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1교시 수업은 체육 시간이었다. 종이 울리자 교실 문이 열리고 체육 선생님이 들어왔다. 우리 학교는 운동부 특히 럭비부가 꽤 유명했고, 그 체육 선생님이 럭비부 담당 코치였다. 우람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선생님은 천천히 걸어 교단에 서더니, “1번부터 10번까지 일어나 봐.”라고 했다. 참고로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친구가 1번이었다. 그리고는 “앞에서부터 100m 달리기 몇 초야?” 하고 물었다. 우리는 1번부터 차례로 자신의 100m 기록을 대답했고, 그 당시 4번이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18초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열 명의 대답을 모두 들은 후 두 명을 지목했고, 방과 후 럭비부실로 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키와 덩치가 크고 달리기 속도가 괜찮은 아이들을 럭비부로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덩치와 달리기, 기준은 참 간단했다. 내가 그 순간 “13초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라면, 내 고교 생활은 아마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음악의 경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관련 서클은 전무했고, 고교 진학 후에도 교내에서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는 합창단 정도밖에 없었다. 중학교 시절 이미 록키드
환경교육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재활용이다. 우리가 평소에 분리수거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 알면 분리수거를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면서 참여한다. 환경 수업에서 페트병을 모아서 새롭게 만든 의자나 소파처럼 큰 가죽을 잘라 지갑이나 가방으로 재창조하는 건 너무 자주 해 온 이야기였다. 새로운 수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양말목’을 알게 되었다. 처음 ‘양말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무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이름 끝에 ‘목’이 들어가는 행운목처럼 양말처럼 생긴 작고 귀여운 식물을 떠올렸다. 다른 선생님들도 단어를 듣더니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목재의 종류냐고 되물었을 정도로 생소했다. 글자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데 이 아이템으로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양말목은 양말을 만들고 남는 천을 말한다. 공장에서 양말을 제작할 때 뚫려있는 앞코를 꿰매고 윗부분을 잘라내면 머리끈 모양의 천이 남는데 이게 양말목이다. 양말 한 켤레에는 양말목 하나가 반드시 탄생하고 대부분 그대로 버려진다. 끈 하나가 얼마나 많은 양이 될까 싶지만 하루에 몇천, 몇만 켤레의 양말이 만들어지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버려지는 양말목 천 조각을 모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아도르노는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리면 아도르노의 절규는 상식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줄기차게 서정시를 써왔다. 아도르노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통탄해했을까. 우리나라의 사정은 더할 것이다. 통계로 잡힌 건 없겠지만 생산되는 시 대부분이 서정시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등식이 성립한다. 서정시는 인간과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문학 장르라는. 이 등식이 맞으면 아도르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도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학살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그렇다. 서정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서정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우슈비츠 등 인류의 숱한 학살을 형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명란 시인의 '아우슈비츠 이후'가 좋은 예다.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부분) 그렇다면 서정시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떡은 우리의 오래된 문화로 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의례나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떡이다. 굿을 하려고 해도 떡이 있어야 하고, 개업을 하거나 이웃에게 인사할 때도 떡을 돌린다. 떡은 만들고 나누는 전통적 관습으로 지난 1일에는 ‘떡 만들기’ 문화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루 내고 쪄내고 삶은 과정이 번잡한 떡 만들기 중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고 선물하기 좋은 것이 꼬리떡이다. 꼬리가 있어 꼬리떡이다. 꼬리떡은 익어가는 가을처럼 색의 조화로 운치를 더하는 떡 종류 중 하나이다. 쌀가루는 찰지게 반죽하여 모양은 잎사귀 모양으로 손으로 비벼 꼬리를 만든다. 반죽이 무르면 꼬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문양이 새겨진 떡쌀을 박기도하고 동그랗게 말아 왕사탕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다른 떡에 비해 만들기도 쉽고 선물로 이웃에 나누어도 손색이 없다. 색의 조화를 넣어 멋을 내는 것은 결혼이나 의례 행사가 있을 때이다. 고향이 북쪽인 나에게 꼬리떡은 반갑고 익숙한 음식이다. 일상적으로 쌀가루가 아닌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 식으면 굳어져 꼬장떡이라 하기도 한다. 가루만 있으면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모양도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세 손가락 도장을…
북한은 지난 10월 10일 대대적인 열병식 대신에 ‘자위-2021’이라는 국방발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전람회에서는 국제사회가 우려해 왔던 각종 신형무기가 전시되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무기개발은 남한과 미국이 아닌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기념연설을 하였다.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은 자위적 차원에서 개발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이중적 기준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무기개발은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북한은 한미일 안보수장이 회동하고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미국에서 종전선언과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는 시기에 신포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란 듯이 발사하였다. 대화 논의는 진행되면서 실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기간은 북한에게 있어서는 신형무기 개발 등 군사력 강화를 하기에 적절한 기간이다. 남한 및 미국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가 ‘도발’로 규정하는 군사력 개발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 전 군사력 개발은 북한에게는 대화에서 상대방의 양보를 유도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충분히 활용 가능
