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주부 관광객을 정조준해 사살한 북한군의 총격은 ‘햇볕정책’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대북정책과 그 공허하기 짝이 없는 헛구호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특정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원칙을 왜곡하면서 등장했던 햇볕정책은 지금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관계를 규정한 햇볕정책은 천문학적인 거액의 뒷돈을 김정일에게 찔러주고 단 한 차례의 만남을 산 DJ의 ‘남북 정상회담 매수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햇볕정책 논자들은 끊임없이 퍼주면 이념과 체제의 이질성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단 이후 60년간 지속된 체제와 이념의 상이함은 남·북 주민의 삶의 궤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간극의 심연은 너무나 깊고 넓다.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쓰고 오랜 역사를 공유한 단일민족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과거가 현재에 와서도 남북이 같은 민족임을 자동적으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통일을 외치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는 민족주의적 열정만으로 체제와 이념의 간격을 넘어설 수는 없다. 체제와 이념은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구조적으로 바꿔놓는다. 그리고 체제와 이념이 사라진 후에도 그러한 삶의 방식은 강고히 남는다.…
존 글렌(John Glenn)을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만들어 준 유인인공위성 ‘프렌드십(friendship)7’호. 1962년 오늘 사흘 동안의 전시를 위해 우리 나라에 도착했다. ‘프렌드십 7’호는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다 24번째로 우리 나라에 왔다. 전시장 개막식에는 버거 주한 미국 대사 등 국내외 요인들이 참석했다. ‘프렌드십 7’호는 1962년 2월 20일에 머큐리계획에 따라 존 글렌을 태우고 4시간 56분에 걸쳐 지구궤도를 3바퀴 선회함으로써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35개 나라의 정상들이 1975년 오늘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모였다. 유럽안보협력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포드 미국 대통령은 동유럽 공산국가의 인권유린에 대해 거론했다. 이에 대해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인권보다 내정간섭이 더 큰 문제라고 응수한다. 각 국 정상들은 사흘 동안의 회의 끝에 ‘상호간의 국경 존중’과 ‘내정과 외교정책 불간섭’ 등 10개 원칙을 담은 이른바 ‘헬싱키 선언’에 서명한다. ▲독일 정치인 비스마르크 사망(1898) ▲‘메이지유신
매미 울음 소리가 요란하다. 더위가 극점에 달했다는 증거다. 매미는 땅 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을 지낸 뒤에 번데기로 되었다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지만 성충으로 생존하는 기간은 여름 한 철 뿐이다. 긴 기다림 끝의 짧은 삶이다. 매미의 울음에는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긍정적 이미지로는 시절을 정확히 알려 주어서 농사짓는데 도움이 되고, 칠팔월에 농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우는 매미는 농사를 마무리한다고 하여 ‘맘맘맘’ 소리라 한다. 부정적 이미지는 공연스레 울음소리만 요란할 뿐 이뤄내는 것이 없어서 허세와 허송의 상징으로 본다. 유교에서는 매미가 오덕(五德)을 지닌 곤충이라고 말한다. 머리 부분은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文)이 있어 일덕이고, 오로지 맑은 이슬만 먹고 살므로 그 맑고 깨끗한 청(淸)이 이덕이며, 사람이 먹는 곡식을 축내지 않으니 그 염(廉)이 삼덕이고, 다른 벌레들 처럼 굳이 집을 갖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사니 그 검(儉)이 사덕이며,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틀림없이 울며 절도를 지키니 그 신(信)이 오덕이다. 오덕은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제일로 삼던 사회에서 이도(吏道)의 조건이기도 하였다. 그 은덕의 상
경기도지사라는 자리를 청와대로 가는 길목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선의 무덤에 지나지 않았다. 이인제 지사가 그랬고 손학규 전 지사가 그랬다. 지역균형발전을 놓고 요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일거수 일투족이 온통 관심사다. 언뜻 김문수 경기지사의 행동과 말을 들어 보면 대선은 안중에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아예 포기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여기에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김문수 지사를 비롯, 당내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박 전대표와 정 최고위원이 활동영역을 넓히는 대신 김 지사는 대정부 공격이라는 다소 유별난 카드를 꺼내든 것이 다를 뿐이다.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김 지사는 정부의 선 지역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로 요약할 수 있는 지역발전 정책 기본구상에 강하게 반발하며 강한 어투로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권력잡은 지도자가 정신차려야 한다”(25일 기우회 월례회에서)거나 “대통령께서 데모하는 사람 봐주기를 한다면 우리도 촛불집회를 해야겠다”(23일 긴급 시장 군수회의에서)고 하는…
우리 경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외적인 요인으로 물가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반면에 민간소비는 도리어 더욱 위축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정치권은 이 난국을 맞아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어제도 오늘도 온통 현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네 없네 하면서 날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나 벅차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지금은 여야 간에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한다 해도 풀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을 형국이 아니더냐.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는 ‘성장’보다 ‘분배’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운용이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 즉 ‘사회양극화’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더욱 심화된 것도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어찌해서 그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었을까? 이에 필자는 우리 사회에 취약계층이 그만큼 폭넓게 구조적으로 포진해 있음의 반증으로 그 해답이 찾아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해본다. 그렇게 볼 때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회적 취
