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50탄소중립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 완전중단을 목표로 전기차 확대 보급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누적대수는 13만7636대로 2017년에 비해 5.5배나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정부도 보조금 지급 등 친환경 자동차의 확대 보급을 위해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전기를 이용해 구동력을 얻으므로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연료비도 크게 저렴하다.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경우 화석연료보다 최대 10배 가까이 연료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은 급속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도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막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보다 관련 인프라다. 충전소와 폐배터리 처리 시설 등 기반 인프라는 많이 부족하다. 특히 충전소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전기차량이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 충전소 설치 속도가 늦다. 이에 환경부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차 급속 충전기 1만 2000대, 완속 충전기 8만 4000대 등을 도입겠다고 밝혔다. 산업자원통상부도 의무설치 대상을 대형마트·백화점·대기업 소유건물·100세대 이상 아파트로 규정했다. 신축건물 의무설치 비율 현행 0.5%→2022년 5%, 기건축물 2022년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민간건물에도 2% 설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경기도 역시 2030년까지 공용(완전 공개형) 전기차 충전기 규모를 약 10배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이와 관련 경기연구원은 과다하게 설치됐거나 충전량이 적은 곳은 설치량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실제 충전량보다 과소하게 설치된 곳을 우선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설치 과정에서 충전 수요를 고려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경기도 전기차 충전기의 효율적 설치 및 운영 방안’ 보고서를 통해 설치지점과 시군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어긋난 ‘미스매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전기차는 지난해 2만477대였다. 공용 전기차 충전기는 7628기였는데 공공성과 설치 편의성 등을 주로 고려한 나머지 ‘수요 대응형’ 설치가 이뤄지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도내 공용 급속 전기차 충전기 설치지점별 비중은 상업시설(21.2%), 휴게시설(12.8%), 공공시설(12.7%) 등의 순이었지만 충전량은 다른 결과를 보였다. 설치지점 1위 상업시설은 충전량은 9위(5%)였다. 실제 수요보다 충전기가 과다 설치됐다는 얘기다. 31개 시・군별 설치 및 충전량 순위 비교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설치 비중 순위가 1위(7.8%)인 안산시의 충전량 비중 순위는 22위(2.3%)였다. 이에 연구원은 주유시설, 주차시설, 휴게시설 등 ‘이동거점’에 급속 충전기를 우선 확충해야 하라고 제안했다. 또 ‘생활거점’에 완속 충전기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확대보급을 위해서는 전기차가 많이 운행·충전되는 지역에 신속히 충전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을 수용하기 바란다.
내가 진료하는 한의원의 이름은, 말하자니 좀 쑥스러운데, 어느 작명소에서 지었다. 나의 진료공간을 시작한다는 두려움반 설레임반으로 소개받은 작명소를 찾아 작명해주는 분이 제안한 이름 여럿 중에서 부르기 쉬워보이는 ‘다강’으로 선택하였다. 생소한 조어라 그런지 개원하고 다강이라는 한의원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 “‘많을 다(多)’ ‘편안할 강(康)’ 으로 ‘강’자는 건강에서의 강자예요. 몸도 마음도 자신도 주변도 두루두루 다 편안하고 건강하라는 뜻이랍니다.” 라고 설명하면 정말 한의원 이름답다고 하며 끄덕끄덕했던 분들의 기억이 지나간다. 우리말에서 건강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굳세고(健) 편안함(康)으로 정신과 신체가 튼튼하고 온전할 때..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다. 여야 정치권과 국방부 등이 성범죄 근절 TF, 특위, 민간자문단 구성 등 뒷북을 치느라고 호들갑 떠는 익숙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인권문제가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상벨’이 오작동하거나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는 게 문제다. 특히 군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휘관에게 책임과 불이익이 과다하게 돌아가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개혁해야 할 과제가 다분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어떻게 불합리하게 다뤄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은 군 사법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군사경찰이 이 중사 사건을 4월 7일..
