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이 세계 1위란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고 유명 연예인이 잇따라 자살을 한다. 남녀노소, 배우고 못 배우고를 막론하고 자살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심지어는 자살방지를 위해 앞장 서야 할 종교인들마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중 강연을 통해 행복과 희망을 심어 주던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 씨도 남편과 동반 자살하여 충격을 준바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지난 2009년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10만명당 28.4명으로, 2위 헝가리(19.6명)보다 절반가량 높고, OECD 평균(11.4명)에는 3배에 가깝다고 한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이슈 & 진단’은 우리나라 자살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자살은 우리나라 10대에서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이자, 40대와 50대 사망원인의 2위이다. 2008년 우리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77명으로 일본의 29명에 비해 2배가 넘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외환위기 시기부터 현격한 증가세를 보인 자살률이 경기 회복과 소득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자살의 원인을 삭막한 무한경쟁, 가족의 붕괴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국가 지원을 받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재단이다. 원래 음악을 위한 사회 행동으로 불렸다. 1975년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을 모아 오케스트라 활동을 시작한 것이 모태가 돼 현재는 190여개 센터 26만 명이 가입된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한다. 마약과 폭력, 총기 등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워 준다.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닉의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 등이 모두 엘 시스테마 출신이다. 엘 시스테마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미취학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악교육 시스템으로 정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일 학생 오케스트라 발대식을 갖고 한국판 엘 시스테마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6년 전부터 ‘한국판 엘시스테마’를 꿈꿔온 학교가 있다. 오산 운암중학교다. 운암중 오케스트라는 2005년 음악교사로 부임한 유해열(52)교사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유
그 녀석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발표를 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는 그 녀석을 보는 순간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강의실에 있던 30여명의 학생들중에서 고개를 숙이고 같이 눈물을 흘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녀석들의 눈물을 보면서 확신했다. 필자가 지난 주에 겪었던 강의실의 풍경이었다. 얼마전까지 수원화성박물관의 학예팀장이었던 필자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민주시민과 세계속의 교양시민을 만들기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하는데 같이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학교의 제안을 받아들여 박물관을 떠나게 되었다. 이전부터 경희대학교와 저소득층을 위한 실천인문학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인문학교육을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필자를 학교로 가게 만들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시민교육을 위해 필자는 전공인 역사를 기반으로 교재와 더불어 우리 역사속의 주체적 민중과 정의로움 그리고 미래의 통일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과 더불어 같이 토론하고 때로는 필자의 경험속의 이야기와 예견을 강의로 풀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사
“여보, ‘엣지’가 무슨 말 이예요?” TV를 보고 있던 아내가 묻는다. “아마, 예리하다는 뜻 일게요” 대답은 하였으나 나도 자신이 없다. 오늘 아침 신문기사 중, ‘그것은 잘못된 팩트(fact)입니다’라고 썼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써야 할까? 요즈음 신문과 방송에서 스펠을 몰라 사전 찾기도 애매한 외국어가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내가 시류(時流)에 뒤처지는지 모르겠으나, 과연 이런 말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느 나라나 그들만의 고유한 말이 있어 일상에서 자기 말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영향력이 대단한 언론이 무엇 때문에 우리말을 두고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을까? 그리고 외국어를 쓰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인사나 연예인의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도 문제라 하겠다. 외국어 남용은 우리말의 어휘 수를 점차 감소시켜, 미래에는 한국어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더욱이 문화사대주의의 팽배로 외국문화를 우월시하고 우리문화를 비하하는 결과까지
방통위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통신요금 인하안은 국민들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TF는 문자메시지 월 50건(건당 20원) 무료 제공, 청소년·노인 가입비 50% 인하, 선택형(모듈형) 요금제 도입, 블랙리스트 제도 추진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본료나 음성통화, 문자, 데이터 등 항목별 요금이나 가입비 인하방안은 담지 않고 있어 실제 이용자가 아닌 사업자의 논리에 기운 생색내기용 요금인하안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 하다. 약 1천원의 인하효과가 있다는 문자메시지 무료제공의 경우 문자를 거의 쓰지 않는 고객에겐 실익이 없다.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제조사 대리점이나 양판점 등에서 직접 사서 통신사업자 대리점에서 개통할 수 있게 하는 블랙리스트 제도 역시 단말기 가격이 높아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ㆍ노인 가입비 50% 인하 역시 현 가입자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신규 수요가 많은 학생 등 가입 예정자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수 없다. 참여연대는 25일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정부가 논의 중인 이동통신요금 인하 방안이 실효성이 없다며
