘낮은 수익과 큰 손실’(42%)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경기회복이 더딜 것’(30%) ‘경영관리 어려움’(17%) 등을 호소했다. 실제로 소상공인들은 방문손님 감소(40%),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영업제한(32%) 등으로 전체 매출이 2020년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집 근처 편의점 알바를 뛰었다. 늦게 퇴근한 아들이랑 쐬주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급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에이, 아빠.. 편의점에 최저임금 다 주는 자리 없어요”한다. 가슴 한켠이 짠했다. 법적 최저기준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녀석에게 애비는 해줄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월 150만 원이라도 받고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대통령 후보가 떠올랐다. ‘윤석열표 공정’은 집 앞 골목부터 진작에 실현되고 있었다. 그는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들은 부당한 조건에 맞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행사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궁핍할 자유는 필요치 않았다. 이런 아들이 요즘 말로 빡쳤다. 윤석열 후..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교실의 아침은 학부모님들에게 받는 연락으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당일 결석과 관련된 연락이 주를 이루고, 사정이 생겨서 일찍 조퇴시켜달라는 내용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가끔은 아이의 몸이 안 좋지만, 등교시킬 테니 상태가 나빠지면 집으로 보내 달라는 내용도 있다. 며칠 전에는 조금 특별한 연락을 받았다. 우리 반 친구 A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해서 다음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나에게도 이미 결석하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막상 당일이 되자 A가 부모님께 학교에 가서 재미있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등교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접종 후 증상이 걱정되니 잘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함께 왔다. A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어 했던 수업은 햄스터 로봇을 활용한 코딩 수업이었다. 태블릿..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끔찍한 산업재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어렵사리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준비가 제대로 되었다는 증거가 아직 없고, 정부에서도 예측되는 혼란과 모순을 신속히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산업재해 근절이라는 대의를 존중하여 차제에 경영철학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게 맞다. 정부나 정치권 역시 경영계의 합리적인 우려와 보완 요청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사고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이 법은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어머니! 엷은 먹물로 그린 그림처럼 당신이 보입니다. 마지막 먼 산은 이미 지워졌고 붉은 옥사가 연분홍으로 물들어가네요 이대로라면 저는 제 안의 먹방으로 고요히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저의 처음 당신의 품이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깊고 험한 길을 돌아 당신에게 가는 길입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네요 묶인 손을 내밀면 만져질 듯한 데까지 보입니다 보이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자리에 어머니 품에 안기는 아기 저의 모습이 짙어집니다 비로소 이별 없는 깜깜한 밤이 옵니다 눈 감지 않고 이대로 당신의 품에서 아들의 생을 멈추겠습니다 - 1930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아들 이○○ 올림
대선이 71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가족 리스크와 선대위를 둘러싼 내홍으로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성장·복지·일자리 정책 공약 발표를 시작으로 정책 행보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5일 제1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윤 후보는 그동안 현장 방문 등을 통해 단발성의 정책을 제시하긴 했다. 하지만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약의 제시는 사실상 이제 가동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 여당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일찍부터 기본시리즈 공약을 필두로 발빠른 정책 움직임을 보인 것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시간이 짧은 윤 후보가 각종 리스크로 우회하다가 이제라도 후보 자질의 중요한 척도인 공약 제시로 방향을 잡은 것은 다행스럽다. 이를 계기로 여야 정치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