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소환해본다, 퐁당퐁당 당직- 2일에 1번 당직을 이렇게 말했었다.-으로 집은 잠시 들르는 곳일 뿐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 꼬꼬마 한의사 인턴 시절의 한 장면이다. 그날도 당직이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간호사실에서 호출하는 삐삐가 울렸다. 전화를 해보니 뇌경색이 발생해서 입원한 70대의 여성 환자분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해서 호출을 하였다한다. 피곤한데 잠이 들지 않아 야간에 간호사실에 잠 좀 자게 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한 모양이었다. 늦은 밤 조용한 병실에서 그녀는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었지만 뇌경색으로 인해서 팔다리 근력이 저하되고 경직되는 편마비가 되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많이 의기소침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잠을 잘 못 자서 기분은 더 좋지 않았고 힘들다는 그녀의 말은 ‘이런 모습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어조로 마무리되었다. 의욕 가득했던 나는 그 한밤에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았던 듯하다. 그러다 문득 학교 다닐 때 배운 기공요법에서의 호흡과 함께 그녀가 긍정적인 것으로 주의를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다행히 어린 시절에…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레위기 24:19~20).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태복음 5:38~39). 레위기는 구약이고 마태복음은 신약이다. 두 가르침은 정반대이다. 당신은 어느 가르침에 따르려는가? 예수의 가르침은 기존의 율법을 뒤엎는 혁신적이다. 종교적이고 고결하다. 하지만 개인의 종교적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단체 간, 국가 간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레위기의 율법은 공정·공평하다. 그런 점에서 개인 간, 단체 간, 국가 간의 갈등·대립을 완화 또는 해소하는 규율로서 적절한 것 같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성 징벌원칙의 이면에 또 다른 중요한 규율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받은 만큼만 돌려줄 뿐 그 이상의 복수를 금지한다는 점이다. 과잉 복수를 금지한다. 보통 사람은 공격당하면 화를 낸다.
어느 시민은 필자다. 개인적으론 무심하게 치른 선거였지만 그렇다고 바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번이 정치구조와 의식의 개혁이 일어날 적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후보가 민주당 내 기득권 세력이 아니고 후보가 되기까지 민주당 주류의 지지 없이 본인의 경쟁력만으로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켰다. 민주당 주류세력과 큰 연이 없어 차제에 민주당의 구태가 개혁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아 태어났고 국민들은 총선에서도 힘을 실어주었다. 그럼에도 부동산, 조국 사태 등을 보면 소통능력 부재가 심각해 보였다. 민주당 주도세력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보였다. 문빠 등 비합리적 지지세력이 여론을 호도하는 게 안타까웠고, 기득권자가 돼버린 586 운동권 세력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보였다. 인사를 보면 합리적 중도세력의 포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중도보수 내지 좌 지향적 보수이다. 정의당이 진보다.국민의힘은 우편향 보수세력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몰표가 특정지역은 진보고 특정지역은 보수라고 말할 수 있나? 그냥 당의 뿌리와
한동안 마주하지도 못한 채 이취임식을 치러야 할 것 같은 대통령과 당선자가 대선 19일 만에 만났다. 청와대 여민관 앞까지 마중나와 윤석열 당선자를 안내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안쓰러웠다. 집을 넘겨주려 하는데 새로 들어올 사람은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판이니 짧은 안내조차 얼마나 공허한 몸짓이란 말인가? 국민과 소통을 위해 국방부 요새로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희대의 권력교체기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토닥였다. “놀라지 말아라. 앞으로 기상천외한 일이 잦을 것이니..”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언론들이 기득권동맹의 한 축이 되어 검찰쿠데타를 응원하더라도 살아있는 권력을 탄핵하고 촛불혁명을 완수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지성은 결국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선거운동기간 동안 웬만한 후보라면 집중포화를 맞았을 최저임금 폐지발언, 주120시간 발언, 선제타격론 등 핵폭탄급 실언들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막연한 정권교체 바람도 수그러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담금질해야 했다. 때로 세상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음을.. 3월 10일 새벽, 검찰쿠데타의 완성을
언론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이 있다. 퓰리처상이다. 매년 4월이면 15개 분야에 걸쳐 수상작을 발표한다. 금년이 106회 째다. 수상자는 전세계 언론인의 부러움을 산다. 그가 일하는 언론사는 덩달아 권위를 얻는다. 수상 기사는 저널리즘을 지키는 희망의 빛이 된다. 그 상을 있게한 퓰리처가 한 명언이 있다. “민주주의와 언론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무너진다”. 20대 대선보도는 숱한 비판을 받았다. 여론조사에서 정파적 보도까지 곳곳에서 경보등이 켜졌다. 선거 이후 보도들도 우려를 자아낸다. 검찰총장 등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표를 종용하는 정치인의 발언을 받아쓰고, 의도된 보도자료를 베껴쓰는 관행은 한치의 개선도 없다. 마치 새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재촉하는 듯한 추임새 보도를 거침 없이 해대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윤핵관의 맏형 격인 권성동 의원이 MBC라디오에 출연, “김오수 검찰총장은 스스로 거취결정하라”라고 했다. 물러나라는 소리였다. 같은 날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중앙일보 기자와 통화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은 검찰을 권력에 예속시키고 권력의 주구로 만들었다”며 “본인이 한 일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탐욕과 망상과 사치와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지혜의 원천이다. 만일 네가 진심으로 정욕을 극복하고자 하는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정욕에 지배당할 때가 있더라도 너에게는 정욕을 이겨낼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부가 단번에 말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고삐를 내던지지 않고 계속 잡아당기면 말은 언젠가는 서게 되어 있다. 