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푸틴이 전쟁을 결정하자말자 우크라이나 전역이 미사일공격으로 불타올랐고 러시아의 기갑부대는 국경을 돌파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마저 게임이나 영화처럼 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뉴스는 폭발하는 화염과 번쩍이는 섬광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바쁘다. 전황은 그래픽까지 동원해 스포츠방송처럼 중계된다. 그러나 현실의 전쟁은 지하철에 피신한채 두려움에 떨고있는 시민들과 거리를 가득메운 피난차량 행렬에서 보이듯이 참혹한 실사판 지옥이다. 나는 이런 우크라이나전쟁 뉴스를 보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 또 다른 사람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보다 젤렌스키를 떠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또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침공을 결정한 푸틴과 러시아가 비난받음은 지당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한사코 반대하던 나토의 동진에 우크라이나가 디딤돌을 놓아주려할 때, 자국의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푸틴에 반해 코메디언 출신 젤렌스키의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
인류가 진보하는 것은 바로 종교적 신앙이 진보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진보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적 진리를 발견하거나, 인간의 세계와 신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탐구하는(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해와 결부된 모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이다. 새로운 종교적 진리라는 것은 없다. 유사 이래 모든 현자의 세계 및 신에 대한 관계는, 오늘날의 것과 완전히 같다. 종교가 진보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미 발견되고 표현된 것을 정화하는 데 있다. 신앙이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선각자들에 의해 도달된, 인생에 대한 가장 높은 이해의 지표이며, 그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도 언젠가 틀림없이 불가항력으로 그것에 접근해가게 된다. 진정한 진보, 즉 종교적 진보와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진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업적은 현대에서 볼 수 있듯 종교적 퇴보 속에서도 매우 위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온갖 미신과의 싸움과 종교적 의식의 해명,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진보의 투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권력의…
‘맹지’란 지적도상 도로와 접하고 있지 않은 땅을 말한다. 개발 가치가 작아서 매우 저렴하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육로가 막힌 맹지이다. 다행히 3면이 바다인 덕분에 해상교통로는 뚫려 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이 해상교통로를 활용하여 외부 세계와 교류함으로써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이 땅의 가치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 안에 들어갈 정도로 커졌다. 언젠가부터 한반도가 중심이 된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는 것이 유행이다. 넓은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시각적 이미지는 북쪽으로 막혀있는 지리적 답답함에서 벗어나 웅비의 나래를 펴는 즐거움을 준다. 요즈음 거꾸로 지도를 다시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불안하다. 오른편은 중국에 막혀있다. 위와 왼편은 일본 열도에 막혀있다. 시원하게 뚫린 넓은 바다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꽉 막힌 ‘맹해’만 보이는가.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을 풀지 않고 있고, 일본과는 과거사 재판 문제로 외교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현 정부의 외교가 너무 저자세라고 비판한다. 일본과의 문제는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마지막 추위가 매섭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페티카, 그는 함경도에서 태어난 노비의 아들이었다. 아홉 살 나던 해 가족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한 그는 러시아 초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고려인이었다. 온 가족이 나무를 캐내고 돌을 주워내며 밭을 일구었지만, 세끼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그가 가출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연해주 최남단의 항구도시 포시에트로 갔다. 하지만 어린 그를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굶주린 채 지쳐 쓰러진 그를 구해준 사람은 러시아인 선장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페티카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선장을 따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흐름과 물정을 익혔다. 표트르 세묘뇨비치의 부인은 배에서 내린 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주었다. 러시아 정교회에 입교한 그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부부의 양자가 되어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에 귀화한 그의 정식 이름은 초이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19세기 말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 중에 최초로, 유일하게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사업가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내에게서 회식이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딸은 야간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무얼 살까, 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고사리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샀습니다. 까만 비닐봉지에 세 가지 나물을 담고 9000원을 계산하는 순간에도 저녁메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추장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태양초 고추장(1.8kg)과 다담 된장찌개양념(530g), 마파두부 양념소스(130g)와 꽁치통조림을 계산대에 올리고 2만 6660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막혔습니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와 사람이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내가 선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은 멈춤입니다. 맞은편 신호등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나부낄 때마다 얼굴 앞에 새겨진 숫자가 비상등처럼 가쁘게 펄럭입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보행자 신호등 밑에 숫자가 깜빡거립니다.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때문일까요.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 같습니다. D-15, D-14
