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유리로 된 창도 없지요. 앞으로도 뒤로도 열고 나올 문이 없어요. 문도 창도 없는 동그라미 속에 당신이 있어요. 저는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사는 것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는 옹기 속은 어떤 세상인가요. 얕기만 한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애써 부릅떠도 볼 수 없어요. 당신은 속에 있고 저는 밖에 있어요. 무릎에 턱을 고이고 쪼그려 앉으셨나요. 옹기 속 동그란 세상에도 환한 달빛이 드리우나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 봐도 어둠뿐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메주 아홉 덩이를 넣고 소금물을 부은 날부터였지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말이 없지만, 어둠이 두껍게 내린 밤이면 제 귀에 들..
2022년 3월 9일은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다. 225일 남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5000만 씨알들과 8000만 민족 전체의 삶과 내용, 낱낱의 개인들과 공동체의 안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소위 G8의 일원이 됨으로써, 지구촌 전반에도 비중 높은 인물이 된다. 과연 누가 될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장부에 이름 올리고 뛰는 이들 대부분 마치 '전국상인연합회'의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듯하다. 하기야, 당선만 되면 100만 명의 공무원들이 하던 일 그대로 하고, '여의도'는 변함없이 잘 굴러갈 텐데 무슨 문젠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공약들을 손본다. 캠페인 기간에 마구 던졌던 '뻥카'들은 섞어찌개 식으로 합치거나 과감히 폐기하면 되는 것. 야당이 따지고 들면, 겸손 떨며 사과하면 된다. '허니문 기간' 타령하는 기특한 기레기가 반드시 나오니 걱정할..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
‘수술실 내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1만 3959명 중 1만 3667명이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무려 국민의 97.9%가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안’에 찬성한 것이다. 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 정책참여 플랫폼 ‘국민생각함’에서 5월 31일부터 6월 13일까지 실시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의견 조사 결과다. 아울러 권익위는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 등 4개 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에게 같은 내용을 물었다. 그 결과 찬성 답변은 82%였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이유는 ‘의료사고 입증책임 명확화’,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가 가장 많았다. 수술실에서의 성추행과 대리수술, 의료사고 등 문제가 빈발하자 경기도는 2019년 경기도 내 공공의료원의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했다. 법안 통과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어린이집 CCTV가 소극 보육을 유발하지 않는 것처럼 수술실 CCTV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대다수 의료진들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고 극소수의 불법 의료나 성추행 등으로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며 의료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후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최초 법안 발의 후 6년이나 지났지만 반대의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6월 23일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1소위 의원들이 ‘수술실 CCTV 설치법’ 관련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 논의를 했으나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시간 끌기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즉시 통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충분히 더 검토해야 한다며 논의를 미뤘다. 민주당 의원들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 설치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환자 측 요청이 있으면 촬영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공적 분쟁해결절차에 한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요 내용을 확정해 신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작용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의무설치 외의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구체적 설치 장소나 촬영범위, 보안관리절차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이 지사는 “주권자 의사에 반해 특정 집단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일 리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의료기관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제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당도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본보(27일 자 2면)에 따르면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수술실 CCTV법(의료법 개정안)은 유령수술이나 의료사고 은폐 등 각종 범죄를 끊기 위한 민생 법안이라면서 8월 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국민의 요구다. 물론 내 일터에 CCTV가 설치된다면 불편하다. 누가 나를 감시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따라서 의사단체나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대안을 조속히 내놓길 바란다. 단, 이를 핑계로 또다시 부지하세월, 시간만 낭비한다면 더 큰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다시 한번 ‘세계최강’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여자 양궁은 단체전 올림픽 9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남자 양궁도 금빛 화살을 쏘았다. 신설 종목인 남녀 혼성 종목에 출전한 여자대표팀 막내 안산과 남자대표팀 17세 고등학생 김제덕은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대회 2관왕에 올랐다. 한국 양궁이 놀라운 경기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은 결코 기적이 아니다. 실력 이외의 그 어떤 요소도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선수 선발 절차와 과학적 훈련 시스템이 합작해낸 피땀의 결실일 따름이다. ‘공정 경쟁’만이 경기력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의 찬란한 성과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진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
