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가 방방곡곡에 휘날리고 있다. 일제 압제로부터의 해방됨을 기념하고 나라 융성을 다져야 하는 의지가 가득 베인 광복절이니 당연한 일일거다. 그 중 수도권의 두 지자체는 태극기의 위상을 더 한층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사의 혼이 깃든 태극기를 높이 게양하는 일부터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해 펴는 다양한 형태의 행사까지 태극기 세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북한의 천안함 사건 등으로 안보위협을 받던 2010년 태극기 도시를 선포한 구리시와 애국·보훈의 기상을 높이세워 태극기의 위상을 떨리는 성남시. 어느새 태극기 이미지는 이들 지자체를 대변하는 상징어가 돼 있다. 구리시 아차산 자락의 75m 높이 국기게양대에서 연중 펄럭이는 초대형 태극기의 위상은 보는 이의 심사를 숙연케 한다. 이 높이는 전국 최대다. 애국·보훈의 도시를 표방하는 성남시의 경우, 80여m의 국기게양대 설치 계획을 강구해오는 등 태극기 위상 높이기에 애를 쓰고 있다. 또 이들 도시의 태극기 사랑 행보는 남다르다. 남녀노소의 시민과 향군 등 안보·보훈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 지역정가 인사의 적극적인 참여의지는 주
무예는 인간 투쟁의 발현체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고, 그보다 더 독한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은 무예를 수련했다. 혼자 살아남기 힘들어 둘이 되었고, 그 보다 더 힘든 상대를 뛰어 넘기 위하여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려 가며 오로지 몸으로 승부하기 위하여 무예는 수련되었다. 이러한 전투적인 무예가 공동체 안에서는 살생의 위협을 제거하고 순위를 결정짓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경기 혹은 스포츠가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무예의 본질에 충실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목숨까지 제압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투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극한의 움직임을 만들되 살상은 가능하면 자제하는 방식이 바로 경기와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짓은 더 부드러워지고 유쾌해지면서 놀이와 춤을 비롯한 신체 여가활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든 공간이 투쟁의 현장이었으며, 경쟁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더 높은 곳으로, 더 강한 곳으로 들어 갈 수 있었기에 결코 쉽게 승부가 나는 법이 없었다. 상대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뛰고, 더 멀리 가야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애국심(patriotism)은 어원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조국’을 의미하는 파트리스(patris))에서 유래한 것이다. 애국심의 의미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이다. 그리고 평화적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침략자들로 부터 나라를 유린당할 때에는 달라진다. 나라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은 저항과 투쟁을 자발적으로 벌이는 애국심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왜군의 침략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 했던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승병의 봉기도 그 중 하나다. 3 ·1운동이라는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나라를 구하려는 자발적 애국심의 발로였지 결코 조작되거나 강요된 것은 아니었다. 이같은 애국심을 참된 애국심이라 부르기도 한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 중 유독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많다.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암살’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과 임시정부대원 그리고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비교적 평범한 스토리의 영화다. 하지만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숭고한 죽음이 재 조명 받으며 나라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
/김일연 이 더러운 세상, 하며 포기할 줄 알았지 너는 배신자야 라며 잊어줄 줄 알았지 밥 먹고 한 판 더 붙자 봐라, 먹는다아 - 시집 ‘꽃벼랑’(책만든는집, 2015)에서 공력이 뛰어난 시조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조하면 선인들의 풍류 정도로 배웠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죽은 장르라 여기기 십상입니다. 이 시조 한 수는 어떤가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구구한 토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반전이 자리하고 있네요. 밥이 삶의 근원임을 다시금 새기게 하는 이 쓸쓸한 파토스(pathos)! 세상은 협잡과 배신으로 얼룩져있습니다. 대거리할 힘도 남아나지 않게 모질게 밀어붙여 밖으로만 밖으로만 내몰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연이은 참사와 비극 뒤에는 포기와 망각의 그늘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기 좋게 밥 한 술 뜨고 다시 한 판 붙을 용기를 무엇으로 내야 할까요. 우리 곁에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민호 시인
여름 산을 오르다보면 산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잎들과 그 안에서 공존하는 것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다. 초록만큼이나 청량한 산새소리, 산의 고막을 찢을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 그리고 낮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풀벌레 소리 등 많은 소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웅장한 것은 계곡을 끌어내리는 폭포소리다. 산의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다 담긴 듯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내 안의 상념을 폭포에 던져보기도 한다. 물줄기가 닿은 하류에는 또 그만큼의 사연이 담길 테고 누군가는 사연의 행방을 좇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잠시 쉬었던 걸음을 일으켜 산을 오른다. 내가 오르고자 하는 정상은 높다. 몇 개의 능선을 넘어야 하고 때론 자일에 의지해 바위를 오르기도 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걷기로 했다. 산을 오르며 만나게 되는 풀꽃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산새 소리에 잠시 귀를 내어주기도 할 참이다. 쉬어가라는 팻말이 있으면 배낭을 내려놓고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힐 것이다. 