오멸(吳滅. 본명 오경현) 감독이 영국産 오프로드 차 광고에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감독이 이 차를 타고 다닌다는 걸 앞세운다. 오멸이 짚차를 타고 제주 해변을 다니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얘기는 무엇일까.가 광고의 컨셉이다. 그건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던 것은 광고의 앞 부분이 영화 ‘지슬’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슬’은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극영화이다. 광고는 한 아이가 동네 어른들이 피신해 있는 서귀포의 큰넓궤로 달려가 동굴 입구를 들여다 보는 장면을 보여 준다. 4·3이 광고에 나오다니. 그렇다면 4·3조차 상업화된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4·3의 문제가 이제 그만큼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승만 정권과 그 이후의 반공 정권이 수십년간 좌익의 준동이니 좌파들의 난동이니 하며 온갖 흑색선전을 뿌려댔어도, 심지어 공적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하려 했어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이제 광고에까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오멸감독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했을 것이다. 광고 출연료도 짭짤했을 것이다. 그 돈은 그가 또 다른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 변해 간다.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요즘엔 무릇 언론들이 전부 '이준석 돌풍'이 시그널이라며 침을 흘리듯 기사들을 써댄다. 하지만 이준석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환경운동가) 같은 친구가 아니다. 사람들이 툰베리에게 열광하고, 그녀를 지지하고, 심지어 이 아이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녀가 16살에 불과해서가 아니다.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문제, 환경의 문제, 지역분쟁의 문제, 원전과 탈핵의 문제 등이 한결같이 씨줄날줄로 연결돼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16이라는 숫자를 뛰어 넘는 정치적 사회적 혜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의 간극을 무너뜨리는 공감의 정치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타칭 정치평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준석 청년 돌풍을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당들, 한국의 정치판이 배워야 한다. 이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들 입을 모은다. 본말이 전도된 한심한 논평들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물리적인 나이의 청년 정치가 아니다. 그걸 뛰어 넘는 ‘청년적’ 정치이다. 청년들, 특히 20대 남성들이 숱하게 보수화 돼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치의 유겐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려스럽다. 이런 계층들이 사회를 주도한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고 다 낡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고령이어도 청년적 이상을 여전히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를 청년화 하는 것이지 청년들을 시대화 하는 것, 시대에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준석이 청년정치를 올바로 가져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왜 5·18 학살의 주범이고 연원을 더 거슬어 올라가 한국 쿠테다 역사의 원범인 정당에 들어가 있는지, 세월호 문제와 윤석열 항명 사태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태도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아마도 이준석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청년 정치가라는 라벨을 붙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 정치평론가들이여 제발 그 입들을 다물라. 이준석이 청년 정치가 아니듯 윤석열은 공정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 그건 박근혜가 사실은, 여성’적’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그녀를 여성으로서 지지한다고 했던 건 무슨 무식의 발로인가. 소위 ‘이준석 돌풍’에서도 그 같은 무지함이 감지된다.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CF를 찍는 감독은 시대의 변화를 안다. 이제 오멸이 앞에 나서도, 지금 ‘지슬’을 앞장 세워도 이 광고가 세상에 먹힐 것이란 걸 안다. 그레타 툰베리도 자신이 어린 나이임에도 세상이 자기의 목소리에 귀기울 것이란 걸 안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진작에 감지했거나 자신에게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바로 그 지점을 회복해야 한다. 이준석의 정치활동에 돌풍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는 일은 제발 집어 치우고 그 안에 숨겨진 구악(舊惡)의 단말마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앙샹레짐(ancien régime)의 반동이 다소 세련되게 온 셈이다. 거기에 속아서는 안되는 언론들이 제일 먼저 속고 있다. 아니면 속고 있는 척 하거나. 통탄할 노릇이다.
