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91년 5월 투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 역사를 기억하고, 또 그 의미를 올바로 의식하고 있을까? 대체로 4050 세대는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1987년 6월 항쟁과 대비해 성과 없이 패배한 투쟁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도 아픈 기억으로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4050세대는 당시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40대는 대학생이었다. 1991년 4월 26일 시위 현장에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으로 불리던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망한 이후 시민사회는 ‘노태우정권 퇴진과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여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해 투쟁에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쟁취한 직선제 개헌에 따라 출범한 정부를 부정하면서 민주정부 수립을..
올더스 헉슬리가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것이 1932년이었다. 9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소설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과연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발표한 것은 1949년이었다. 70년이 더 지났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이 던진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공포와 증오, 잔인성 위에 문명을 세울 수는 없어요. 그런 문명은 유지되지 못해요.’ 이 소설들을 포함한 많은 소설이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사회를 다루었고, 더러 현실이 되었다. 한국의 소설가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최근 발간된 김강의 흥미로운 소설집 《소비노동조합》의 시대적 배경은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지 이미 30년이 지난 2069년이다. 만 18세가 되는 순간부터 누구나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어릴 적에는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케이크를 준비해서 파티를 했다. 반 회장을 주축으로 모여서 칠판에 풍선을 붙이고 분필로 편지를 썼다. 선생님에게 진짜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파티를 열어 합법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요즘은 김영란법이 생겨서 이런 식의 파티는 거의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파티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오히려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작년 스승의 날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 일이 없었고 올해엔 학생 몇 명이 꽃과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는 받고 꽃은 사진을 찍고 돌려보내면서 사진으로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학생이 아쉬워했지만 편지만으로 충분하다고 거듭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전체 교사들에게..
1. 매회 챙겨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위에서 하도 재미있다 해서 가끔 시청했다. 사필귀정, 거악응징 드라마의 쌍두마차 《빈센조》와 《모범택시》 말이다. 전자는 노골적 B급 정서를 지향하는 블랙코미디.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가관이다. 난데없이 (한국 혈통) 이태리 본토 마피아 변호사가 등장한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양쪽에서 줄줄이 사람을 죽여도 수사기관은 하품만 하고 있다. 팩트 체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후자는 요 몇 년 사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사건에서 주로 모티브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모 웹하드 기업 회장의 엽기잔혹 스토리 같은. 상대적으로 좀 더 사실적인 설정인 셈이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인물 설정, 미장센, 대사에서 모두 노이즈가 강하다는 거다. 특히 《모범택시》는 등장인물 모두가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빽빽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다. 늦은 밤에 보고 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다. 잔인한 장면 기준으로는 《빈센조》가 한 수 위다. 특히 최종회에 등장하는 ‘참회의 창’인가 뭔가 하는 살인도구는 (끔찍을 넘어) 참신하다 싶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2. 사회학자 겸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어떤 대상을 상대로 복제된 물건이 원본보다 더 현실 같은 경우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을 대체해버린다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창조된 가공의 이미지를 사람들이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게다. 이것이 바로 시뮬라크르(Simulacres)다. 예를 들어 1955년부터 캘리포니아 에너하임에서 문을 연 《디즈니랜드》가 그렇다. 월트 디즈니가 창조한 이 초대형 놀이공원에서는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가 입장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사람이 분장한 실물 크기의 캐릭터일 뿐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특히 어린이들은) 그곳에서 만나는 미키마우스를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 양 착각한다.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관철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심지어 미국이란 나라 전체를 ‘거대한 디즈니랜드’라고까지 부른다. 주류 기득권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문화적 환상(illusion)이 구조적 불평등을 대체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온갖 해프닝을 벌이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외쳤던 슬로건이 무엇인가. “위대한 미국”이다. 