목청껏 소리 질러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화답할 것이며 이정표를 만나면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광복절인 15일 오후 5시 수원시청 앞 88올림픽 공원에서는 매우 뜻 깊은 행사가 벌어졌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항일독립투사 필동 임면수 선생의 고귀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임면수 선생은 수원에서 태어나 삼일학교 설립 등 교육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신민회 활동 등을 했으며 나라를 찾기 위해 1912년 2월 엄동설한에 어린자녀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이때 삼일여학교(현 매향중·고)부지와 집터를 기부하기도 했다. 만주에서는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군자금 조달 등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부인 전현석 여사는 만주에서 객줏집을 운영했다. 이 집은 독립군의 중계연락소, 휴식처, 무기보급소, 작전회의장으로 사용됐는데 전여사는 하루에 5~6끼의 밥을 지어 독립군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줬으며 새벽까지 이들의 헤어진 옷을 꿰매고 세탁해줬다. ‘독립군치고 전 여사의 밥을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필동 선생은 1921년 왜경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반신불수가 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930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장남도 20
광복 70주년을 맞아 온 나라가 태극기 물결을 이루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제70주년 광복절을 맞아 불꽃놀이와 함께 온 국민들은 국민대통합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미래를 한목소리로 기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광복의 완성은 민족의 통일이라며 통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북한 DMZ 도발에 대한 단호하고 철저한 응징과 함께 대화의 필요성과 민간교류확대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역설하였으며 북한의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경축사와 여야의 논평에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보훈처는 1961년 창설 이후 단 한번도 독립유공자 전체 묘소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3년간 보훈처가 추진하는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 사업에도 ‘무연고 묘소’에 대한 조사와 지원방안은 빠져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의 지적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전체 독립유공자 1만3천744명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으면서 보훈처에 등록돼 있지 않은 독립유공자는 5천582명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이들이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정말 덥다. 가벼운 내용을 택해봤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라서 그런지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드먼 교수는 행운에 대해서도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상에는 남들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운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학습이 가능한 사고(思考)·태도·행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노력해서 바꾸는 것도 가능하고 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스스로 나는 운이 좋다’는 사람들과 ‘나는 운이 나쁘다’는 사람들 중 18세에서 84세까지의 사람들 400명을 대상으로 실험과 인터뷰 등을 통해 연구하기도 했다. 행운이 잘 따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을 촬영하고 대화를 녹음해서 분석해봤더니 첫째로 행운인(幸運人)은 신체 언어구사(body language)를 잘하고, 자주 웃으며, 상대방과 눈을 잘 맞추면서 대화하고, 삶의 태도가 느긋했으며,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개방적이고, 부분적이기보다는 사물 전체에 더 관심을 갖더라고 했다. 둘째로 행운인은 늘 예감능력을 바탕으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잘 내릴 뿐만 아니라 명상이나 기도 같은 활동을 통하여 한층 더 예리하게…
오늘만 해도 벌써 몇 차례나 소스라치게 놀란다. 조심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옷은 뜯기고 난 뒤라 들여다봐도 소용이 없다. 통증은 차차 사라졌지만 마음은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다. 갈라지고 들뜬 손톱을 스치는 모든 것을 할퀴고 지나간다. 머리를 감을 때 아차 하면 손톱이 갈라진 틈새로 들어가 칼날이 생살을 파고드는 통증에 놀라 손을 감싸 쥐고 한참을 그대로 서 있어야 했다. 사고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그날따라 여유있게 회의에 참석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모든 동작이 멎었다. 의아해서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무 반응을 하지 못하고 절절 매는 나를 보고 오히려 나보다 더 놀라서 모여 들었다. 도어를 닫는 순간 손가락 끝에 불이 붙는 것만 같았다. 내가 미처 손을 빼기도 전에 문이 닫히고 손가락이 문틈에 끼고 내 손톱은 파란 잉크색 얼룩이 생겼다. 주위의 도움으로 얼음찜질을 하고 바로 길 건너 약국으로 달려가서 약을 복용하고 상처에 바르기도 했지만 결국 멍 자국은 손톱 뿌리 부분을 지나 손가락 마디까지 내려오며 부어올랐다. 손가락의 붓기는 며칠 지나자 빠졌지만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아픔을 호소할 때마다…
능소화 /박수서 참 오랜 기억이 능소화로 피었다. 방위복 벗어던지고 그 여자 집에 인사 가던 날, 익산터미널에서 시내버스타고 과덕까지 깊지도 짧지도 않은 맛 민어 부레처럼 밍밍한 길 털털 손가락으로 털고 차창 밖으로 초조한 마음 달래는 능소화 훌쩍 피어 있었다. 서울로 집 나간 자식처럼 한나절 문 밖에서 얼쩡거리다 방문 열고 안방에 들어앉았는데, 그 여자 아버지 썩을 썩을 하며 누룽지 씹는 말을 삼킨다. “저런 풍신 같은 놈을……” 장인어른 빈소에 향을 꽂고 넙죽 인사드린다. 그 시절보다 능소화는 더욱 밝그레진다. - 박수서 시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중에서 집집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에피소드가 시가 되었다. 사귀던 여자의 집을 찾아가는 그날, 초조한 남자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능소화가 한창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은 딸자식의 마음을 도둑질한 도둑. 남자답기는커녕 방위복을 갓 벗은 흰 피부에 작고 귀여운 박수서 시인에게 향하는 눈길이 고울 리 없다. “저런 풍신 같은 놈을…” 미덥지 못한 마음에 누룽지 씹는 말을 흘리던 그 여자 아버지도 별 수 없이 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