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제일 짜증이 날 때는 장본인과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 쓰거나 아예 장본인이라는 표현밖에 모르는 것 같을 때이다. 장본인은 여러 (나쁜) 일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주인공은 여러 (좋은) 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이 모든 일을 그르친 그 장본인이냐’가 맞는 말이고, ‘바로 이 분이 이번 대형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한 그 주인공 영웅이십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국영/공영 아나운서조차 이걸 구분 못하고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식의 표현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내보내고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대통령이 암살된 얘기를 하는 등의 행태는 위와 같은 무식의 소치인가. 그 지경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에 문제가 있다. ‘라떼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걔가 그래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사람들 앞에서 너무 뭐라 그러고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등등의 말씀이셨다.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봐야 한다는 얘기들이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주라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는 가르침이셨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설령 체르노빌이 떠오르더라도 방송 같은 데에서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때는 우크라이나의 번성한 수도 키예프의 이미지를 찾든지, 우크라이나 특유의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보여줬어야 옳았다. 할리우드 배우 리브 슈라이버가 연출을 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같은 영화에 그런 이미지가 나온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런 의미의 우선순위가 아예 없다.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전원 같은 건 꿈에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들 제정(帝政)의 역사 속 선조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류리크 공국은 12세기 모스크바대 공국의 뿌리였다.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 가문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래서 ‘푸틴=러시아’는 정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과거의 우크라이나가 매우 번성한 대국이었음을 보여준다. 하긴, 그런 거 ‘따위’ 전혀 몰라도 된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캐릭터 ‘블랙 위도우’의 여주인공 이름이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것만이라도 생각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서 살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 호기심’이 일었다면 저런 ‘방송 사고’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도 결국 우크라이나 출신이니까. 다 교육의 탓이다. 공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그저 사지선다(四枝選多)의 답만 고르게 하고 점수를 1점이라도 남보다 더 따게 하는 것만 옳다, 옳다 한 기성세대, 부모, 선생의 탓이다. 그러니 조국의 딸 조민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음에도 경쟁심리와 보복심리로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하게 한 것이다. 증언을 한 아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데에는 그 젊은이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 분위기에서 연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사회 교육의 시스템에 심각한 왜곡이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유력 일간지 신문기자라고 하는 인간들이 사흘을 4흘이라고 쓰고 인도계 이민 2세를 인도계 2민 2세라고 쓰는 것을 더 이상 ‘귀여운’ 실수로 간주해 주면 안 된다. 속된 말로 싸대기를 처맞아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기자를 손가락질하기보다는 해당 기자의 관리를 맡고 있는 데스크들, 부서 장들을 데려다 곤장을 쳐야 한다. 세상에… 신문사에 데스킹 시스템, 게이트 키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스크들은 뭐하시고 계신 것인가?낮술 드시고 사우나에서 주무시는 거 아닌가. 그러니 ‘우크라이나=체르노빌 사진’이 나가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교육의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짧고 단순하고 명료한 답을 주되 그 답이라고 하는 게 상황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고 진리는 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 단계적인 의식의 발전 방안에 대해 사회는, 학교는, 가정은, 자체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들 스스로, 혹은 부모들 스스로, 답을 딱 하나만 갖고 산다. 오로지 이 사회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답. 그 밑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일베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선생이 유식해져야 한다. 세상의 답과 진리가 늘 상대적이고 진실의 X파일은 저 산너머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하철 안에서 얼굴에 침을 뱉고 낄낄대게 된다. 잘못 키워진 애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들과 휩쓸려 다니며 폭력을 일삼는다.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유겐트가 돼서 나치 친위대가 된다. 그런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숭배하고 그의 악행을 돕는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세상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자 어떤가, 이제 슬슬 소름이 돋는가?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시절(2001년), 남북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던 북한 통전부(노동당 대남사업 기구) 인사와의 대화에서 내가 깨달았던 한 가지 사실은 내 인식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서울 도착 첫날밤, 북에서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를 대하다 수십 개 채널의 남한 TV를 대하면서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북측 R선생은 다음 날 아침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나에게 말을 건다. 주제가 은행털이 강도 얘기인 오락영화를 보았는가본데, “야! 긴데, 혼자 다 갖겠다고 끝내는 친구도 죽이누만! 사람 욕심이란 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가 보다. 비록 영화지만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 현실을 직접 대하다 보니 앞에 있는 남조선 사람인 나도 인간으로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봉사, 친구와의 의..