가정의 달 5월도 벌써 끝자락이다. 5월은 참으로 나에겐 한없이 설레는 계절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어린이날에 불렀던 노래가사가 머릿속 턴테이블에서 아직도 재생되고 있다. 오월 중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애잔한 날은 ‘어버이날’이다. 아주 오래 전 돌아가셔서 ‘아버지, 어머니’ 하는 호칭이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이맘때만 되면 속으로 읊조리는 말이 있다. ‘엄마와 아버지’라고 음성적 신호를 보내면 관념 속에서는 ‘엄마와 아버지’의 빛바랜 낡은 사진이 현상된다. 그리고 고백한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가 아니라 ‘죄송함’. ‘미안함’이 내 가슴 속의 이상 혈류가 흘러 부정맥으로 요동친다. 하지만 5월은 내게 특별한 사건이 있는 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축구 시합을 하다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패한 것보다도 아픈 것은 무릎십자인대 파열이었다. 10여 년 전 5월 하순경이었다. 수술후유증이 보통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지체불구자가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인데,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재활기간엔 프랑
노숙자는 IMF의 암울하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급증했다. 그 전엔 일본이나 유럽의 노숙자를 TV나 신문을 통해 보면서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갈까?’하는 호기심을 갖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가 무너지면서 중소기업이 줄줄이 도산 하고 가정이 붕괴되면서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노숙자문제는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이다. 많이 줄었다지만 정부의 공식통계로 4천500명에 이르고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숙자들은 대개 역 대합실이나 공원, 고가도로 아래에 모여 있다. 종이컵에 안주도 없는 소주를 마시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공원에서는 밤늦게 운동을 나간 주민들이 술 취한 노숙자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돈을 구걸하다 거부당하면 욕설을 퍼붓는 노숙자도 있다. 노숙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노숙자들이지만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마련해 준 노숙자 쉼터를 거부한다. 노숙자 쉼터에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숙자들의 자유’를 위해 언제까지 역이나 공원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 산과 들을 적시는 날이면 내가 사는 상지골 골짜기에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모처럼 내린 단비 덕분에 산란처인 개울가로 이동하는 두꺼비며 개구리들과 벌레들이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다. 이 골짜기에 산 지 스무해가 되어 가는데 갈수록 이동하는 개구리며 벌레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이사 온지 첫 몇 해 동안은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 시체들을 치우느랴 신경 써야 할 정도였고 차를 몰고 가다가도 건너가는 녀석들을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골짜기를 다 벗어날 때까지 한 두마리 보이는 것이 고작이다. 개구리들이 차를 잘 피할 수 있게 됐다기보단 눈에 띄는 수준으로 감소한 탓일 것이 분명하다. 대기 오염과 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양서류가 이곳 상지골 뿐 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개구리 무리가 줄어들면 그들을 먹이로 삼는 생태계 상위동물들도 생존을 위협받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다. 십 수년 전에는 거의 매일 마주치던 뱀들이 일 년에 서너번 볼 수 있는 귀한 동물이 된 지 오래다. 집 앞 개울에서 흔하게 보였던 가재가 사라진 것과 더불어 시골 골짜기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음
노숙자는 IMF의 암울하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급증했다. 그 전엔 일본이나 유럽의 노숙자를 TV나 신문을 통해 보면서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갈까?’하는 호기심을 갖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가 무너지면서 중소기업이 줄줄이 도산 하고 가정이 붕괴되면서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노숙자문제는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이다. 많이 줄었다지만 정부의 공식통계로 4천500명에 이르고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숙자들은 대개 역 대합실이나 공원, 고가도로 아래에 모여 있다. 종이컵에 안주도 없는 소주를 마시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공원에서는 밤늦게 운동을 나간 주민들이 술 취한 노숙자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돈을 구걸하다 거부당하면 욕설을 퍼붓는 노숙자도 있다. 노숙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노숙자들이지만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마련해 준 노숙자 쉼터를 거부한다. 노숙자 쉼터에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숙자들의 자유’를 위해 언제까지 역이나 공원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 산과 들을 적시는 날이면 내가 사는 상지골 골짜기에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모처럼 내린 단비 덕분에 산란처인 개울가로 이동하는 두꺼비며 개구리들과 벌레들이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다. 이 골짜기에 산 지 스무해가 되어 가는데 갈수록 이동하는 개구리며 벌레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이사 온지 첫 몇 해 동안은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 시체들을 치우느랴 신경 써야 할 정도였고 차를 몰고 가다가도 건너가는 녀석들을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골짜기를 다 벗어날 때까지 한 두마리 보이는 것이 고작이다. 개구리들이 차를 잘 피할 수 있게 됐다기보단 눈에 띄는 수준으로 감소한 탓일 것이 분명하다. 대기 오염과 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양서류가 이곳 상지골 뿐 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개구리 무리가 줄어들면 그들을 먹이로 삼는 생태계 상위동물들도 생존을 위협받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다. 십 수년 전에는 거의 매일 마주치던 뱀들이 일 년에 서너번 볼 수 있는 귀한 동물이 된 지 오래다. 집 앞 개울에서 흔하게 보였던 가재가 사라진 것과 더불어 시골 골짜기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