중국 역사는 무궁무진의 스토리텔러다. 호기심도 제일이고 머리도 으뜸인 학자가 평생을 바쳤더라도, 그는 노년에 코끼리의 새끼발톱을 만진 인생이었다, 고 술회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라는 태평성세가 있었다. 4000-5000년 전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요'(堯)는 인류역사 50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군(聖君)이었다. 현대의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역시 하나의 전설이 된 호세 무하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흔 살의 노인인데 아직도 1987년형 소형차를 운전하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요임금을 성군으로 만든 또다른 업적은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인물을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그 큰 올바름이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동양세계의 정치사상과 시문학에..
서른아홉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바람 필 생각이 없었을까.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주위에서 재혼하라는데 너는 어떠냐 물으셨다. 몰라도 너무 모른 나는 일언지하에 호적을 파내고 가세요 했다. 그 후부터 어두운 부엌에서 가끔 낮고 구슬픈 노래가 들려왔다. 눈물이 눈썹을 찌르고 안개의 거리 방황하듯 어깨가 들썩였다. 김포 쪽 농군이 팔러온 곡식을 사서 시장에 되파셨다. 사남매 다 키워 공부시키고 조그만 집 한 채도 장만하셨다. 봄날에 개구리 알 낳듯 어머니 몫까지 연애하는 나는 불효자입니다. ▶약력 ▶2017년 리토피아 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 옳지, 봄 , 항아리 속의 불씨 ▶제4회 아라작품상 수상. ▶제11회 리토피아 문학상 수상.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기억이 미래를 만든다. 우리가 지난 일을 되새기는 이유이다. 6월 6일, 66회 현충일이 지났다. 정의는 망각 위에 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6월 6일이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1949년 6월 6일, 한 무리의 경찰이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활동 중이던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장해제시켰다. 일제 때 친일의 첨병이던 경찰이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짓밟은 날, 이후 특위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일제 때 악질고문경찰로 악명높았던 김덕기, 노덕술 등은 풀려나 경찰 보안책임자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20일 후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되고, 이어지는 극우 백색테러가 꼬리를 물면서 일제청산활동은 좌초하고 공공연히 친일파가 득세하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나는 6월 6일을 우리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날로 기억한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자..
칼럼에 한 기자를 2회 연속 언급한다. 저널리즘이 무너져 내리는 시대에 기자들은 물론 언론계에 진입하려는 예비 언론인들도 꼭 읽어 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에서다. 지난 달 26일자 칼럼에서 오마이뉴스 최병성 기자가 5월 14일 보도한 “2050년까지 30년간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 3400만톤을 흡수하겠다.”는 산림청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조목조목 비판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높게 평가했다. 미국 미주리대학에는탐사보도기자회(Investigative Reports and Editors)라는 조직의 본부가 있다. 약칭이 분노를 의미하는 IRE다. 최 기자의 기사는 독자들의 분노를 끌어낸 1인 탐사보도였다. 치밀한 취재가 돋보였다. 최 기자는 6월 2일자로 “싹쓸이 벌목 진짜 이유,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산림청에 속았다.”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사를 보도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모병제가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대선 도전에 나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0대 기업 초봉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모병제를 제안했다. 현행 징병제를 지원자 중심의 모병제로 전환하자는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돼온 민감한 이슈다. 이와함께 정치권에서 남녀평등복무제 신설, 군 가산점 부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행하는 《군사균형 2019~2021》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징병제보다 모병제 국가가 많지만 상비군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징병제 채택율이 조금 더 높다. 우리의 현역 군인은 55만명으로 세계 8위다. 