극단적 빈부격차, 인종차별, 총기문제, 의료보험 문제 등 온갖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미국이 과연 그렇게 위대한가? 3. 영화 역사상 시뮬라크르가 가장 선명하게 실현된 것은 1999년에 개봉된 《매트릭스》다. 이 영화를 제작, 감독한 워쇼스키(Wachowski) 형제가 보드리야르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지는 영화 그 자체가 증명한다. 스토리 전개의 초입부에 주인공 ‘네오’가 해킹된 하드디스크를 악당들에게 전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카메라가 물건을 숨겨놓은 책 표지를 비추는데, 그 책의 이름이 바로 (보들리야르가 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현실 속 인간은 그저 인공지능 기계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체 배터리로 사육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피사육(被飼育) 인간’의 두뇌 속에 심겨진 디지털 가상현실 즉 ‘매트릭스’를 실제 세상이라 여긴다. 기계가 창조한 환상의 세상에서 행복을 만끽하며 비루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처럼 현실을 대체하는 환상이 의도하든 않든 간에 세상의 질곡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거세시킨다고 갈파한다. 뒤통수에 전극이 꽂힌 채, 자그마한 강철 사육통 안에서 평생을 잠이 들어 살아가는 영화 속 인간들처럼. 4. 이 지점이야말로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빈센조》와 《모범택시》 같은 히어로 드라마들이 폭발적 인기를 끄는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미증유의 통제와 생존위기, 거기에다 언덕 아래로 바위가 구르듯 뒤숭숭한 정치상황까지. 뭔가 사람들 마음이 불안하고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언필칭 촛불정부가 들어서고 개혁의 나팔소리가 하늘높이 솟구쳐도 강자의 이익이 철저히 관철되는 경제법칙은 변함이 없다. 정글 같은 경쟁사회의 본질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혈로가 차단된 느낌이랄까 명치에 무지근한 덩어리가 얹힌 듯 하달까 그런 심정인 게다. 이럴 때 톡 쏘는 탄산음료 같은 가상현실이 대중들의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것이다.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도 인식한다. 저런 쾌도난마와 권선징악이 실제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차피 저것은 만화 같은 설정이라는 것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환상에 끌리는 것이 대중심리다. 드라마가 상영되는 50분 간 만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먹에는 더 큰 주먹으로 응징하고, 교활하고 악한 놈은 더 큰 교활과 폭력으로 뭉개버리는 모습에 코끝 쩌릿한 대리만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분명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이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사회는 불온한 사회라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운 여름날 탄산음료가 잠시 갈증을 없앨 수는 있어도 금방 다시 목이 말라오는 것처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조금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빈센조》나 《모범택시》 같은 환타지가 아니라 진짜 현실 속에서 초일급 악당들이 모조리 (설렁설렁 말고) 뼈 속까지 죗값 치르는 세상 말이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과 제도가 생생하게 작동하는 곳. 이를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 그리고 그것을 배태한 구조적 거악이 무 베듯 잘려나가는 사회. 사람들은 하루빨리 그런 통쾌한 세상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지난달 이 회장 컬렉션 2만300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기증 작품 중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과 이상범, 나혜석, 변관식,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국내 화가들과 모네·르누아르·피카소·달리·샤갈·미로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큰 관심을 갖고 기증받은 미술품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전시할 수 있는 전용공간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전국 지방정부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열기가 뜨겁다. 경기도내에서는 수원시와 용인시, 평택시, 안산시가 나섰다. 수원시는 1969년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본사 주소지가 있는 곳이며 장안구 이목동엔 이 회장이 묻힌 삼성가..
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May Day. 저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기념일은 아닙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지금으로선 당연한 요구를 쟁취하려 했던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하루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내릴 수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양분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도 정치, 사회적 분쟁으로 결말이 난다. 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즉,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할..
우리의 영혼에는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준다.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혼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무서워하고 싶은 자는 무서워하라. 영혼은 자기 본원의 나라에 살며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다. (에머슨) 신은 모든 사람들 속에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신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고뇌의 원인이 있다. 불이 없으면 등잔을 켤 수 없듯 신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바라문의 가르침)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다. 창조도 파괴도 내 생각에 따라 일어난다. 세상은 다만 껍데기일 뿐이고 그 핵심은 바로 나다. 그런 내가 티끌이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어찌 두려워할 필요가 있으랴. 나는 티끌이 아니다. 그러니 신에게 복종하며 편안하게 이 세상에서 살라. (페르시아 금언)..
