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오늘,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라는 제목의 7.7선언을 발표했다. 7·7선언은 적대적인 냉전체제에 기반해 있던 통일외교정책의 근간을 북한 및 사회주의권을 대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6개 항의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 선언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은 혼돈스러웠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도 대통령선거가 군부의 집권연장으로 귀결되자 길거리는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청년학생들은 '6·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강행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88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한민국은 중무장한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시민들이 쫓기는 군화발과 지랄탄의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언은 자뭇 생뚱맞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
조국 전 장관 부녀의 삽화를 성매매 기사에다 쓴 조선일보 사태를 보고 실로 오랫동안 품었던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일까?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이 궁금증은 언제부터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선일보 기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을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그들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지고 마는 봉숭아 씨처럼 터졌다. 엉뚱하게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할까, 하는 의문. 곧바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메아리쳤다. 왜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십중팔구 자신을 객체화한다. 준열하..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자 금발의 백치 미녀로 불리지만 정작 자신은 이러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연기를 배우고 프로덕션을 차려 스스로 바라는 모습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노마 진 모터슨(Norma Jeane Morten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친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보육원과 양부모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불행으로 점철된 과거를 딛고 모델과 배우 일을 하며 마침내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만, 약물 중독으로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사후의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이미지에 갇힌 채 커다란 동상으로 남아 수모를 당하고 있다. 2011년 조각가 수어드 존슨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 나오는 먼로를 재현한 동상 ‘포에버 마릴린’을 제작했다. 높이 8미터, 무게 약 15톤의 이 거대한 동상은 2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걸렸고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부여잡는 먼로의 속옷을 드러냈다. 먼로 동상의 치마 밑에서 팬티를 올려다보고 시시덕거리며 사진을 찍는 것이 관광 코스가 되자 시카고 주민들과 여성 단체는 동상의 철거를 주장했다. 이후 먼로의 동상은 여기저기 옮겨 다녔고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미술관 앞으로 옮겨졌다. 동상이 제작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2017년 말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정재계 인사, 문화예술인, 연예산업 관계자 등 많은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처벌을 받거나 은퇴했지만, 작고한 배우를 비하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한 동상은 여전히 우뚝 서서 치욕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먼로는 평안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도 마릴린 먼로공원이라는 별칭을 가진 강원도 인제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이 있는 곳에 먼로의 동상이 서 있다. 6·25가 끝난 지 이듬해인 1954년 마릴린 먼로가 인제에 있는 미군 부대를 찾아 한 차례 위문 공연을 했다는 실오라기 같은 인연을 찾아 동상을 세운 것이다. 먼로 동상은 수어드 존슨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7년 만의 외출’의 유명한 장면인 ‘치마 씬’의 치마를 부여잡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생전에 마릴린 먼로의 미소는 시그너처와도 같이 어디나 따라다녔다. 남아 있는 사진 속 그녀는 거의 웃는 모습이다. “웃어요. 인생은 아름다우니까요. 세상에는 웃을 일이 많아요.”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띠는 그녀는 오늘따라 더욱더 슬퍼 보인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시각과 생각, 그리고 처우가 변했다고 믿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온라인도, 직장도, 군대도,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여전히 누군가는 어디선가 울고, 아프고, 숨을 끊는다. 누가 진정으로 마릴린을 웃게 할까. 동상을 만든 사람, 동상을 세운 사람, 동상 앞에서 히히대는 사람들은 과연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까.
오는 8월부터 경기도가 8월부터 관광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무장애관광 활동 지원 교육’을 실시한다. 관광약자인 고령자, 장애인, 임신부, 영유아 동반자 등에게 편안하고 안전하고 만족도 높은 관광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관광지에서 아기쉼터·가족 동반 화장실 등 필요한 정보 안내, 유아차 대여 등이다. 도는 관광약자 개념, 응대 시 주의사항 등 실전 활용도가 높은 내용을 교육할 계획이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을 고려, 교육방식을 온·오프라인 방식을 동시에 준비했다고 한다. 도 관계자는 “관광약자의 관광만족도는 물리적인 관광 환경보다 관광업계 종사자 등 서비스 제공자에 따라 향상된다”면서 관광약자가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족스런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관광환경’이..
