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TV 예능프로에서 근대사 강연을 종종 시청한다. 유명 강사들은 우리 역사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강연함으로써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가 지나치게 예능화 되고 상업화 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 중 하나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화와 왜곡이다. 역사적 사건은 복잡한 맥락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TV에서는 그 맥락을 단선적으로 구성하거나, 인물의 행적을 극적 서사로 꾸미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개항기나 일제강점기의 사건들을 지나치게 ‘선과 악’으로 양분함으로써 역사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배경을 단순화시켜 버린다. 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역사를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한 예로 명성황후의 경우가 그러하다. 명성황후는 우리 근대사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 인물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검증도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강사 중에는 학문적 연구보다 대중적 인기에 부합하기 위해 재미위주로 강의를 진행한다. 따라서 사실관계의 오류나 과도한 해석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역사…
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거리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독감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권장하는 지자체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추위가 몰려오는 환절기에는 자연스럽게 아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주거복지 현장에서 접하는,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상황이 더욱 우려된다. 건설·봉제·요식업 등 분야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일을 쉬면 그만큼의 일당을 잃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일터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규모 있는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아플 경우 유급 병가를 통해 회복의 시간을 보장받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내건 구호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권고에 불과했다. 일을 쉬는 순간 곧바로 생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해서 일을 이어가다 병이 악화되고, 다시 일하지 못하며 빈곤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한국 사회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통령경호처가 작년 4월 공동 발주한 연구개발 과제, ‘지능형 유무인 복합 경비안전 기술개발사업’이 논란에 휩싸였다. 총 240억 원이 투입될 계획이었던 이 사업은 군중 속에서 위험 행동을 사전에 인식하고, 생체신호를 분석해 긴장도를 탐지함으로써 잠재적 위험 인물을 식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동형 카메라, 로봇, 드론 등 다양한 장비를 투입하여 원거리에서도 군중의 행태를 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즉, 과기부와 경호처는 군중 감시 인공지능을 개발하려 한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윤리 사전검토도 받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실제 적용 대상이 사실상 국민 전체이며, 수집 및 처리하게 될 데이터가 극히 민감한 생체정보에 해당함에도 어떠한 윤리 검토도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왜 이런 연구과제가 발주되었을까. 과제 공고문은 문제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존의 ‘차단·분리형’ 경호 방식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줄이고 ‘개방형 경비안전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군중 감시 인공지능
한 세대 전만 해도 많이 쓰였는데, 요즘 와서는 그 쓰임이 현저하게 줄어든 말로 ‘교양’이란 말을 들고 싶다. ‘애국심’, ‘효도’, ‘순종’, ‘인내’ 등과 같은 말도 그런 편에 드는 것 같다. ‘교양’을 비롯하여, 위에 나열한 말들이 품고 있는 어떤 가치가 요즘 사람들에게 크게 호소력을 발휘치 못하는 현상을 언어가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의 가치인 듯한데, 그런 가치도 이렇게 시대의 흐름(時流)이나 인심의 쏠림에 영향을 받는다. ‘교양’이란 말이 지닌 의미가 퇴색해 보이고, 올드(old)해 보인다면, 그건 교양의 쇠퇴를 암시한다. 교양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가갔지만, 어떤 매력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게다가 교양의 자리로 밀고 들어 온 다른 가치들의 기세가 참으로 드세다. 당장의 실용적 쓰임이 약하고, 돈벌이에 써먹기에는 거리가 먼 ‘교양’은, 힘센 기술 지식(knowledge of technology)의 도도한 진군에 밀려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의 교양 영역 커리큘럼에 이러한 기술 교양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양’이란 말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 있다. ‘교양’은 표준어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어서…
인공지능(AI)은 일상생활과 업무 전반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특히 유용한 콘텐츠 생산 도구로서 AI에 대한 활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져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많지만, 이용을 막을 수는 없다. 뉴스라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AI 활용이 주는 효율성은 이미 저널리즘을 변화시키고 있다. 뉴스콘텐츠 품질과 관련된 여러 우려와 함께 탐사보도·심층보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존전략은 상식이 됐다. 뉴스콘텐츠 생산 보조 도구로서 AI 활용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많다. 그럼에도 언론사와 AI기업의 갈등은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외 많은 언론사는 AI기업과 소송 중이다. 뉴스저작권과 공정이용을 둘러싸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뉴스콘텐츠 이용 계약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저명한 거대 언론사의 얘기다. 다른 많은 언론사는 해결 방안을 찾기가 난망하다.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AI 서비스에서 뉴스콘텐츠의 기여분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 7월 미국의 AI 기반 브랜드 마케팅 회사인 제너레이티브 펄스(Generative Pulse)는 ‘AI는 무엇을 읽고 있나?(What Is AI…