최근 중국이 지난해 인구가 전년에 비해 1200만명 늘어난 14억1178만명으로 세계 최대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신생아수는 18%나 줄고 합계출산율도 1.3명으로 떨어졌다. 이르면 2022년부터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돼 2023년에는 인도(출산율 2.3명)에게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고령화)는 아직 기술보다는 노동력에 의존하면서 세계속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면 그 결정적인 요인으로 인구 감소를 꼽을 정도다. 국민의 평균연령이 낮은 젊은 나라일수록 생산과 소비, 투자가 왕성한 조화를 이루며 GDP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량젠장(梁建章) 베이징대 교수는 “신생아 1인당 100만 위안(약 1억7500만 원)을 지급하자”는 제안까지 하..
우리나라에 “처녀귀신” 이야기가 그토록 오래 전해내려온 까닭은 달리 있지 않았다. 고을의 힘센 자들이 사건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 처녀귀신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게 될까? 《춘향전》이렷다. 죽은 다음에 해결하면 뭐하는가? 살아생전에 한이 생길 일을 풀어야 세상이 제 도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장원급제하여 어사로 밀행하고 있던 이몽룡은 거지꼴로 변장하고 관아에 들어선다. 백성들은 가난에 쪄들어 있는데 사또 변학도는 여기 저기 고을 수령들을 불러다가 상다리 부러지게 생일잔치를 벌였겠다. 거지 이몽룡은 밥값으로 시 한 수 읊는다. “금준미주(琴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원님 생일 잔치에 뭔 난데 없는 소리인가? “금 술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수많은 백성들이 흘린 피요, 옥으로 만든 쟁반에 그득 담긴 보기에도 입맛 다시게 하는 안주거리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것 아닌가? 술상 밝힌 촛농 떨어지면 백성들의 피눈물도 떨어지고, 너희들이 신이 나 난리 부르스치는 자리마다 한맺힌 소리 드높은 줄 모르느냐?” 이 모든 사태를 속 시원하게 바로 잡는 딱 한 마디, “암행어사 출도야~~~!” 탐관오리(貪官汚吏)의 권세를 꺽지 못하면 사랑이고 민생이고 자시고 없다. 억울한 백성만 피눈물 흘릴 뿐이다. - 처녀귀신 면한 춘향이의 정치학 출세욕으로 따는 벼슬이라는 게 공직의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사욕을 있는 대로 차릴 권리를 잡는 자리가 되고 만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차이가 없다. 어느 고을에 벼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폼을 잡고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를 사람들이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 불렀다. 전하는 바에는 당대 보수파 노론의 왕초 송시열을 빗댄 말이라고 하는데 그 진위를 알 도리는 없다. 어쨌거나 이 북곽선생은 나이 사십에 손수 교정(矯正)한 책이 만 권이요,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호랑이를 덜컥 만난다. 호랑이는 꼴은 선비인데 냄새가 독하다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신이 된다는데 그 좋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입맛이 도통 다셔지지가 않는 것이다. - 백성들을 논밭으로 삼는 탐관오리(貪官汚吏)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 이야기다. 호질(虎叱)은 “호랑이가 꾸짖다”라는 뜻이다. 그럼 어디 그 꾸지람을 들어나 볼까? “무릇 제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명을 잔인하게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너희들은 밤낮으로 허둥지둥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노략질하고 훔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돈을 형(兄)이라 부른다. 메뚜기로부터 밥을 빼앗고, 누에로부터 그 옷을 빼앗고, 벌을 가두어 그 꿀을 긁어내고 심지어는 개미알로 젓갈을 담가서 제 조상에 제사 지낸다고 하니, 그 잔인하고 박정함이 너희보다 더한 것이 있겠느냐?” 