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양문규 자기 몫으로 거두어 들일 낟알 하나 없이 빈 들판을 지켜 서서 왼종일 찬 바람에 마른 목을 서걱이누나 출렁이는 나락 물결 발목을 포근히 감쌌던 못물들 다 빠져 나가고, 쭉정이 흩날리는 맨땅에 홀로 서서 지는 해 바라보누나 몸뚱이 팔 다리에 피를 끓게 하던 새떼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오직 싸늘한 기운만 안은 채 흐느적거리는 허수아비 한 점 바람에 기우뚱거리누나 여름이 무겁다 시골 들녘에서 팔순노인의 모습이 그렇고 작은형 내외가 힘겨운 인삼밭 작업이며 조카의 늦은 농사의 길잡이가 그렇다. 무성한 잎새를 달고 짙은 옥음을 자랑하는 플라타너스 나무도 펄럭이는 기운이 넘치지만 한쪽 날개를 잃은 듯 진지한 글을 쓴다. 지나간 삶들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사간을 보는 일이 여유롭지 않다. 빈 들녘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초라한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있고 필자에게도 있다. 새떼를 쫓기 위해 말없이 노래하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참 처량하게 느껴지는 시다. 가난한 영혼은 빗물이 고이고, 시심은 사라져 마음의 풍선이 떠난지 오래다. 우리들의 영혼에도 따스한 눈이 내리면 좋겠다. 이 여름, 왠 눈이 그리울까 세상은 보다 넉넉한 사람들로 정겨우면 좋겠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선조들은 국내외에서 군사조직을 만들어 무장투쟁을 하거나 또는 비밀 결사조직을 통한 독립운동에 나섰다. 3·1운동이나 6·10만세 운동 등으로 많은 선조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고 투옥됐다. 이렇게 온몸을 바친 투쟁을 했으면서도 조국 해방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애국지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피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아직까지도 친일파 후손들이 독립투사 후손들보다 득세하고 있긴 하지만. 6·25 때도 많은 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북의 남침으로 인한 전쟁이 발발하자 전국토가 전쟁터가 됐고 군번 없는 학도병을 비롯해 많은 용사들이 참전해 장렬히 전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유골조차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어느 들판이나 산허리에 쓸쓸히 묻혀 있는 무명용사들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흐뭇한 소식이 있다. 호국 보훈의 달 첫날인 지난 1일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 백년수 정상 인
지속적인 이촌향도 현상으로 농촌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다. 농업소득감소와 생활복지시설의 미흡으로 농촌생활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빠른 도시성장으로 이촌 현상이 가속화되어 농촌정착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 개발이 절실하다. 도·농간 소득을 보면 도시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중이 최근 15년 사이 20% 이상 감소하고 농촌인구 비중도 10%미만으로 하락하였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미래의 국토공간관리와 식량자급자족 문제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시행이 필요하다. 최근경기연구원에 의하면 도시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중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3.6%에서 지난해 61.5%로 줄었다. 농촌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8년 13.6%에서 2013년에 9.6%로 감소하였다. 반면에 이 기간의 농촌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9.6%에서 37.3%로 급증했다. 농촌의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증가와 성장률 하락 등 총체적인 대안모색이 절실하다. 외국인과 여성 및 노인인력 활용방안을 찾아야한다. 농촌에 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지원정책과 과감한 인센티브의 지원이 요구된다. 도시 위주의 성장이 지속되면서 도·농간 격차와 농촌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다. 최근 귀농
2011년 IT업계 키워드는 융복합(convergence)이었다. 융복합이란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에도 접목되어 일상적으로 듣고, 활용하는 용어다. 사회현상이 복잡다단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소비자 요구(needs)가 다양하고 복잡화 되었다. 단순사고보다는 융복합 사고로 접근하여야 해결책 제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융복합 시대다. 관광 또한 관광객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타산업과의 융복합 접근이 필요하다. 1997년 지방자치제도 도입이후 안정적 재정자립도와 지역경제 활성화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발전 패러다임이었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초기 도시발전 패러다임으로 관광산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관심 산업 중에 하나였다. 산업 특성상, 지역 역사와 자연자원을 잘 개발하면 관광객 유치와 수입증대뿐만 아니라 일반 제조업들에 비해 부가가치율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산업 트렌드의 변화가 있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소비자, 다시 말해 관광객의 다양한 요구가 시발점이었다. 관광콘텐츠가 과거 역사와 자연자원에 한정되었다면, 이제는 쇼핑, 놀이시설, 호텔·
지난해 6월 4일 치른 지방선거 후 7월1일 출범한 민선6기가 1주년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치단체장들의 공약에 대한 평가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예외 없이 표심만 노린 이른 바 표퓰리즘적 공약(空約)들이 남발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민선6기 전국 기초자치단체 공약실천계획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이번 공약실천계획평가는 공약계획 종합구성, 개별구성, 주민소통, 웹 소통, 공약일치도 등 5개 항목 30개 지표 평가에서 총점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는 절대평가로 진행됐다. 이 결과 90점 이상의 최고등급인 SA를 받은 기초지자체는 모두 50곳으로 나타났는데 도내에서는 31개 시·군 가운데 고양, 평택, 광명, 의왕, 이천시 등 5곳뿐이었다. 합산 총점이 80점을 넘어 A등급을 받은 도내 기초지자체는 수원시를 비롯해 성남, 화성 안산, 오산, 안성, 여주시 등 7곳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광주시의 경우 공약 정보를 관리카드만 제시했거나 정보내용이 상대적으로 부실해 D등급을 받았다. 이번 평가는 공약실천계획에 대한 것으로 취임 당시 해당 자치단체의 재정 여건 등을