투박한 남프랑스 사투리에 겁 많고 소심했던 폴 세잔(Paul Cézanne). 놀랍게도 큐비즘(입체파)의 거장이자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됐다. 이런 세잔의 그림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은 예쁜 사과였다. 왜 그랬을까. 세잔에게 사과는 우정과 아량, 인간애의 징표였다. '사과바구니'와 '7개 사과의 정물'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세잔의 사과가 이처럼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중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부르봉(Bourbon) 중학교. “파리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 학생은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본 한 학생이 그 전학생을 도와줬다. 그 전학생은 어느 날 사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바구니를 선물 받은 학생은 그 후로 계속 사과가 있는 정물만 그렸다.” 사과를 준 학생은 훗날 프랑스 대문호가 된 에밀 졸라(Emile Zola)이고 사과를 받은 학생은 세잔이다. 이 둘이 주고받은 학창시절의 우정. 이 추억이 세잔 그림의 주요 모티브였다. 세잔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생트-빅트아르(Sainte-Victoire) 산이다. 이 산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대장주다. 하늘까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여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노동만큼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사람은 노동하지 않고는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다.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겉치장에 그토록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꾸미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경멸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땀 흘려 일하며 자신이 먹을 빵을 제 손으로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진정한 종교적 이해와 순수한 도덕성이 존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존 러스킨) 지극히 확실하고 순수한 기쁨의 하나는 노동 뒤의 휴식이다. (칸트) 가장 탁월한 재능도 무위도식하면 사장된다. (몽테뉴) 공정함이란 자신이 남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남에게서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과 자신이 이용하는 남의 노동을 저울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스스로 일할 능력을 잃고 남의 노동력을 가로채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되도록 공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평소에 자기가 취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남에게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 대중하지만 대중은 고상한 이상에 통일되지 않는 한 우중(愚衆)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샤갈전을 보고 왔다. 샤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색체의 마술사’라 불리는 그의 그림 속 화려한 색들이 아프다고 말한다. 1, 2차 대전을 살아낸 유태인의 삶, 부인과의 사별, 병마 등 어두웠던 삶은 꿈과 환상 속으로도 피하게 만들었고 이를 화폭에서 살아나게 했다. 전시회 벽에 쓰인 ‘나는 초현실주의자라는 말이 싫다. 나는 나의 현실만을 그린 것이다’라는 샤갈의 말 역시 그래서 아프다. 샤갈의 말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eda Kahlo/1907-1954)를 떠오르게 했다. 샤갈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녀 역시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고통도 무게 잴 수 있다면 샤갈은 프리다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 흘린 피를 찍어 그림을 그렸다고 할 정도로 고통의 극지를 오체투지 했던 프리다.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는 말도 배우기 전 어머니를 잃었고 6살에는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다리를 절었다. 10대 때 대형 버스 사고로 중상( 강철봉이 여린 배를 뚫고 관통하고 다리, 골반, 쇄골 등이 부러지는 등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을 입어 30회 넘게 수술했지만 장애와 불임의 몸이 된다. 20살에 21살 많은 남자,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으
1. 박막례 할머니(80세, 가명) 오랜만에 진료실 문을 밀고 들어오시는 박막례 할머니 얼굴이 많이 부었다. 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장복했을 때 나타나는 문 페이즈, 쿠싱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떨어진 아들네 집에 계시면서 너무 아파서 주사 몇 번 맞으셨단다. 그 주사 또 맞으면 콩팥 다 망가진다고, 침으로 살살 달래보자고 말씀드리고 치료실에 뉘어 드렸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도박 중독이었다. 돈 내놓으란 말에 새끼들하고 먹고 살 것도 없다고 하면 무섭게 때렸다. 얼굴 맞으면 표시나니까 죽자고 얼굴만 가렸다고 한다. 그러면 몽둥이로 등을 치고 배를 쑤시고 온몸을 깨털 듯이 두들겨 팼다며, 징하디 징한 결혼 생활을 회고했다. 생활비를 벌어올 턱이 있나. 다 팔아먹어 땅뙈기 하나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고, 공장에 가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치매기 있는 시어미를 찾으러 천지사방을 헤매고, 그런 와중에 다섯 남매를 거둬 학교를 보냈다. 본인이 못 배운 한을 풀기라도 하듯 아들도 딸도 모두 지성으로 가르쳤다. 그 덕에 오 남매는 모두 잘 자라 다들 제 몫을 하며 산다. 그런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
중국의 소설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이 소설은 판금조치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될 수 없다. 한국의 장철수 감독이 영화화한 배경에는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은 서사가 굵직하고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이 극적이어서 영화문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 인민군 사단장 관사 취사병인 우이왕은 사단장 부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민을 위한 복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사단장이 장기 출장을 떠난 사이 그의 젊은 부인 류롄에게 유혹을 받는다. 우다왕이 거듭 뿌리치자 류롄은 "인민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겠다는 거지?" 물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하고 재촉한다. 그는 끝내 무너져 내리고 그녀에게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모택동의 유명한 연설 제목으로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언어다. 그런데 소설은 이 성(聖)스러운 언어를 성(性)스러운 언어로 끌어내린다. 변질되고 타락한 혁명을 극명한 대비를 통해 드러낸 것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인간해방을 내건 공산당 체제도 억압과 부패로 찌들어 있다는 서사적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