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신묘년의 후미진 여울목을 통과한 임진년 정월은 정처 없이 방랑하는 숱한 사건들을 대동하고 들어설 것만 같다. 신묘년과 임진년의 겨울이 옷깃을 스치는 시절(時節), 신묘년은 자신의 미래인 임진년을 흘깃 쳐다보고, 임진년은 자신의 과거가 망토를 걸치고 하산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지난 섣달과 오는 정월이 조우(遭遇)하는 곳에 노점상들은 옷깃을 여며가며 꿈들을 퍼내고 있다. 그들에게 현실은 꿈조차 사치란 말인가? 임진년 정월로 치닫는 이 계절에 낮은 종종 걸음으로, 바쁜 일상이지만 밤은 아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까맣게 다가와 긴긴 어둠의 망토를 골목골목 펼쳐놓는다. 사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에는 주인이 있었던가. 바람도 그러했다. 그런데 땅에선 왜 이다지도 ‘네 것’, ‘내 것’이 분명해야 하는지, 어느 산에 올라 겨울이 뭉텅이로 떨어진 텅 빈 공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호탕해진다.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자연이 내 가슴 속으로 한 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리. 그렇다. 국유림, 사유림이라 구별하지 말고 태초의 자연을 떠올리며 산을 가슴으로 끌어안자. 우리 모두의 하늘 아래에서 마음이나마 풍요로워야 하지
학교폭력 문제로 세상이 온통 난리다. 급기야 정부도 대책을 내놓는다고 소란을 떨고 있다. 대통령부터 검찰과 경찰까지 학교폭력을 잡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을 바라보는 마음은 결코 편치만은 않다. 이번 대책도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고 가해자를 엄벌하고 격리한다는 것. 신고전화를 117로 일원화하고 부모의 동의 없이 강제전학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등의 대책이 그것이다. 최근의 학교폭력 사태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어디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학교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학교가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기성세대 모두가 책임이 있으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란다. 체벌 금지 때문에 학생지도가 불가능해 학교폭력이 난무한다고 한다. 이런 억지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학생들의 죽음을 이슈화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는 천박한 현실인식이 역겹기까지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오해 없기를 바란다. 체벌 금지는 학생인권조례 이전에 이미 상위 법률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을. 사실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괴테가 천재였다는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우리는 흔히 괴테를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의 문학사적 작품을 남긴 작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괴테는 법률학 박사로 변호사였으며, 현실정치에 참여한 정치가였고, 과학 저서도 14권을 남긴 과학자이자 화가로 언뜻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을 연상케 한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유부녀를 가리지 않았던 괴테의 생애에서 여성을 빼고 가장 뜻 깊은 만남은 당대의 문호 실러와의 교류였을 것이다. 괴테는 실러와 함께 18세기 후반, 따분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감정과 개성을 존중하는 역사적인 근대문학을 탄생시킨다. 지금은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 청소년 시기를 대변하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작이 바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가 1774년, 편지형식의 이 소설을 발표하자 유럽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열악한 인쇄환경에도 즉각 5개국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으며 유럽의 젊은이들은 마치 K-Pop에 열광하는 팬들처럼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베르테르의 패션 등을 따라하기에 바빴다. 특히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샬로테와의 이루어질…
不患人之不知己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해야 한다. 원문은 ‘不患人之不知己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부지기 환부지인야)’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몰라준다고 속상해 한다. 자기의 인품 됨됨이나 능력을 남이 다 인정해 칭찬을 받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내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알려고 하는 점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반드시 해 봐야 한다. 그러니까 남이 나를 알아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 최고의 자아성취인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유명해지기에 골몰해 있는 것이다. 당나라 현장법사가 지은 성교서 가운데 ‘道無根而永固 名無翼而長飛(도무근이영고 명무익이장비)’라는 글이 있다. ‘도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확고하고, 명성은 날개가 없어도 멀리 날 수 있다’로, 내가 어떤 분야건 최선을 다해 그 분야에 일인자가 된다면 그 명성은 높고도 높아서 날개가 필요없고 오래오래 펄펄 날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道)도 이와 같다. 한 분야에 오래토록 뿌리내려 갈고 갈다보면 그 분야에 누구도 뛰어넘지 못하는 지혜와 실력이 쌓이게 되니 그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벽과도 같이 우뚝 솟아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남이 나를…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국회의원 공천제도 개선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기준과 틀에 따라 시스템 공천이 이뤄진다면 그게 정치쇄신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 생각하며, 이번에 그런 공천을 꼭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신임 대표는 15일 대표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완전국민경선으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릴 것”이라며 “반드시 공천혁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국민이 납득할만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한데 반해 한명숙 대표는 아예 완전국민경선에 의한 ‘공천권 반환’을 천명했다. 이처럼 여야가 전례없는 ‘공천경쟁’에 몰입하게 된 배경에는 기성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고, 새 정치와 새 인물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거세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돈봉투 사건’은 깨끗한 정치와 돈 안쓰는 선거가 얼마나 요원하면서도 시급한 과제인지를 반증한다. 19대 총선을 한국 정치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로 삼기 위해서는 공천제도 개선은 물론 정치와 정당구조 전반에 대한 혁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