정약전이 《자산어보》 쓰는 것을 도운 어부 창대가 관직에 올라 보니 관리들의 온갖 협잡질과 백성들 등골 휘게하는 현실을 보고 “백성들은 땅을 논밭으로 삼는데 양반들은 백성들을 논밭으로 삼는구나”라는 말 그대로다. 양반과 관리들이 한통속이 되어 죄다 긁어간다는 걸 이리 비유했다.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이라며 농민들의 골수를 빼먹었던 게 뭐였는가? “전부(田賦)”라고 해서 지주부호 양반의 기름진 옥토(沃土)는 탐관오리와 결탁해 나쁜 땅 박토(薄土)로 장부에 기록해 세금포탈을 하게 하고, 농민들의 손바닥만한 땅은 높은 등급으로 기록해 징세를 했던 것이다. “군포(軍布)”는 또 뭐였는가? 병역세인데 뱃속의 아기는 물론이고 이미 사망한 자에게까지 거두어내 “백골촉루(白骨髑髏)의 세(稅)”라는 말이 생겼다. ‘촉루’라는 한자가 어렵기는 한데 그 또한 해골이라는 뜻이다. 친족이나 이웃까지도 얽어서 군포를 거두니 이를 족징(族徵), 인징(隣徵)이라고 불렀다. “환곡(還穀)”은 본래 춘궁기에 나라가 곡물을 내주고 추수기에 이자없이 돌려받는 구제책이었는데, 이게 강제로 받아가게 하고는 고리대금처럼 이자를 붙여 등골을 휘게 하는 작태로 변했다. 곡물을 받지 않은 사람까지 장부에 기입해 세금을 닦달한 백징(白徵)까지 있었으니 강탈이 아니고 뭔가? 해서 호랑이는 또 한번 크게 꾸짖는다. “너희들이 먹는 것을 보면 그 얼마나 어질지 못한가! 덫과 함정으로도 부족하여 새 그물, 노루 그물, 작은 물고기 그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 삼태 그물 등을 만들었으니, 최초에 그물을 만든 자야말로 천하에 가장 큰 화를 끼쳤도다.” 짐싣는 수레까지 가져간단다. 빠져나갈 틈없는 촘촘한 약탈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이름을 숨긴 채 공개리에 내건 “괘서(掛書)”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까닭도 양반과 탐관오리의 결탁에 숨통이 끊어질 듯 괴롭던 백성들의 현실을 말해준다. 1811년 황해도 곡산의 농민들이 관청을 습격했던 것이나 같은 해 평안도 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봉기 등도 모두 이런 현실에 대한 농민전쟁의 씨앗들이었다. 1862년 진주 농민 반란은 조선 땅 천지를 격동시켰고 이런 현실을 위로부터 혁파하고자 했던 갑신정변(1884년)에 이어 1894년 동학 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민중이 깨우친 것은 탐욕스러운 권력을 먼저 무너뜨리지 못하면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는 사실이었다. “선(先)개혁 후(後)민생론”이다. 봉단이는 갖바치 양주팔의 조카딸이다. 갓바치라고 하기도 하고 갖바치라고 하기도 하는 이 직업은 백정이다. 그런데 양주팔은 글 꽤나 읽어 백정학자(白丁學者)라고 불리웠고 후에는 조광조와 교류까지 하는 사이가 된다. 봉단이와 양주팔 사이로 숨어 들어간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었다. - 농민봉기와 림꺽정 연산군의 갑자, 무오사화로부터 기묘, 을사로 이어진 사화는 사대부 선비들의 목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심지가 바른 이교리 역시도 말 한마디로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목숨은 건졌으나 거제도로 귀양살이를 간다. 연산이 사화를 불러 일으킬 기세를 보이자 ‘지당하옵니다’라고 하지 못하고 “임금의 자리는 높은 까닭에 위태하옵니다. 덕이 아니면 누리기가....”했다가 단칼에 유배길이 되었다. 유배처에서 자칫 죽을 판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야반도주를 하여 겨우 겨우 함경도땅까지 갔다가 처녀 봉단이를 우연히 만나 마음이 빼앗긴다. 서울 어느 대감집 하인으로 있다가 죄를 지어 쫓겨나 팔도강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며 신분을 속이고 그곳에 기거하게 되고 봉단이의 아버지이자 집주인 양주삼의 아우 양주팔과는 비슷한 연배라 친구가 된다. 훗날 중종반정으로 조광조와 함께 직에 돌아간 이교리의 입지를 돌아보자면 봉단이와의 사랑으로 이어진 개혁파의 의도치 않은 밑바닥 연대였던 셈이다. 벽초 홍명희의 《림꺽정》, 그 시작의 무대다. 연산은 중종을 왕으로 옹립한 반정(反正)으로 몰락하고 중종 사후 권력이 배다른 형제인 인종으로 가는가 명종으로 가는가에 따라 외척의 권력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인종의 모친 장경왕후나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나 모두 파평윤씨 집안이었으나 어디 권력이 그리 순순하게 나누고 살 수 있는 물건인가?