정욕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싸움터에서 백만 군대에 이기는 자보다 위대한 승리자이다. 모든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훨씬 낫다. 타인과의 싸움은 언젠가는 질 때가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영원한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 (법구경) 남을 자기 자신처럼 존경하고, 자기 자신을 이기며,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야 말로 인애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높은 가르침은 없다. (공자) 젊은이여! 유흥이나 사치 등의 온갖 욕망의 만족을 멀리하라. 설사 온갖 욕망을 완전히 물리치겠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커지는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관능의 향락을 절제하고 미룸으로써, 네 즐거움은 더욱더 풍성해진다. 즐거움이 수중에 있다는 의식은 그…
제20대 대선 후 일각에서 ‘진보종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2012년 19대 대선이 끝났을 때도 MB정권에 장악되었던 공영방송과 종편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결과 2013년 3월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가 출범하기도 했다. 볼일이 있어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낮이나 밤이나 채널A, TV조선과 같은 종합편성채널을 틀어놓은 가게들을 흔히 불 수 있다. 조중동의 수구적 논조와 정파상업주의를 그대로 방송에 옮겨놓은 것이 종합편성채널(종편)이다. 종편은 지난 2010년 MB정권이 당시 발행부수 1~4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신문사에게 ‘선물’로 준 방송국이다. 국회 본회의장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헌재의 결정을 무력화하면서까지 신문방송 겸영을 밀어붙였다. 미디어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여론다양성 확대를 이유로 들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국내미디어 산업은 글로벌OTT의 콘텐츠 공급기지가 되었고, 미디어 여론시장은 급격하게 양극화되었다. 그럼에도 종편은 시청률과 매출액 등 모든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2년 출범하던 해 종편4사의 시청률은 2.5%에 불과했으나 2020년 10%를 돌파해 네 배나 성장했다. 매출액도 2
우리는 타인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나의 힘을 타인의 힘과 견주어보며 나의 이익을 양보하도록 노력하라. 자신을 늘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고 타인의 존엄성 앞에 머리를 숙여라. (존 러스킨)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라. 말은 적게 하라. 묻는 사람이 없거든 절대로 입을 열지 말라. 그러나 질문을 받거든 짧게 대답하고 모를 때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른다고 하여라.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지 말라. 과장하지 말라. 높은 자리를 찾지 말고 그런 자리를 권하거든 받아들이지 말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즉 자신의 의무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면 네가 같이 살고 있는 이웃의 습관과 희망에 따르도록 하라. 네 의무도 아니며 이웃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일에는 구태여 나설 필요가 없다. 그러한 습관은 우상이 되기 쉽다. 우리는 모두 자신 속의 우상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피) 우리는 모두 타인 속에 자기의 죄악과 단점과 여러 가지 나쁜 습관을 똑똑히 비추는 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개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향해 짖어대고 있다. (쇼펜하우어) 만일 세 사람이 모인다
나는 1980년생, 밀레니엄 세대다. 라떼는 말이다. 엄마는 주부였다. 우리 엄마도, 친구 엄마도, 동네 형 엄마도 가정주부였다. 여자는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다 결혼하면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국룰이었다. 간혹 대학을 나와도 결혼하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정주부가 되어야 했다. 여자가 한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남자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힘도 못 쓰는 여자의 월급이 남자보다 적은 것이 불만인 사람은 없었다. 사무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자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손에 걸레를 들고 남자 부장님, 남자 과장님, 남자 대리님, 남자 선배님 책상을 닦아야 했다. 남자들 책상까지 닦아가며 일해도 월급은 더 적었다. 회사는 성별 분리호봉제를 대놓고 적용했다. 어느 대졸 여성 직원이 부장님 앞에서 “대학까지 나와서 책상 닦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냐”고 불만을 토로해 사무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나마 공감한다는 남자 과장이 “맞아 책상 닦는 것은 대학 나온 여자가 할 일이 아니야. 중고등학교 나온 여자들이나 할 일이지”라고 수습했다는 일화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이다. 어쨌든 책상은 여자가 닦아야 했던 시절이다. 성폭력 범죄는
어리고 예쁘고 춤 잘 추는 걸그룹에 점령된 지 오래인 방송에 노인의 노래가 장안의 화제다. 시니어들이 노래로 인생을 들려준다는 취지의 방송인데 (JTBC ’뜨거운 싱어즈’) 유독 85세 배우 김영옥 씨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와 82세 배우 나문희 씨의 ‘나의 옛날이야기’가 심장을 두드린다. 나이 든 목소리는 불안했고 발음, 음정이 엇나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집중하게 하고 콧날을 건드리더니 종내 눈물을 떨구게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도 그랬을까. 노년의 배우는 마이크 쥔 주름진 손으로, 뜨거운 것이 빠져나간 눈빛으로, 굽은 등으로...... 노래가 아닌, 80년 인생을 전했다. 그게 심금을 울렸다. 월드뮤직 가운데 가수의 삶을 알고 나서 좋아지는 노래들이 있다.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는 대단한 월드뮤직 명곡이지만 목소리가 내 취향이 아니고 노래, 음률, 가사도 마음에 와닿지 않아 즐겨 듣지 않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실제 삶을 담은 2008년 개봉영화(올리비에 다한 감독) ‘라비앙 로즈(장밋빛 인생)’를 보기 전까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1차 대전 중, 프랑스 변두리 지역 베르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