생명은 에너지와 물질의 변환이다. 태양의 불꽃이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되는 것이다. 녹색 불꽃은 꽃식물의 적색, 홍색, 황색, 자주색 등 성적인 불꽃, 즉 다른 생물계를 설득하는 전문가가 된다. 화석화된 녹색 불꽃은 태양의 경제체제 안에 있는 인간의 방에 축적된다. 생명은 끊임없이 열을 소산 하는 화학작용이다. 그리고 생명은 기억이다. 과거의 화학작용을 반복하면서 행동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생명은 자기 초월적이다. 태양으로부터 온 에너지를 저장하고 재분배하면서 생명은 최고 수준의 활동력과 복잡성을 과시한다. 생명이 우주의 큰 영역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떤 생명으로 만들지 누가 추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포유류 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역시 200만 년을 더 견뎌낼 것이다. 신생대 포유류 종의 평균 존속 기간이 300만 년 보다 짧았다. 모든 종은 사라진다. 멸종하거나 둘 이상의 후손 종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껏 살아 있는 동물 종은 없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오늘날 침팬지와 사람만큼 서로 다른 자손 종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종의 분리가 기술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내구력 있는 영구적인 로봇 껍질 속으로 신경계가 통합된 인간의 후손은 행성을 오가는 우주선에 달라붙어 망원경 눈으로 별에서 방출되는 엑스선을 관찰할지도 모른다. 인간에서 진화하는 종들 중 일부는(유전자 조작으로) 병 인자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상 기능을 훨씬 능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종은 지구보다 강하거나 약한 생성에 거주하면서 뼈의 질량과 호흡계가 변하고 내장 기관이 재배치되어 몸무게가 극적으로 늘거나 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계승자들은 과거의 흔적, 즉 우리의 현재를 간직할 것이다. 어떤 생물학 신무기가 여러분의 모든 동물세포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다 해도 “여러분”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상상해보라. 자기 초월적인 생명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사람은 동물이고 미생물이고 화학 물질이다. 지구의 생명은 광합성에 기초를 두는 아주 복잡한 화학 시스템이며, 개체들이 여러 단계에 걸쳐 프랙털 구조로 조직을 이룬다. 우리는 자연을 넘어설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초월하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김영 역. 리수. 2021. 294-297쪽
요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보면, 한 가지 특징적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지향성”이다. 미래를 말해야 하는 여당에서 “과거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 중에도 분명 계승할 것이 많음에도, 잘못만을 들춰내는 과거 지향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현 정권 들어서 가장 먼저 역점을 둔 사안은 바로 적폐 청산이다. 적폐 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로잡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단 몇 년간 청산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그래서, 역사에 관한 문제는 “청산”이라는 단어 대신 “극..
고리타분한 단어 같지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도 다르고 답이 없는 관계라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정’과 ‘의리’ 하나로 버티며 위기를 넘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도한다. 여염집의 장삼이사들도 이럴진대 만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속된 말로 “의리고 나발이고”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처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리는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자기 신념과 역사에 대한 책임일진대 말이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국 전 장관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검찰개혁을 주도하다 멸문지화의 처지에 몰린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자신들은 조국사태(?)이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드높아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