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제정세의 변화를 실감하는 일들이 잦다. 지난 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30여 개 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망루 중앙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사열을 받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냉전 당시의 북·중·러 동맹을 연상하게 했다. 4일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수사당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차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하여 우리 국민 3백여 명 등 475명의 노동자를 체포했다. 합법 비자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만, 쇠사슬을 채우는 등 비인도적 연행 장면이 공개되고 자국의 필요에 따른 공장 건설임에도 전문 인력에 대한 적법한 입국비자 발급이 극히 어려웠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대내외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모두가 알듯, 외면적 정세 변화는 내면의 큰 변화를 대변한다. 전승절 행사는 그 직전인 8월 31일~9월 1일에 중국 텐진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의 결과와 함께 보아야 한다. 2001년 중·러와 중앙아시아 4개국 간 대화체로 출범한 이 기구는 이제 인도·이란 등 10개 회원국,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
9월4일, 조지아주 현대차, LG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헬기가 뜨고 장갑차가 포위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토끼몰이식 노동자 사냥이었다. 공장을 짓고 있던 475명의 한국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해 쇠사슬로 굴비 엮듯이 묶어 끌고 갔다. 테러분자들도 아니었고 마약밀매범들도 아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든다며 지들이 공장 지으라고 닥달해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에 보낸 동맹국 기업의 엔지니어들이었다. 이게 다 트럼프의 계획된 쇼였다. 트럼프는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불법체류자들을 쓰지말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뻔뻔스럽게 눙치고 있다. 노림수는 뻔하다. 관세협상과 투자협정을 미국이 원하는대로 도장 찍으라는 협박이다. 일본은 자동차 15%관세를 위해 진작에 도장찍고 항복했다. 투자금 5500억 달러는 일본이 내고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 이건 투자가 아니고 약탈이다. 미국의 약탈은 범세계적이다. 일본에 이어 유럽 7500억 달러를,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인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퍼붓기로 했단다. 대만도 4000억 달러 플러스 알파 운운하고 있다. 각 나라의 알짜배기 공장이란 공장은 죄다 미국으로
윤석열 내란에 대한 단죄가 늦어지고 있다. 무한 권력을 노렸던 쿠데타 시도가 아직도 법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란 수괴는 여전히 옥중에서 추악한 항거(?)를 하고 있고 그의 추종 세력은 야당을 장악해 오히려 내란은 여당이 동조했다는 억지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암적 세력의 조직적 저항 때문이지만 정의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사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법부는 헌법을 “공정”이라는 원칙으로 사회의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부여받은 권력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부는 모두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국회에서 특검이 발의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연일 쏟아지는 특검의 새로운 소식에 새삼 민주주의를 지킨 국민 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연이은 법원의 상식 밖 판결로 그들은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 윤석열을 어이없는 핑계로 석방해 준 지귀연 판사가 내란 재판을 주도한다는 것부터, 침대 재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세월 하는 재판 과정을 보면서 그 결과가 예견된다면 무리일까. 내란의 최고 협력자였던 한덕수 전 총리의 체포영장을 기각시키니 앞으로 있을 관련 장관들의 영장 청구도 불 보듯 뻔할 것이고
# 지난 6월 9일 경향신문은 오광수 민정수석이 차명으로 부동산 관리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발표 하루만이었다. 이 보도로 오 수석은 임명된지 5일만에 낙마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 보도를 ‘이달의 기자상’에 선정했다. 기자협회는 선정 이유로 “이 보도는 단순 의혹 제기를 넘어 실제 낙마로 이어진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제보 없이 발로 뛴 정공법 보도로, 정권 초 언론의 감시 기능이 실질적 결과로 이어진 사례”라고 밝혔다. # JTBC는 9월 2일 ‘오광수 전 수석이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초호화 변호인단에 합류했다’고 통일교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던 김오수 변호사와 이재명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 강찬우 변호사도 자문 변호사로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강 변호사는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재판의 변호를 맡았다. 보도가 나간 후 오광수, 김오수 변호사는 한 총재 변호인단서 사임했다. 제보를 받아 취재한 기사였지만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끌어냈다. 언론보도의 정수를 보였다. # ‘코스피 상승률, 세계 1위서 한 달 새 22위로 떨어져’. 조선일보의 8월 14일 B5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보도는 미국·일
비영리단체인 ‘행복여정문학’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탈북민들이 2021년 만들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문학으로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과 매력 있는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문학 활동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행복여정문학’에서 주최한 제8회 시화전이 9월 8일부터 26일까지 용인시청 1층에 전시된다. 제8회 시화전에 표현된 추석의 의미는 고향, 그리움 이별, 아픔 그리고 추억이다. 고향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곳이다. 살았던 곳에 대한 추억이 애틋하기도 하지만 아프기도 하다. 그리고 떠나온 미안한 마음이다. 김혜성 시인은 고향으로 달리는 차들이 밉고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서 추석이 두렵고 싫다. 만약 고향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맨발에 감발하고 가겠다고 김명화 시인은 쓰고 있다. 웃음소리 같기도 눈물 소리 같은 그리운 고향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고향 목소리를 감각하는 차명희 시인의 글은 너무 가까워 더 멀어 보이는 고향이라는 기억의 공간을 지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차명희 시인의 ‘생존’은 짧은 글에 발칙한 상상과 공감을 담아낸다. 김미옥 시인은 고향을 ‘봄이면 백살구 하얀 꽃 피고 무정세
