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의 만찬 /한경용 맞벌이 부모 대신 먼저 끓여 먹곤 한잠 푹 빠진 새끼들의 꼬부라진 잠자리 꼬까 장난감처럼 씻어놓은 냄비에는 꼬인 면발이 통통 -한경용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 한국문연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철이 일찍 드나 보다. 부모가 당장 곁에 없으니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겠지. 부모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고. 퇴근 후 종종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섰을 때, 기다림에 지쳐 꼬부라져 잠들어 있는 아이들, 텔레비전은 저 혼자 웅웅거리고, 거실의 전등불은 대낮처럼 훤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라면이라도 끓여서 먹었다면,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거지라도 해놓았다면, 스스로 장난감을 씻듯 제 딴엔 열심히 씻어 놓은 냄비에 씻기지 않은 면발이 붙어있다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 절로 눈물이 핑 도는, 아프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미산 시인
‘주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오늘 새벽 우리 마을 서00씨 모친이 별세하셨습니다. 발인은 농협장례식장에서 0월0일 0시입니다. 윙윙거리는 스피커 소리에 이장의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 마을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사흘이 멀다고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우리 군(郡)의 노인 비율이 20%를 조금 넘었다지만 우리 마을 같은 시골에는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마을길에 아이는 물론 젊은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다. 뉴스는 낮은 출산율로 2750년이면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마을 노인들 중에는 혼자 살고 계시는 분들도 많다. 마을 입구 길가 집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볕을 쪼이며 혼자 사시던 할아버지가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았다. 이웃 이야기로는, 몸 가누기가 힘드신 분이 어쩌다 다치게 되어 일주일동안 꼼짝없이 앍다 그대로 돌아가셨다 한다. 자식들이 여럿 있지만 그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홀몸노인들이 다섯 중 한명 꼴이라 한다. 읍내 길에서 허리가 꺾어져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싣고 간신히 밀고 가는 광경을 때때로 목격하며 우울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시청률이 30%를 넘어서고 있다는 연속극을 봐도 별로 신통하지 않아 소파에 가장 편한 자세로 기댄 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티브이 전원을 끄면 피곤한 심신이 좀 더 나아질까? 결국 다시 뉴스로 돌아오고 만다. 여당, 야당이 세월호로 다툴 때 추기경께서 세월호 유가족도 조금은 양보해야한다는 말씀에 수많은 비난의 글들이 매달렸다. 추기경께서 오죽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다. 그러나 사회적 공인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이 뭔가를 언급할 때는 지극히 조심해야만 한다. 이것은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그렇다. 개인의 발언과 공인으로서의 발언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있으나 가끔 개인명의라고 하면서 말하지만 사실은 공공의 발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거꾸로 공인으로서 언급하고는 불리해지면 개인발언이라고 둘러대는 사람들도 있다. 책임을 묻기에는 애매한 경계가 분명히 있다. 단체든 개인이든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순박하거나 순진한 사람은 계산 없이 말하다가 그 말로 인해 인신까지 공격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헌법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지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항
옛사람들은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려하고 특징 있는 경관들을 여덟 가지 경치로 구분하여 산수시(山水詩)란 형태로 즐겨 표현했다. 그리고 이를 팔경시(八景詩)라 이름 붙였다. 주로 특정한 읍성를 중심에 두고 특징적인 장소나 의미있는 곳 등을 택하여 노래한 이 팔경시는 고려때 부터 조선조에 이르기 까지 약 4천여수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건국의 주역 정도전(鄭道傳)의 신도팔경(新都八景)도 그중의 하나다. 지금의 서울지역중 빼어난 풍광과 문물을 노래한 것으로 정도전은 이 신도팔경을 당시 좌의정인 조준과 우의정 김사형에게도 각각 한 폭씩을 주기도 했다. 팔경(八景)은 수려하고 특징 있는 경관을 명료하게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현방식인 인 만큼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단양팔경과 같이 경승 여덟 곳으로써 그 일대의 광활한 경관 모두 정리해 보인 대표적인 팔경이 있는가 하면, 무수히 많은 정자에서 그 주변의 풍광을 여덟 수의 사언절귀 또는 차운시로 읊는 방식의 일명 정자팔경도 있다. 강원도 관동팔경이 대표적이다. 또 특정한 읍성를 두고 특징적인 장소나 대상 그리고 의미 있는 곳 등 여덟 곳을 택하여 노래한 팔경도 있다. 수원팔경은 화성 축성과 연계되어 지어진 대표