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尹任)과 문정왕후의 아우 윤원형(尹元衡)은 이른바 대윤(大尹), 소윤(小尹)으로 불리는 사이였으되 권력쟁취를 놓고는 원수지간이었다. 인종이 권력승계를 하자 대윤의 승리로 마무리되나 했지만 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열두 살 명종에게 갔고 당연하게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소윤 윤원형의 세상이 되었다. 윤씨가문의 외척세도가 하늘을 찔렀고 반대파는 죽임을 당하기를 그야말로 파리목숨이었다. 이러면서 이들과 연결된 탐관오리의 약탈은 막을 길 없이 조선팔도를 짓눌렀다. 그러자 어찌 되었을까? 바로 이 때에 황해도 경기도 그리고 함경도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고을관아를 습격, 창고를 털어 빈민에게 나누어준 림꺽정의 활약시대가 열렸다. 그에게 병법을 가르친 이가 다름 아닌 백정학자 양주팔이고 림꺽정의 아버지는 양주팔과 친구가 된 홍문관 이교리의 부인 봉단이의 사촌이다. 얽히고 설켰다. 성호 이익이 조선 3대 도적(의적)이라 불렀던 홍길동, 장길산, 그리고 림꺽정이었다. 그러니 그와 개혁파 홍문관 교리 이장곤, 조광조, 양주팔의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져 위에서, 그리고 아래로부터 세상을 뒤집는 개혁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농민들이 겪었던 일이 오늘과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체제는 달라졌지만 돌아가는 정치의 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혁과 민생은 다른 것이라 선전하는 자들이 있다. 속도조절하자고 한다. 뻔한 속셈이다. 개혁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기들의 특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민생의 요구가 해결되는 것은 “자기들이 먹고 남은 것만 가지고 ‘공정’하게 싸우면 된다”고 세뇌한다. 이들이 강조하는 “공정의 실상”이다. 금준미주와 옥반가효를 부패와 특권의 사슬 속에서 전부 차지하는 자들의 세도를 꺾고, 이들의 죄악을 징치(懲治)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민생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독일의 시인 하이네가 남긴 시 “슐레지엔의 직조공”의 한 대목이다.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중략)두 번째 저주는 왕에게, 부자들의 왕에게/우리들의 비참을 덜어 주기는커녕/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그런 세상은 이 시가 이어 말하고 있듯이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이 된다. 개혁을 늦추고 민생을 하자는 자들은 개혁이건 민생이건 뭐든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다. 자기들이 다 뜯어먹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는 소리니까. 자기네 사건을 덮어줄 자들이 건재해야 자기들 독차지가 되니까. 그건 우리에게 “장송곡”이다. 힘겹게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렇게 이룬 이 시대의 수의(壽衣)를 베틀에 앉아 짜고 싶지 않다면, 뭘 해야 할까? 촛불을 다시 들 때이다.
“방역당국이 감염자 수를 조작하고 있다.” “백신접종 후 수십 명이 사망했다.” “백신이 바닥났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주류 언론까지 나서서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가짜뉴스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 정보”(허위조작정보)를 의미한다. EU에 따르면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고의로 공중을 속이기 위해 제작, 유포된 정보다. 가짜뉴스는 동서고금을 통해 늘 존재했던 신문과 방송의 오보나 편파보도, 유언비어와 달리 출처조작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그 결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행위다. 지난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은 ‘가짜뉴스 경연장’이었다. 브렉시트 당시 널리 유포된 대표적 허위정보는 영국이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