‘알권리’를 공식 용어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AP통신 기자 켄트 쿠퍼(Kent Cooper)다. 그는 1945년 뉴욕타임스에 실은 기고에서 ‘국민의 알권리가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권리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18세기 말 독립 후 반연방주의자들이 집권자인 연방주의자들에게 국민들이 정부의 세금 집행과 공교육제도 실시에 대해 알권리가 있다는 점을 요구하면서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알권리가 언론에 처음 쓰인 것은 1964년이다. 당시 신문기자가 군·경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언론들은 이 사건을 국민의 알권리 침해라는 내용으로 기사화했다. 이후 언론계는 언론윤리강령에 알권리 조항을 신설하는 등 알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학계에서도 알권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그 결과 지금의 알권리로 인식되는 기틀이 마련됐다. 국민의 알권리는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여긴다. 정부가 갖는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투명한 정치, 열린 행정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모든 공문서가 납세자인 시민의 공유재산이라는
마지막 사진 /노혜봉 시신기증 카드에 복사해 넣은 어머니, 얼굴이 화사하다 천국행 차표도 선뜻 남한테 건네주었을 어머니의 품새 살아생전 85세, 올올한 결심. 봄나들이 찬란한, 콧잔등에 코티 분 향내음이 묻어날 것 같은 온기, 잘 마른 장미 꽃잎의 날개가 가비얍다 오래 묵힌 찰나가 찬연하다. 노혜봉 시집 〈좋을 好〉/계간 ‘리토피아’ 봄호에서 옛날에 비해 살기도 좋아진데다가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생산직 연령이 높아지기만 한다면야 오래 사는 것이 좋긴 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사회가 오기도 할 것이다. 미래의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사는 사회를 위해 시신을 기증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내 어머니만이 아니다. 모든 어머니는 모두의 어머니이며 곧 인류의 어머니인 것이다. /장종권 시인
벌써 봄이 무르익어 여름의 문턱이다. 낮이 길어지고 활동이 많아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쌓이고 있다.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소리가 나를 부른다. 새벽잠에도 분명 새소리였다. 봄내 우는 뻐꾸기소리가 아니라 요즘은 듣지 못하는 소리였다. 쪽박 바꿔주!! 쪽박 바꿔주!! 새는 맑은 소리로 울었다. 심술덩어리 시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며느리를 내쫓으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딸에게는 커다란 바가지를 주고 밥을 짓게 해서 넉넉했고 며느리에게는 조그만 쪽박을 주고 밥을 지으라고 했으니 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딸이 똑같이 한 바가지씩 밥을 해도 딸은 온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되는데 며느리는 밥이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고 흉을 보고 다녔다. 그러다 며느리가 밥을 훔쳐 먹고 일부러 식구들을 배 곯린다고 갖은 구박을 하며 며느리를 괴롭혔다. 마침내는 쌀을 빼돌리는 못된 며느리로 몰아내 쫓고 말았다. 가엾은 며느리는 길에서 울다 기진해서 죽고 말았다. 그 혼이 새가 되어 쪽박 바꿔달라며 울었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죽어서도 쪽박을 바꿔달라고 했을지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예전에는 여자기 시집을 가면…
프랑스 낭트대학에서 열린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적 역동성’을 논하는 흔치 않은 컨퍼런스엘 다녀왔다. 낭트시와 수원시가 자매도시이고 낭트대학과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이 자매지교이다 보니 필자에게 낭트시는 마치 타국 속의 또하나의 고향 같은 그런 친근함과 정겨움을 자아내는 곳 이었다. 15시간 여를 날아가 도착한 백야의 낭트에는 자정이 가까운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낭트대 한국학연구소장이신 은발의 프랑스 교수님이 친히 공항까지 마중을 와주셨다. 첫 만남에 놀랍게도 친숙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로 악수를 청하셨다. 피곤함이 싸악 가시는 푸근함이 밀려 왔다. 다음날 아침 여름치곤 꽤나 쌀쌀한 날시 덕에 제법 톡톡한 코트를 걸치고 나선 낭트대학 캠퍼스에서 멋진 총장님을 뵈었다. 그곳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다는 지한파 여성 프랑스 명예 한국대사도 뵈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가셨다는 명예 한국 대사는 연신 당신의 한국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전하고 또 전하느라 꽤나 열심이셨다. 작년 첫 개설했다는 한국학 강의에 몰린 109명의 낭트대생들과도 첫 대면
홍어만큼 미식(美食) 마니아층이 두터운 생선도 드물다. 삭혀 먹는다는 특이한 섭취방법도 방법이지만 맛 또한 특별해서다. 홍어는 보통 항아리 속에서 삭힌다. 3~4일, 길면 6~7일 짚과 함께 넣어두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눈이 맵고 코가 싸해 재채기가 날 정도가 되면 잘 삭혀진 것으로 가늠한다. 잘 씹어 넘길라치면 목이 후끈거려야 최고로 여긴다. 이럴 때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톡 쏘는 맛이일품인데 이런 기막힌 어우러짐을 ‘홍탁’(洪濁)이라 부르기도 한다. 회로 먹던 홍어를 전라도 남쪽 해안지방에서 삭혀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이다. 흑산 앞바다에서 홍어를 잡아 열흘 넘게 배에 실어 목포나 영산포로 운송하는 동안 신선도를 잃고 부패한 홍어를 우연히 먹고 나름대로 독특한 맛을 발견해 향토음식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영산포구에 있는 나주 사람들은 지금도 삭힌 홍어는 나주가 원조라고 말한다. 전라도 지역이라도 먹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흑산도에선 막걸리 식초에 소금·참기름·쪽파를 더한 초장에 찍어 먹는다. 나주에선 된장에 고춧가루·식초를 섞은 초장에 먹고, 함평·영암 등 내륙에서는 소금만 달랑 찍어 먹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홍어는 묵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