고통의 감각이 육체의 보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인 것처럼, 마음의 고뇌는 우리 영혼의 보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만약 대기의 압력이 없다면 우리의 몸이 파열하는 것처럼, 인생에 빈곤과 가혹한 노동, 그 밖의 여러 가지 불행한 운명이 찾아드는 일이 없다면, 사람들의 오만은 계속 기승을 부리다가 비록 파열하는 위험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급기야 비할 데 없는 어리석음과 광기의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 고뇌는 활동에 대한 박차(拍車)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활동 속에서 생명을 느낀다. (칸트) 지상의 삶에서 갖가지 불행을 겪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를 신성한 정신적 고독 속으로 이끌어, 자신이 고향에서 쫓겨난, 어떠한 지상적 기쁨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행위의 동기는 순수하고 행위 자체도 올바른데, 여기저기서 그를 반박하고 비난하거나 나쁘게 생각하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 허망한 명예에 대한 해독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는 세상에서 천대받고, 멸시당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네요. 안 대표의 대권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지요. 그가 밝힌 대선 출마의 명분은 “첨단 과학과 첨단기술의 힘으로 국가 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군요. 안 대표의 출마에 신당 창당을 모색 중인 김동연 전 부총리 쪽에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게 이채롭네요. 김동연 캠프의 송문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선거 때마다 출마가 직업이 되어버린 ‘대선 놀이’를 멈춰야 한다”며 구태 정치라고 깎아내렸군요. ‘또 또 또 출마 선언’, ‘국민의 힘 2중대’라는 말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작심 발언 맞네요. 언론들의 반응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안 대표의 ‘말 바꾸기’ 이력들을 열거하면서 맹비판을 가하고 있네요. 그래도 안 대표가 이 정도의 십자포화를 못 견뎌낼 것 같지는 않아요.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는 이제 민심을 자극하는 시빗거리로서 별 효용성이 없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얼굴에 철판 깔고 막 밀어붙여서 성공한 사례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2017년 5월 대선 패배 후 ‘자숙’을 말하던 안 대표는 불과 20여 일 만에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었고, 지난해 12월 20일 4·7…
정신생활에 있어서의 일의 중요성은 그 물질적 의미나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되며, 그 선의에 의한 노력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할 때, 자신의 다양한 욕망을 정화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극히 평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뭔가 매우 어렵고 놀라운 일을 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실은 전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페늘롱)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일을 사소한 일이라 하며 하지 않는 사람은 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알고 보면 그것이 그에게 너무 작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일이기 때문이다. (표치) 너는 일을 완성시킬 의무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너에게 일을 맡긴 신은 너의 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신은 하늘이 맡긴 일을, 즉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다. (중국 지혜) 사람은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괴테) 자신의 ‘자아’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자주 논쟁적 이슈를 던지고 있다. 지난 27일 이재명 후보는 “하도 식당을 열었다 망하고 해서 개미지옥 같다. 음식점 허가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논란이 일자 이재명 후보는 “당장 시행한다는 건 아니고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불나방들이 촛불을 향해 모여드는 건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가까이 가 촛불에 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게 국가공동체를 책임지는 공직자의 생각해야 할 책임”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8일 이재명 후보는 주4일제와 관련해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4일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며 "장기적인 국가과제가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가급적 빨리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29일, 이재명 후보는 "고위공직자들은 필수 부동산 외에는 주식처럼 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해 다 팔든지, 아니면 위탁해서 강제매각하든지 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런 언급들은 당장 공약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은 아니라 하더라도 논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이재명 후보는 많은 논란 속에서 커온 정치인이라고 볼 여
문학의 연구대상은 문학 작품이다. 문학 작품의 장점은, 학문세계에서는 금기인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의 세계건 역사적 사건이건 학자들은 하지 못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픽션의 형식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추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무기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맹랑한 얘기로 역사와 현실을 오독하게 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다. 학문에서도 상상력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과 구별될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지식과 이론은 많은 경우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했다. 아인슈타인이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는 말도 상기하자. 상상력의 원천은 다양한 분야의 공부다. 시쳇말로 하면 지식의 융합이다. 한 분야에만 집착하는 전문주의에서는 발휘되기 어렵다. 우물을 팔 때도 넓게 시작해서 깊이 파 들어가는 법이다. 그래야 같은 전문가라도 융합형 전문가가 될 수 있다. 21세기가 요구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최명희의 『혼불』에는 “이 온 세상 삼라만상과 우주 공간의 음 가운데 무엇보다 음이어서 태음이라 하는 달”에 대해 이런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