‘글로벌 수무드 함대(Global Sumud Flotilla).’ 국제 해상사업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이다. 이 단체는 글로벌 팔레스타인 귀환캠페인, 자유함대연합, 마그레브 수무드 호송대, 그리고 동남아시아 누산타라 수무드 이니셔티브, 이 네 개의 연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수십 척의 소형 민간선박에 인도적 지원 물품을 싣고 팔레스타인을 향해 항해 중이다. 이스라엘의 불법 봉쇄를 뚫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다. 함대이름 수무드(ṣumūd)는 아랍어로 ‘인내, 확고부동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식민지화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정신을 상징한다. 인내의 표상인 수무드 함대는 과연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을까? 50여 척의 배로 구성된 글로벌 수무드 함대는 지난달 31일 카탈루냐 항구에서 일부가 출발했고, 이번 달 4일 시칠리아, 튀니지, 그리스의 항구에서 또 다른 일부가 출발했다. 여기에는 44개국 출신의 독립활동가, 구호활동가, 시민사회 지도자들 수백 명이 타고 있다. 그 중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미국 여배우 수잔 서랜던, 평화 운동가 겸 배우 리암 커닝햄과 같은 유명인과 수많은 무명의 국제 시민이 함께 타고 있다. 글로벌 수무
2026년 3월, 대한민국 전국에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 시행된다. 이는 의료-요양-사회서비스가 분절되었던 기존 돌봄 체계를 벗어나,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 돌봄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이 중대한 전환기를 맞아, 사회적 가치를 핵심으로 삼는 한국의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이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한 돌봄 생태계를 주도할 가장 유력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돌봄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통합과 혁신의 시대에서 '돌봄통합지원법'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의료, 요양, 주거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받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기존의 시설 중심, 파편화된 돌봄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의 질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 돌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민간 영역, 특히 사회연대경제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다. 사회연대경제 기업은 본래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설립된 경제 주체로 이들은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돌봄의 질적 가치와 서비스 이용자의 존엄성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돌봄 통합지원의 핵심 가치
중국 은(殷)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妲己)는 고대 중국의 절세요부(絶世妖婦)다. 미색과 방중술을 무기 삼아 권력을 잡았다. 3000여년 전,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이 젊은 후궁과 죽이 제대로 맞았다. 그들은 '인류사에 정치의 악마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타고난 것처럼 잔혹한 폭정의 메뉴들을 창안하고 실행하였다. 중구난방의 세상을 단숨에 침묵시켰다. 바른 말 하는 충신들은 벌겋게 달궈진 구리판 위에 살갗을 벗긴 채 눕혀 태워죽였다. 숨이 끊어 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 고통지수를 100배 높여놓고 그 광경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다. 소위 포락지형(炮烙之刑)이다.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 여자를 씹은 게 들통나면 혀를 잘랐다. 배부른 여인의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맞추는 놀이도 즐겼다. 당연히 잉부(孕婦)의 배를 갈랐다. 요즘의 식자들도 종종 쓰는 주지육림(酒池肉林)도 달기의 창작이었다.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그 안에 곡주를 가득 채운 다음, 남녀 구분 없이 밀어 넣었다. 못 옆 숲의 나무에 고기들을 매달아 놓고, 입으로 따먹는 게 규칙이었다. 어기면 손목을 잘랐다. 저항하면 목을 베어 술통에 넣었다. 국운이 다할 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사실 책 읽기 좋은 때가 가을만은 아닐 것이다. 여름밤의 땀 냄새 속에서도, 겨울의 긴 어둠 속에서도, 책은 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가을에 독서를 연결 짓는 까닭은 계절이 주는 상징과 생활의 리듬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뜨겁고 분주한 여름이 지나고 땅이 결실을 내어놓은 시기.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면을 향해 시선을 자연스레 돌리게 된다. 일 년 동안 정성스레 기른 작물을 수확하듯이 우리는 책 읽기를 가을과 연결해 온 것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전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거쳐 여전히 살아남은 목소리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문제의식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 자유와 억압, 욕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한다. 현대의 고민이 전혀 새롭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고전은 낡은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대화 상대가 된다. 또한 번역된 외국 고전을 읽는 일은 우리를 넓은 세계와 연결한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고하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괴력을 발휘할 것만 같았던 폭염의 여름을 한발 물러나게 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는 꽃보다 눈부신 황금물결의 억새밭이다. 억새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그 삶의 모습이 역경을 헤치고 살아낸 우리나라 민중과 많이 닮아있다. 억새는 위태로운 대롱 끝에 매달려 바람따라 나부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보이지만 이는 힘과 크기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강함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억새의 강인함은 오히려 바람부는 대로 휘날리며 꺾이는 척하다가 휘어지고, 휘어지는 척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유연함에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생존기술이다. 억새는 어쩌다 바람에 못이겨 허리가 꺾인다해도 금방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다른 억새들에 기대어 마지막까지 공존한다. 이렇듯 억새는, 개별의 힘은 약하지만 서로 협력하여 삶을 이어가는 상호의존성이 바로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억새는 결국 강함이란 고립된 개체의 속성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존재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역설해준다. 억새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