우리가 흔히 하는 농담 중에 장사꾼이 손님에게 "손해보고 판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은 어떤 장사꾼도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팔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의미로 노처녀가 ‘시집안간다’는 말도있고 노인이 ‘빨리 죽어야 할텐데’ 하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있다. 모두가 본심과는 상관없는 속내를 드러낼 때 쓰는 농담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릴 때 배운 양치기 소년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자주 할수록 습관이되어 어느 순간엔 자신이 거짓말 하는 사실조차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런 거짓말과 관련해 예전에 흥미로운 사실을 들은 기억이 난다. 지인인 심리학 교수와의 대화중 우연히 들은 이야기다.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성인인 경우 말하는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린이의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고 한다. 거짓말은 이런 점에서 무의식적인 거짓말'과 '의식적인 거짓말'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智者란 곧 지혜로운 사람이다. 다시말해 판단을 그르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달콤한 제의가 들어오면 곧잘 덤벼들면서 말려들고, 결국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할 때는 손실도 고려해야 한다. 어짜피 인간 사회는 이해관계다. 이익을 얻은 이가 있으면 손해보는 이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兩面思考(양면사고)가 존재하게 된다. 孔子는 ‘공교하면서 법도까지 좋아하면 반드시 공교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고(巧而好度必工) 용기가 있으면서 동화를 좋아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며(勇而好同必勝) 지식이 있으면서 도모하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성공을 거둘 수 있다(知而好謀必成)’.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이와 반대이니, 무릇 중요한 자리에 처하면 총애를 독차지 하려들고, 어떤 일을 專任(전임)하면 어진 이를 질투한다. 이것이 곧 어리석은 자의 성정이다. 뜻을 얻었다고 교만하게 굴고 옛 원한을 가벼이 여기면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반드시 위험하게 되고, 임무가 중하면 이기지 못하여 무너지져 욕을 당하게 된다. 지혜에 해독을 끼치는 것으로 술보다 더한 것이 없다.지혜로운 자에게로 가서 지혜로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 가를
무더운 여름을 뒤로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끔씩 느낄 수 있는 이즈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복감이 간혹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내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다가 문득 “어?”하고 놀라며 “이거 큰병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가끔씩 하게 된다. 이에 흉부외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다가 가끔씩 보게 되는 병 아닌 병에 대하여 몇 가지 정리를 해보려 한다. ▲티체병(Tietze's disease) 빗장뼈로 더 잘 알려진 쇄골의 끝부분(어깨쪽이 아닌 목 쪽 끝)이 붓고 아픈 현상이다. 본인도 모르게 진행하여 어느 날 문득 발견하고는 왼쪽이나 오른쪽이 다른 쪽보다 부어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당연히 불편감이 있고, 욱신거리고, 어떤 분들은 자꾸 뼈가 자란다고 느끼기도 한다. 압통이 있을 수 있으나, 다른 화농성 관절염이나 연부조직염과 달리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뼈가 많이 부은 듯 한쪽이 커 보이지만 초음파 혹은 CT 촬영을 해보면 부은 두께가 1-2㎜ 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은 정도가 미미하다. 다른 종양성 질환이나 연부 조직 감염증, 외상 등이 아니라면 이런 경우가 바로 티체병이다. 티체병은 남녀 공히
녹(綠) /정재학 이십년 넘은 아파트에서 녹물이 나온다. 녹물로 밥을 지어먹고 녹차를 끓여먹고 양치를 했다. 녹물을 많이 마시면 우울해진다. 종일 무기력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눈물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었다. 머리가 녹슬고 가슴이 녹슬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녹슬었다. 노란색을 보면 우울해진다. 노란 나비가 나에게 침을 뱉는다. 노란 꽃도 싫어지고 은행나무 잎도 싫어졌지만 난 노란 살덩이가 되어 누런 오줌을 싸고 있었다. -정재학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에서 오래된 아파트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쏟아진다. 녹물이 눈에 보일 때까지는 그 동안 서서히 마신 녹물이야 오죽하랴. 녹은 산화작용으로 인해 쇠붙이 표면에 생기는 물질이다. 대부분 붉거나 검거나 푸르지만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발견하는 녹물은 누렇다. 누런 녹물을 마시다보니 노란 것들에게까지 거리낌이 생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몸조차 이미 누렇게 녹물이 들었으니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겠다. 녹슨 수돗물은 타성에 젖었던 지난 시간으로까지 확대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늘 갈고 닦고 갈아야만 제 빛을 낼 수 있는 것인데, 게으름 탓일까. 제 빛을 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자조적인 심정도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