월급쟁이 삼대 기쁨이 승진해서 택호 바뀌는 것, 집 평수 조금씩 늘리는 것, 그리고 정년 퇴직할 때 동료들이 진정으로 손수건 꺼내서 눈물 훔치는 것이라 했다. 지난 주말 충주 수안보에서 하루 저녁을 보냈다. 네 가족모임이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푸를 청에 소나무 송, 청송회(靑松會)! 지난번 만났던 장소가 경북 청송군이어서……. 밤늦은 생맥주집에서 즉흥 작명했다. 고향, 자란 곳, 성장환경, 출신 학교도 제각기 다른 무연(無緣)의 모임이다. 정부미(공무원) 출신 2명, 일반미 2명의 신년 모임이지만 그 가운데 막내 한명이 승진(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그룹)을 했기 때문에 축하연 성격이 짙었다. 얼굴 마주 본 것은 1년쯤 되지만 한 달에 안부전화는 두서너 번 하는지라 만나자말자 거침없이 화기가 돌았다. 우선 기념패가 전달됐다. “능력과 인품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지만 한해 끝자락, 승진의 낭보는 우리를 기쁘게 했다. 앞으로 더욱 적선하시고, 내외 늘 푸르시길. 우의(友誼)를 담아서” 원체 성실한 사람이라 이미 임원이 됐지만 한 단계 승진을 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백수가 돼야 할 절박한 시점이었다. 임원이야 임시직원의 줄인 말이다. 퇴직금은 엄청 많다고 소문났지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정수는 299명으로 이들만이 대한민국 헌법기관으로 소위 ‘금배지’를 단다. 국회의원의 대명사가 된 금배지는 제헌국회시절 금광을 소유했던 한 의원이 순금으로 배지를 만들어 선물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후 관례화됐던 국회의원들의 금배지는 11대 국회부터 순금배지는 사라졌다. 다만 은에 도금을 한 6g정도의 배지가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지만 가격은 나사형이 1만9천500원, 옷핀형이 2만5천원에 지나지 않는다. 금배지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현재까지 무려 9번의 문양 교체가 있었지만 무궁화를 바탕으로 가운데 한자로 나라 ‘國(국)’ 자로 사용하는 원형은 유지돼 왔다. 5대와 8대 국회는 당시 사회분위기에 동승해 무궁화 바탕 위에 한글로 ‘국’ 자를 사용했으나 한글 ‘국’ 자를 거꾸로 하면 논다는 뜻의 ‘논’ 자로 보여 “국회의원이 놀고먹는 이미지를 풍긴다”며 디자인을 교체했다. 또 1991년 시작된 지방자치제에 의해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본떠 배지를 제작하자 국회의원들이 차별화에 나서 1993년 배지도안을 또 변경했다. 이후 국회의원은 무궁화 모양 바탕에 한자로 나라 ‘(國)국’ 자를 사용하고 지방의원들은 옳을
새해 들어 첫 조정을 끝내고 법원을 나서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법원에서 협의이혼 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 졌다. 본인의 의지보단 민원실 직원의 권유와 시간상의 이유로 받기 시작했던 상담제도가 제도의 보완을 통해 가사소송중인 사건에 있어서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최근 확대된 것이다. 상담의 내용도 1~2회의 단기 상담에서부터 7~8회의 상담까지 그동안 법원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이 진행돼 왔다. 국가의 법률관련 서비스가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법원의 상담위원과 조정위원 역할을 함께 하는 기회가 돼 배당된 사건의 원고와 피고에게 상담과 조정을 오가며 ‘새로운 삶을 위한 헤어짐 혹은 다시 시작’에 진심어린 참여를 해왔다. 상담을 통해서는 ‘내담자’로, 조정을 통해선 각각의 ‘이해당사자’로서, 법률적으로는 ‘원고와 피고’ 등의 용어로 만남의 내용이 규정되며, 함께 했던 분들의 변화를 지켜보게 됐다. 대부분의 원고와 피고는 상담이나 조정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으며, 처음 시작할 때 왜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심한 반감을 드러낸다. 법원에서 ‘빨리 판결을 내려주면 되는데 뭣하러 시간을
담합은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행위다. 공정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업자만 배 불리고 소비자는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궁극적으로는 물가상승 등 국가경제를 어렵게 한다. 삼성·LG 등 대기업의 담합행위가 적발돼 사회적 물의를 빚은 지 얼마되지 않아 이같은 사례가 또 발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6년 동안 농협중앙회와 엽연초(담배)생산협동조합중앙회의 비료구매입찰에서 담합을 벌인 남해화학 등 13개 화학비료 업체를 적발해 시정명령과 함께 828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업체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입찰에서 낙찰받을 회사와 입찰가격 등을 담합해 농협과 엽연초조합이 정한 낙찰 최고가의 99%에 맞춰 낙찰을 받았다. 낙찰 받은 회사는 미리 짠대로 다른 회사에 물량을 나눠줬다. 담합 업체들은 각자 생산규모에 맞게 확보한 물량을 높은 값에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 아닌가. 그러나 이는 농민이 저렴한 값에 비료를 공급받아 영농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가로챈 부도덕한 경제범죄다. 2010년 6월 담합 없이 실시된 경쟁입찰 결과 비료가격은 전년도보다 21% 1천22억원이 낮아졌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비
지난 15일 오후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한명숙(68) 후보가 선출됐다. 당원 12만명, 시민 65만명 등 77만명이라는 놀라운 참여율을 보인 이번 투표 결과 한 후보는 24.5%를 득표했다. 문성근(16.68%)·박영선(15.74%)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압도적인 표차다. 뿐만 아니라 대의원 투표는 물론 사전에 진행된 모바일 투표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해 조직 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도 확인시켰다. 그의 앞길에는 어려운 일들이 중첩돼 있지만 우선 축하한다. 그가 수락 연설서 한 말처럼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데 앞장서길 바란다. 한 신임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국민이 원하는 혁신과 변화를 할 것이며 어떤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강도 높은 쇄신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 지금 정치권을 개혁하지 않으면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돼 있다.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의 추락도 지금 가진 권세가 영원할 줄 알았던 수구세력의 오만함에서 비롯됐다. 그러니 국민을 무시하고 돈봉투나 돌리는 구시대의 행태를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의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