그러나 0점대의 세계 최저 출산율인 인구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병력구조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병력 문제는 앞으로 국가지도자가 고민하고 결단해야 할 중대 사안인 만큼 대선을 앞둔 이번 기회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섰으면 한다. 우선 가장 고민해야 할 지점이 ‘사회 정의’의 문제다. 모병제를 할 경우 소위 가난한 집 자녀나 저학력자 위주로 군대를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의 가치는 사회문화·정서적 문제와 함께 두 번째로 관건인 예산과 직결돼 있다. 소위 ‘흙수저만 군대가느냐’에 대한 불공정, 사회적 위화감 등을 해소해야 하는 데 쉽지 않다. 군 복무자는 학·경력 단절로 인한 생애 기대소득 등 유무형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을 그나마 최소화하려면 상응하는 경제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사회가 막대한 재원 마련(예를들면 비복무자에 대해 일정기간 모병세 부과 등)에 합의해야 한다. 또 군 제대후 취업 등에서 가산점제나 세심한 보완책 등이 필요하다. 셋째 군대의 규모다. 첨단무기가 병력 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산악지대가 많고 북한의 상비 병력만 120만명에 이르는 등 특수한 상황이다. 모병제인 독일도 최근 병력을 늘리려는 추세이고 미국의 아프간 전투 등에서 보듯 지상 병력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우리의 경우 예산 문제도 있지만 병력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현실도 못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드러난 각종 부정적 병역 문화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폐쇄적인 상하관계, 군내 성 추행, 열악한 복무여건 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제 인구감소로 인한 병력자원난은 현존하는 위협이다. 그런데 모병제는 공정과 재원의 큰 숙제를 안고 있다. 미래 성장을 견인할 우리 젊은세대는 군복무로 인한 학·경력 단절로 세계화 경쟁에서 열악하다. 한편에서 기술혁명으로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또 일본 등 해외사례를 보면 모병제에서도 목표한 병력 확보는 쉽지 않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혼합형이든 궁극적으로 군 지원자가 일정수준 ‘가고싶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모병제 아래서 대기업 초봉 수준의 월급 때문에 군대를 갈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제대후 비복무자와의 사회적 간극은 어떻게 메우나. 당장의 선거를 의식한 단발성 ‘표’플리즘 정책은 안된다. 병력구조 개편이 국방 차원을 넘어 ‘영끌’ 세대의 눈높이인 ‘학업·취업·승진·결혼’ 등과 연계되도록 입체적으로 논의·설계해야 한다.
겸양은 자기만족에 빠진 오만한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사람들 사이의 평화는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다.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장애는 오만이다. 오직 겸양만이 - 모욕을 참고 매도를 견디고 오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만이 - 사람이 자신과 타인의 관계 속에, 또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세상이 우리를 질책하고 비난할 때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비난 속에 어떤 근거가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흄) 만약 네가 지난 날 성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성현이 산 것처럼 살지 않아서, 자신이 성현의 명예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자존심에 고통을 느낀다면, 그런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네가 성현으로서의 평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또 만일 지금 당장 네 양심이 요구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만은 오만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른 모든 죄악도 옹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난을 싫어하고 치료를 거부하기 때문이며, 죄악을 숨기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겸허하게 하는 죄의식은 그의 오만을 부추기는 선한 일보다 더 유익하다. (박스터) 자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 그러면 너희에게는 적이 없을 것이다. (중국 금언)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굴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굴욕은 겸허와 결합된 온갖 정신적 행복에 의해 몇 갑절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손을 넣어 대지의 가슴을 만져보십시오, 추운 겨울의 얼어붙은 것 같았지만 아닙니다. 그 얼음으로 인해 이제 우리의 보습(補習)을 받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부드럽고 겸손해졌습니다. 이 시대가 제 할 사명을 사나운 겨울같이 다하고 북극으로 쫓겨갈 때 그 땅은 우리의 번쩍이는 보습을 받아들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씨ᄋᆞᆯ이지만 또 보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슴을 우리 손으로 갈아엎고 우리의 씨ᄋᆞᆯ, 하늘에서 받은 씨ᄋᆞᆯ을 또 우리 손으로 심는 것입니다. (함석헌)/주요 출처 :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