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럽게도 검찰이 나근형 인천시교육감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하고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감사원이 이미 지난 2월 승진조작을 적발해 수사 의뢰한 사건이다. 지난 6월에는 나 교육감의 측근인 전 행정관리국장이 근평 조작에 관여했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검찰이 내놓은 지난 5일 발표만 보더라도 나 교육감과 전 행정관리국장이 짜고 총 6차례에 걸쳐 측근 인사를 부당하게 승진시킨 것으로 돼 있다. 범행이 나 교육감의 지시로 이루어진 게 확실한데, 왜 나 교육감은 불구속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나 교육감이 선출직 교육감 신분이고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이상한 두호일 뿐이다. 선출직 교육감이기에 더 강력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자칭 “50년 교육경력자”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나 교육감은 시교육청 직원에서 최소 1천926만원을 받아 챙겼다. 그는 여전히 대가성 없는 금품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공여자들로부터 진술을 확보했고 대가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불구속 수사는 더욱 석연치 않다. 일
2011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만5천9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43.6명, 33분에 한 명꼴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친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자리 8년 연속 유지’라는 불명예도 모자라 높은 자살률로 유명한 리투아니아를 제치고 우리나라가 자살률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2011년 세계보건기구 집계) 우리나라의 자살자수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지난 2001년에 발발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의 공식 사망자는 총 3만여명이 되지 않는다. 연간 숫자로는 1년에 2천400명 정도가 전쟁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려 한해에 1만6천여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미사일과 총알이 난무하고 수류탄과 지뢰가 터지는 살상현장인 전쟁터보다 우리나라 자살자수가 연간 7배 정도나 많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자살의 공포에 둔감해져 있다. 앨프레드 알바레즈가 쓴 ‘자살의 연구’라는 책에서는 ‘자살은 자살자 개인의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자살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질병으로 인해 개인적인 고통뿐 아니라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경우를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89년 7월 전국민건강보험 실시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강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들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보험료가 비교적 싸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의료보험으로 알려져 있으며, 건강보험료율을 보면 5.89%로 일본 8.2%, 독일 14.86%, 프랑스 13.85% 등 OECD 국가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또 건강 수준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기대수명은 80.7세(OECD 평균 79.8세), 인구 1천명당 영아 사망률은 3.2명((OECD 평균 4.6명)으로 국민건강 수준이 매우 양호하다. 그러나 국민의료 접근성을 평가할 수 있는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12.9회(OECD 평균 6.5회)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보장성, 부과체계의 불합리성,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부족 등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0년 7월부터 지역과 직장조합이 통합돼 단일 보험자
적어도 한국 문단에서 절망을 노래한 시의 최고봉은 이 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기형도, ‘빈집’ 全文). 세포마다 절망으로 가득찬 시인의 생은 그래서 29년 19일로 멈춰있다. 절망을 유전자로 안고 태어난 인간종(種)이 지구상에서 머무르기 딱 좋은 시간이다. 혹자는 요절의 아쉬움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한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하략)….’(최승자, ‘삼십세’, 前文). 환절기도 아닌데 최근 들어 부고(訃告)가 넘쳐난다. 장마는 하늘이 이들 영혼을 옮기려는 또 다른 음모, 대운하(大運河)인가 싶을 정도다. 최근 사망한 탤런트 박용식 씨의 사연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아리다. 신군부의 수장인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출연을 정지당했으니 말이다. 그
