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5월 그믐에 정조는 교시를 발표했다. 오회연교(五晦筵敎)였다. 앞으로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하겠다는 정조의 야심에 찬 선언이었다. 재위 26년 만의 결단이었다. 즉위 초 조정은 결코 그에게 호락치 않았다. 권력을 장악한 노론세력은 아버지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정조에 우호적인 남인과 소론은 미약했었다. 그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정조는 스스로 부하를 만들어 써야 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초계문신(抄啟文臣)이었다. 과거 급제한 자들 중 당파색이 옅은 젊은 인재를 선발해 규장각에서 3년 동안 특별교육을 시킨 후 관직에 나가게 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정조는 조선 후기의 찬란한 진경문화시대를 열었다. 중국 일색의 문화를 조선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실생활에 적합한 실용적인 정책들을 개발해 위민정치를 실시하였다. 사병화되고 있던 오군..
지난 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를 읽고 필자는 놀랐다. 포털을 통해 접했다. ‘“한국이 또 입증할 것” 국내언론과 상반된 해외의 극찬’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에 대한 나의 평가가 주관적이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댓글을 확인했다. 4500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다. 기사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 독자는 1만3000회를 넘겼다. 댓글은 ‘진짜 기사를 읽었다’는 찬사가 주조였다. 독자들의 반응을 한 번 더 검증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를 다시 봤다. 기사가 끝나고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기'에는 37만5000원이 후원됐다. 이 언론사 다른 기자에게 확인 했더니 이 금액은 최고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기사는 ‘어둡던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희망을 담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12일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매립지 연장 뜻을 시사했다. 이에 최근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이 서울시장에게 공개 서한문을 보냈다. 이 청장은 언제까지 이 좁은 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대형 매립장에만 의존해 쓰레기를 처리해야하느냐고 물은 뒤 “하루빨리 ‘수도권매립지를 계속 사용하기 위한’ 협의가 아닌 ‘수도권매립지 종료와 쓰레기 선진화를 위한’ 협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장은 서울을 글로벌화 하겠다는 공약이 실현되려면 쓰레기 선진화가 반드시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청장은 30년 넘게 환경 분야에서 종사한 환경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서한문을 통해 오시장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발생지 처리 원칙에 입각, 서울 내 쓰레기는 자치구별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피천득은 쓰고 있다. 연한 살결에 비취가락지를 하고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오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다. 자식과 부모와 스승이 모두 있는 사람에게 오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꽃을 준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고르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남쪽에서의 오월은 분주하다. 고향 이북에는 피천득의 오월에 대한 아름다운 수필도 이벤트도 없다. 그러나 오월에 만들어 먹는 평안도 나박김치가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남쪽보다는 훨씬 겨울이 긴 탓에 함경도 지역은 오월이면 마지막 겨울 김치를 먹고 있을 때 서해안에 위치한 평안도는 조금 따듯하니 새싹이 돋아나는 무를 움에서 꺼내 나박김치를 담근다. 물맛이 좋아 물김치를 많이 담그는가보다. 나박김치는..
나는 자주 주검을 마주한다. 요즘 나의 직업은 장의사다. 영구차에서 내리는 유족들을 내가 제일 먼저 맞이한다. 그들은 모두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온다. 삼일간의 장례와 마지막 화장터에서의 이별이 유족들을 탈진하게 만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퍼할 기력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영정사진과 위폐와 유골함이 앞장서고 유족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늘어져서 뒤를 따른다. 나는 영정사진 속 고인을 가름한다. 수목장에서 내가 파는 땅은 지름 30센티, 깊이 50센티 정도이다. 먼저 삽으로 뗏장을 둥그렇게 떼어낸다. 뾰족한 모종삽으로 황토 사이에 끼어있는 돌을 골라낸다. 무덤은 좁고 깊다. 반듯하다. 무덤에 한지를 깔고 고운 모래를 부어 주검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화장터에서 나온 골분은 따뜻하다. 영정사진 속 고인만큼 골분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주..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일반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내 생애 첫 이사였다. 온 동네 사람들과 가족과 같은 끈끈함이 있던 고향을 떠나 이사를 한다는 것은 현관문을 열고 밟았던 마당 대신 엘리베이터를 밟아야 하는 낯섦 이상으로 가혹했다. 더 이상 할아버지, 동생과 같은 방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연탄을 때던 전에 비해 훨씬 따뜻해진 난방에 모든 환경이 훌륭해졌지만,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새집으로 들어와 가구 정리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밤, 라디오에서 동물원의 '혜화동'이 흘러나왔고, 몇 주 만에 추억이 되어버린 내 동네와 사람들 생각에 눈물이 났다. 옛 동네가 그리웠다. 시간이 흐르고 중학생이 되어 새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새로운 환경에 나름 적응되어 가고 있었을 무렵 다시 한번 내 감성을 주무르는 노래가 나왔으니, 바로 김현철의 '동네'라..