약속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랐다. 운전사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가 모래내 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지막 손님으로 30대 중반 나이의 여인이 올라왔다. 그녀가 신용카드를 체크하는 기계에 대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시 다른 카드를 꺼내 기계에 댔다. 기계는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나무라듯 말했다. 당황한 여인의 얼굴에는 놀라움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그녀는 기사에게 조금 있다 계산하겠다고 말하고 나의 뒷좌석으로 가 앉았다. 그냥 보기엔 여유 있는 가정의 부인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히 생활하며 지내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다시 기계 곁으로 가서 카드를 댔다. 또 실패였다. ‘내 카드를 줄까. 안 받는다면!’ 잠시 망설이다 선뜻 카드를 내밀었다. 눈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시사주관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기회’,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강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남은 기간 남북대화 재개 및 관계복원에 대한 의지를 내 보이면서 간접적으로 북한에 대한 호소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은 자강력,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대화도 도발도 하지 않는 북한식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북한의 문을 열 수 있을지를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북한은 200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의 추억과 2009년 3월 하노이 회담의 노딜 교훈을 곱씹으며 남한의 중재자로서의 한계와 미국에 대한 불신, 좀 거칠게 표현하면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이 북한의 현재의 심정일 것이다. 집권초기 꿈 많던..
흔들리는 부동산 시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반전 계기로 기대되는 3기 신도시 분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오는 15일 인천 계양부터 시작되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물량의 분양가 수준을 공개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서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이라고 밝혔다. 건드리기만 하면 요동을 거듭해온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감안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예측과 대책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분양가는 세부적으로 인천 계양은 59㎡ 3억 5000만 원, 74㎡ 4억 5000만 원, 남양주 진접은 59㎡ 3억 5000만 원, 74㎡ 4억 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또 성남 복정1은 51㎡ 5억 8000만~6억 원, 59㎡, 6억 8000만..
며칠 전 지인을 따라 서울 중심가의 음식점을 다녀왔다. 빌딩 숲이 아닌 제법 한적한 장소에 있었고, 그 규모 또한 제법 컸다. 천장이 유리로 뚫려있어 자연 채광이 아주 좋았고, 층고도 꽤 높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가게를 둘러보던 중, 한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봤을 법한 흰 벽과 조명 스탠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이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원래 사진가로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장소였는데 업종을 변경했다고 한다.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과 광고 사진을 만들어내던 장소는 이제 음식점으로 바뀐 것이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포토키나(Photokina)에 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포토키나는 1950년의 첫 개최를 시작으로, 독일 쾰른메세(Koelnmesse)에서 진행되는 세계 최대의 사진과 영상기기 전시회이다. 수십 년간 각..
새치네는 이북의 함경도 방언으로 아주 작은 민물고기이다. 까나리처럼 작고 반짝이는 몸통을 가지고 있다. 다른 민물고기와 같이 그물에 잡혀도 유별나게 팔딱여서 새치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치네를 ‘쫑개’ 또는 ‘미꾸라지’라고도 한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이것을 일컬어 보양식 ‘새치네 탕’이라 한다. 삼복이 시작되면 농촌에서는 작은 수로나 논밭의 물꼬에 된장을 밑밥으로 통발을 놓는다. 반나절이면 작은 것들이 오글오글 통발에 들어선다. 그물로 늪지나 강변에서 잡기도 한다. 7월에 잡는 새치네는 아주 작다. 가을이면 몸집도 커져서 내장을 갈라야 하지만 적기에 잡은 새치네는 이물질을 토하게 하고 그대로 요리한다. 생명력이 강한 이것이 소금을 치고 그릇의 뚜껑을 덮으면 세차게 뛰어올라 팔딱이는데 그 소리가 흡사 굵은 빗방울이 땅..
지난 1일 국회는 교육부의 권한 중 교육의 중장기 비전 및 국가교육과정 수립권한을 국가교육위로 이관한 국가교육위법을 통과시켰다. 국가교육위는 준비기간 1년을 거쳐 내년 7월 공식 출범한다. 국가교육위의 으뜸 역할은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협의를 활성화해서 중장기 교육비전과 정책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 신설될 국가교육위가 과연 약속만큼 독립성과 전문성, 실효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입법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국가교육위 구성에서 정부여당 몫이 과반수다. 위원 임기가 대통령 임기보다 짧은 3년에 지나지 않고 연임까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가교육위가 과연 초정권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위원장 외에 상임위원은 2인에 지나지 않는다. 무려 18명의 비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