필자는 평론활동을 하면서 많은 화가들을 만나왔는데, 그들의 겉모습만큼이나 취향과 예술세계 또한 다종다양하다.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 중에 묻혀 그림에 매달리거나 또는 남들이 알아주는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고, 예술가로서 이목을 끌기 위해 계산된 쇼맨십을 드러내거나 매스컴 주변을 맴도는 작가도 있다. 이처럼 여러 부류의 작가들 중에서 어떤 부류가 이상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작가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작품의 개성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양한 성향의 많은 화가들이 이 시간에도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그들의 예술 창작 행위는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화가 이두식은 그림을 누구보다도 사랑해 왔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청년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이십대부터는 생계를 위해,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그리면서 당당하게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는 동안 그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예술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는 그림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도 다양하고 폭 넓었다. 그는 ‘좋은 예술가는 한곳
불법 촛불시위가 다소 잦아든 요즘 많은 사람들은 공권력의 실추를 걱정한다.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힘없이 무너질 수 있느냐는 거다. 힘없는 정부, 잔뜩 주늑든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이런 힘없는 정부는 국민들의 무기력감만 키울뿐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일때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폭력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언급은 국정 4대 원칙으로 공약해온 ‘자율·경쟁’ ‘배려·관용’ ‘법의 지배’ ‘감세·절약’의 확인이어서 기대한 바 컸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으로 시작된 촛불은 반정부 선동장으로 변모했고 불법·폭력이 난무했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훼손된 법 질서가 회복되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엄정 대응하겠다”는 기본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매맞는 공권력’으로 상징되어 온 경찰마져도 불법과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시위대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정부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공권력 바로세우기’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촛불집회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물렁한’ 대응이 오히려 폭력사태를 악화시켰고, 이것이 결국 막대한 사회적,
입학서류는 행정실에서 접수한다. 업무처리를 독려하거나 지시사항 전달회의를 주로 하는 교무실이 없다. 행정실에서는 ‘학부모편람(Parent Handbook)’을 내준다. 각종 규칙과 벌칙은 물론 학교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자료다. 학생들은 그 규칙들을 꼭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교장은 당장 학부모를 부른다. 교장은 권위적이지 않다. 훈시나 인사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다만 36가지 교칙에 따른 벌칙 적용에는 단호하다. 두 학생이 싸우면 대질신문 후 사건보고서 작성을 통해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학부모에게 통보한다. 사안에 따라 경고장 혹은 사건경위서 발부와 학부모 면담, 제적·퇴교 조치가 이루어진다. 사건경위서가 발부되면 예를 들어 일정기간 학생의 쉬는 시간을 박탈해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 교사들도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가 아니다. 학생이 규칙을 위반하거나 주의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학부모에게 알린다. 학부모들은 ‘학부모 지원모임(Parent Support Group)’에서 자녀교육 정보를 얻고 문제해결 방안을 찾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누구를 위해 기업애로를 접수하는 것일까. 얼마 전 취재 차 경기북부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새정부 들어 기업애로가 얼마 만큼 해소되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명박 정부들어 행정안전부, 중기청, 재정경제부, 경기도 등 각 기관마다 별도 전담조직을 통해 기업애로 처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기업인과 행정기관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기업 애로를 해결해 주려는 정부 노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과 행정력을 투자한다해도 노력 대비 성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행정기관들은 아직까지 기업애로 접수 시 문서 요구 등 접수기관 편의 위주의 운영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영세한 기업들은 사무직이 없는 경우도 있어 행정기관의 요구대로 문서로 정리해 민원을 접수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을 쏟아냈다. 기업인들은 “전화로 접수를 하면 대부분의 기관들이 문서로 접수할 것을 요구한다”며 “기업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기업인들이 행정기관의 편의에 맞추게 된다”고…
인간의 능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연재해다. 자연재해는 사전 예측이 어려운 데다 불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각종 보험제도다. 정부는 풍수해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 내지는 복구비를 지원받아 재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풍수해보험’을 도입 시행하고 있다. 이 보험은 2006년 5월부터 2년 동안 시범사업을 거쳐 문제점과 미비점을 보완하고 올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생소한 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료의 61%~68%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기초생활수급자는 94%)하고, 보험에 가입한 주민은 풍·수·설해 복구비의 90%까지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인데다 보험 가입 대상이 자연재해에 취약한 주택, 온실, 축산시설 등이 망라되기 때문에 도시와 농어민을 가릴 것 없이 관심을 가질만 하고 정부와 지자체도 적극 권장할 사안이다. 시행 기일이 짧다고는 하지만 2년 동안의 시범사업을 거쳤는데도 지난 6월 말 현재 전국 가입건수는 2만5천396건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도별로는 제주도의 0.7%가 가장 높고, 경기도의 0.1%가 꼴찌다. 꼴찌도 꼴찌나름인데 이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