미국의 성씨는 대장장이 스미스, 제분업자 밀러처럼 가족의 역사와 뿌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세계를 관세 폭풍 속에 몰아넣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의 이름이 부상하기 전에는 트럼프란 하트, 다이아몬드, 클럽, 스페이드 4종류의 슈트와 조커가 끼어 있는 53장의 카드를 떠올리게 했던 말이다. 그래서인지 ‘트럼프(trump)’ 라는 말은 ‘으뜸패(를 내놓다)’, ‘이기다’라는 뜻도 있고, ‘누명’이나 ‘비방’이라는 비유적인 뜻도 있다. 부동산 사업자와 기업가로 명성을 날렸고, 45대 이후 47대까지 미국 대통령에 두 번이나 당선된 그는 ‘트럼프’ 가문의 사람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각국과 19~20% 수준으로 무역협상을 마무리 짓고, 태국과 캄보디아 간 평화협정문에 공동성명도 했다. 특히 말레이시아로부터는 핵심 광물과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거나 할당제를 두지 않기로 하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희토류 수출 통제를 예고했던 중국에 견제의 메시지를 던졌다. 다음 날 일본으로 간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방위비 증액과 관세협상 과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대학생 박모(22)씨 사망 사건은 해외에 나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비상등을 켰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사건·사고 발생 후 영사조력’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사후대응이 아닌 사전예방 중심의 국가 보호체계로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21세기는 말 그대로 대이주(great migration)의 시대다. 교통과 통신의 혁명적 발달로 사람과 자본, 정보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국경의 의미는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유엔 인구국과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자국 밖에서 사는 인구는 전 세계 80억 인구의 4%, 매년 해외로 나가는 국제 관광객은 17.5%에 달한다. 이제는 ‘어디서 태어났느냐’보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출국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지난해 2,80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8만 명이 국경을 넘나들고, 9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유학생·주재원·현지 취업자·영주권자·복수국적자 등도 300만 명에 육박한다. 체류 기간과 관계없이 이들 모두가 외부 위협에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패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신문 기사가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손편지가 붙었다. 그것은 갓난아기를 낳은 부부가 아이 울음소리에 불편을 겪을 이웃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편지글이었다. 예의를 갖춘 부부의 편지는 아름다웠고, 이웃들은 편지에 축하의 메시지를 가득 채웠다. 기사에는 이웃들이 남긴 메시지가 소개되었는데, 그중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구절을 만났다. 그것은 “우리 모두 울면서 자랐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짧고 단순하지만 뜨거운 문장이었다. 어딘가에 숨어있던 나의 울음이 곧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태어난다는 건 세상에 울음을 들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울음소리로 세상에 나를 알렸다. 나의 존재는 울음으로 시작되었으니, 울음의 기원은 탄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배가 고프면 울고, 외로우면 울고, 아프면 울었다.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세상에 닿는 방식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며 자랐다. 그 울음에 누군가는 달려왔고, 누군가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울음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울음은 생의 첫 언어이자 관계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 울음을 멈췄다. 울음을 참을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립니다.교도소에 수감된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싱어게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 의도는 이렇습니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 쉽게 말하자면, 무명 가수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경연 프로그램입니다. 시청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는데, 코로나 여파로 새로운 시즌이 최근에야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싱어게인 4’입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을 알리려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시즌에 출연한 이름 모를 가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니까요. 그녀의 이름은 ‘18호’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은 이름 대신 각자에게 주어진 번호로 불립니다. 우스갯소리로라도 오징어게임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징어게임에 참여한 사람처럼 게임에 졌다고 해서 목숨을 잃는 건 아니니까요. 다음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출연자는 번호에 가려졌던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프로그램을 하차하면 그만입니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 출연한 18호 가수는 1라운드를 통과했습니다. 모든 심사위원이 ‘AGAIN’ 버튼을 눌렀으니 근사한 출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연 프로
어느날 종아리의 통증으로 내원한 94세인 할아버님을 처음뵙고는 몹시 놀랐다. 왜냐하면 얼굴, 표정과 신체의 활력이 70살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활기찬 표정으로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치료를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치료를 하며 정말 궁금해져 물었다 “정말 20년은 젊어보이세요, 어르신.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 것 같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비결이라면 타고났겠지요. 하지만 난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것 오래 담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풀고. 남에게 베풀려고 해요”라고 말하였다. 그러고는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셨다. 93세에 무릎이 아파서 내원하신 할머님도 인상적이었다. 화사한 인상의 고운피부. 체육교사로 교직생활을 하여 운동을 좋아하였다는 그녀는 즐겁게 교직생활을 마쳤다. 그녀는 소화기가 약했기에 항상 음식을 한식위주로 소식하였다. 어렸을 때 병약해서 침도 자주맞고 약도 자주먹었는데 평생 경옥고를 먹으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꾸준히 먹는다는 말을 하였다. 경옥고는 소화흡수가 잘되는 성장, 갱년기 장애, 병후회복 등에 적용하는 고약형태의 한약이다. 할머님은 치료를 마칠 즈음 뜨개질로 직접 덧버선을 만들어주시기까지 하였다. 이런 분들을 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