여름이 중심을 지나고 있다. 한껏 달궈진 태양과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비집고 강원도로 휴가를 나선다. 고속도로 구간 구간이 정체에 들기도 했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에 즐겁기만 하다. 3대째 원조라는 간판을 능소화가 환하게 밝히고 있는 막국수 집으로 들어선다. 숲에서 뛰쳐나온 풀벌레 소리에 붉어지는지 검붉게 익어가는 텃마당 고추와 멀쑥하게 자란 옥수수가 고추잠자리를 불러 모으는 정겨운 풍경이다. 음식점엔 앉을 자리가 없어 번호표를 받고 밖에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 일행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난리법석이다. 신발은 뒤엉켜 나뒹굴고 주문을 위해 직원을 부르는 소리며 추가 반찬을 달라고 외치는 소리로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막국수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서둘러 먹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방송의 어느 프로에 소개되었다는 현수막과 방송인과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걸어 놓았지만 이 음식점에서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실로 어려웠다. 방송에서 전국의 맛집을 소개하다보니 몇 집 건너 한 집은 방송에 소개된 집이다. 심지어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성과 맛으로 승부를 건다는 현수막을 내건 집도 있으니 얼마나 많은 음식점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직장인들이면 거의 매일하는 고민 중 하나다. 그러나 메뉴선택과 비용을 놓고 고심은 따르지만 짜증보다는 행복과 기대가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업무 이외에 대화와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직장 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은 비록 한정되어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점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의미처럼 마냥 편한 시간이 아닐 때도 있다. 직장동료들, 특히 부서 및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 먹는 기회가 많아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나 혼자 따로 먹고 쉬려고 해도 그것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의 직장 문화가 이를 허용치 않는다. 사실 점심이 ‘세끼’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고 살았다. 영조 때 문신 조중회(趙重晦)가 45년간 관직생활을 기록한 입조일기(入朝日記)에도 조선시대 관리는 아침과 저녁 두 끼가 기본이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그 이후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원래 ‘두 끼’가 기본…
또 발이 묶이다/이상훈 우물가에 쪼그려 앉아 어떻게 하면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길어 올릴까 궁리궁리한 끝에 결국 포기했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려고 푸줏간에서 저울을 빌려왔다 눈금 읽는 방법을 몰라 도로 가져다주었다 옆 마을 용한 점쟁이 왈 금년에는 애정운이 안 좋은 괘가 나왔다 하여 몹시 실망하여 점집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루마기 편지지 낱장을 사서 왔다 손꼽아 기별을 기다리다 못 견디어 심부름 값을 주고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찬 겨울이 오기 전에 낙향하려고 주섬주섬 봇짐을 싸는데 기러기가 먼저 찾아오는 바람에 또 발이 묶여 일 년을 더 눌러앉아 살기로 했다 -이상훈 시집 <나비야 나비야>에서 사람은 꿈을 꾸며 산다. 꿈이라도 있어야 이승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꿈을 꾸지 않으면 인생이 참 팍팍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꿈은 꾸어보았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루어지는 꿈과 시인의 꿈은 좀 다르다. 시인은 이루어지는 꿈은 처음부터 꿈이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왜, 글을 쓰는가?” “문학하면 배고프다.”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당연하다. 각기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다르고 글을 쓰는 자세 또한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세상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느끼고 싶은 충동에 글을 쓴다”라며 행동의 전제조건임을 표했다. 칸트는 “자연적인 미에 예술적인 미를 접근시키기 위한 행위”라고 했고,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지도자인 빅토르 위고는 “진보를 위한 예술을 한다”라고 했다. 누군가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는가 하면 최고의 고독을 즐기기 위함이라고 상반되게 언급한 사람도 있다. 이렇듯 글쓰기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개성적인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헝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과 동시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이기도 하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
역사상 초유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일은 국가정보기관의 위상추락은 물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표어대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보기관이 국가안위와 무관한 일로, 양지에서 난타당하는 모습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야의 막무가내식 당파이익 추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가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합의해 놓고도 여야가 극한대치로 치닫고 시한이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사범위와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 직원 댓글 관련 의혹 국정조사’다. 즉 국정조사의 범위가 국정원 직원의 댓글에 관한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나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 혹은 무단불법 사초열람 및 공개라는 의혹을 갖고 있지만 이번 국정조사 범위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야당은 NLL관련 논쟁에서 궁지에 몰렸던 것이 사실이고 국정원의 협조 하에 이 이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