3년전 들떴던 ‘꽃피는 봄날’ 기억을 되살려 본다. 판문점 도보다리에서의 남북정상간 머리를 맞댄 그 긴박했던 순간들. 추억이 아니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할 기회가 이번 5월에 찾아오고 있는 듯하다. 오는 21일에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될 한미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문재인-바이든 대통령의 첫 만남인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재 궤도에 올릴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이든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의 윤곽, 북한측의 미국과 한국정부를 향한 담화문 발표 내용, 그리고 문재인 정부로서는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는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정부의 결연한 의지 등을 종합해 보면 힘들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내용은 트럼프대통령의 빅딜도 아니고 오바마대통령의 전략적 인..
정부와 정치권이 가상화폐 문제를 놓고 엇박자를 내는 사이에 이른바 ‘코인 광풍’이라고 불리는 가상화폐 신드롬의 부작용이 심상치 않다. 정체를 알기 어려운 중소규모 가상화폐 거래소나 불법투자업체의 사기행각에 말려들어 큰돈을 날리는 국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비트소닉’이라는 가상화폐거래소 하나에서만 130여 명이 75억 원의 손실을 볼 정도로 피해 규모가 막대한 상황이다. 피해를 차단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올해 1분기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새로 개설한 사람은 모두 약 250만 명이고 거래대금도 총 1천486조 원으로 코스피 거래액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가상화폐 시장에 ‘미친 바람’이 불면서 국민의 종잣돈, 생활자금, 노후자금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여지가 있는 블랙홀이 등장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단식 10년 전, 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십 대초였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놀라웠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도 특별한 도전이었다. 2-30대에 술담배를 과하게 했다. 1년에 한두 번은 탈이 나서든 쉴 목적으로든 1주일쯤 입원하면서 일했다. 듬직하게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당시 나의 체중은 80kg, 키는 165cm. 이 숫자들은 몸과 정신상태가 좋지도 옳지도 않았다는 증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사의 경계선을 겁도 없이 몰지각(沒知覺)으로 뛰어다녔다는 말이다. 단식 돌입 후 두 달이 되었을 때, 체중은 60kg으로 떨어졌다. 그게 정상이었다. 내 인생 중반에 참으로 쑈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회복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은 종종 막걸리 한두병쯤 하면서 살지만, 그때는 담배는 물론 술 한 방울도 안하는 일적불음(一滴不飮)이었다. 그랬더니 머지..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나경원 전의원이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나는 그 분 이름만 들으면 오랜 기억 하나가 소환된다. 그는 2004년 한나라당 연찬회에 올렸던 ‘환생경제’라는 풍자극의 출연자였다. 아들 ‘경제’를 영양결핍으로 잃고 맨날 술만 퍼먹고 허송세월 하는 가장으로 노무현대통령을 묘사했던 연극은 “000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육실헐 놈”,“개잡놈”등 욕설로 비하해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들은 노대통령 임기 내내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으로 규정했고, 언론은 받아 적었다. 노무현대통령 재임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5%였으며 전해 대비 수출증가율은 18.2%에 달했다. 코스피지수는 취임시보다 3배까지 올랐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호경기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들이 정권을 잡기위해 폭망한 경제가 필요했을 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