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지문등록이란, 14세 미만의 아동이나 치매질환자 등이 실종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경찰에 지문과 얼굴 사진, 기타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실종 시 등록된 자료를 활용해 신속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최대한 빨리 찾고 싶은 마음뿐이겠죠?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를 가슴 아픈 상황을 대비해 지금 바로 가까운 지구대·파출소, 또는 경찰서 여성청소년과(계)에 방문하셔서 아이들의 지문정보를 등록하시는 게 어떨까요? 방문 전, 집에서 안전Dream 홈페이지(www.safe182.go.kr) 또는 모바일 앱 안전Dream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정보를 등록하신 후 방문하시면 보다 손쉽게 지문등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설마 우리아이에게 이런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수원서부경찰서 매산지구대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를 ‘실종아동 등 프로파일링시스템’을 통해서 부모에게 인계한 사례가 있습니다.(5월 6일자 경기신문 보도) 당시 부모를 잃어버리고 수원역 부근…
‘갑·을(甲乙) 관계’의 논란이 진행형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그렇다면 병원에서 의사는 갑인가, 을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논쟁 결과, 의사는 을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명쾌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갑의 정의가 “비용을 지불하고 재화와 용역을 제공받는 입장”임을 감안한다면 을은 반대로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는 을이고,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돈을 내는 환자는 갑이라는 논리다. 한편으론 수긍이 가지만 아리송하다. 국회에서도 지난주 이런 아리송한 논쟁이 여·야 간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윤창중이라는 메가톤급 이슈 때문에 수면 밑으로 잠겼지만 당시는 우리가 을이니, 너네가 갑이니 그야말로 ‘갑론을박’ 하며 지도부까지 나서 신경전을 펼쳤다. 신경전의 요지는 이렇다. 보도를 보면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정 총리가 요즘은 국회에서 민주당이 더 ‘갑’인 거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민주당은 원내의석 절반을 넘는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이 당연히 국회 관계에서는 ‘갑’이고 민주당은 ‘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도 과거에는 여
최근 진보정의당은 삼성X파일 폭로 건으로 노회찬 공동대표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노회찬 대표의 지역구에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가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이런 결정에 대해 일부 국민들은 기회주의적 결정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것은 국민들의 뜻이고 정치권은 그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준 것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안철수 의원은 새로운 정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임했고, 그 선언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효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새 정치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그의 언행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의 정당공천 배제와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기초단위 선거에서 정당공천 배제와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정당공천 배제가 과연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나 과거 우리나라 사례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냈는지, 현
그 자체로 행복한 것,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것을 하느님이라 부르던, 부처님이라 부르던, 아니면 ‘참나’라 부르던 바로 순일한 그 무엇을 느끼는 일, 절대순수를 만나 순수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을 믿는 것이고, 불자는 가장 순순한 마음을 담아 등을 켜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에 사는 우리는 언제나 순수할 수가 없다. 순수해지기 위해 도시를 떠날 수도 없고 속세를 버릴 수도 없다. 산으로 들어가 산이 되기는 더더욱 힘들다. 그저 우왕좌왕, 좌충우돌, 동분서주하게 만드는 이 산만한 도시에 살면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괴로워한다. 그 진흙탕이 내 속에 참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했다는 그 분! 그 말이 어찌 과대망상증 환자의 변이겠는가. 그것은 자기를 바로 보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고 으뜸의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자기를 바로 보는 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얀마에서 존경받는 비구 우 조티카의 책 <여름에 내린 눈>을…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세계숨은시인선/아담 자가예프스키『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문학의숲 늘 구원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우린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 때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비로소 위안을 생각하고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누구는 전지전능한 神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하고, 누군 종교를 떠올리고 누군 구원 따윈 없다고도 말한다. 나는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나라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오직 타인만이, ‘타인이 가진 그 시, 음악, 그림에서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는, 즉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인간
막걸리의 해외, 특히 일본 수출은 포천 이동막걸리가 일등공신이다. 우리나라의 막걸리 붐이 일기 시작한 2005년과 거의 동시에 일본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그때 한류 붐이 일었고, 특히 부담 없는 저 알코올 도수에, 피부 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더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이동주조가 최초로 TV CM을 하면서 인기는 더욱 치솟았고, 연이어 2010년에는 진로가 막걸리 사업에 진출, 최고 실적을 올렸다. 그 후 서울탁주가 캔 막걸리로 수출을 더하는 등 수많은 우리나라 막걸리가 일본에 진출했다. 그 덕분에 2011년도에는 ‘맛꼬리’란 일본 막걸리 호칭이 일본 경제신문이 선정한 핫 키워드 7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해의 수출기록은 2005년 대비 20배를 넘었다. 우리나라 막걸리의 일본 내 르네상스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의 막걸리 사랑은 우리나라 못지않았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런 막걸리의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이 장관이 지난주 포천시 이동주조 막걸리 공장을 찾았다. 전통주에 관해 조예가 깊고, 그중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가 이곳을
행인 2 /신동집 가지에 주렁 달린 열매를 보아라. 행인(行人)이여 반짝이는 한 알씩의 노래를 보아라. 할 일 마친 나무는 아득히 생각에 잠긴다. 열매들의 달롱이는 노래도 알 바 없이 나무는 대지(大地)의 다스림을 받아들인다. 해 짧은 날의 목숨을 한로(寒露)의 가지 끝에 걸어 놓고 떠나는 행인(行人)이여. 누구나 다 한 번은 마지막이 될 인사를 남겨 놓고 돌아갈 곳은 언제나 서리 묻은 원점(原點)이다. 길 떠나는 이여. 한로의 가지 끝에 짧은 목숨을 걸어놓고 떠나는 이여. 열매를 맺은 후 할 일 마친 나무가 대지의 다스림을 따르듯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無)로의 영원한 회귀, 그것이 삶이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다.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가는 우주적 삶이다. 시원에 이르는 길이다.
어느새 2013년 상반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잘 했던 점, 조금 더 노력해야 할 점들을 찾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곤 한다. 대한민국을 이처럼 한 사람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은 어떤 것들은 잘했고 잘못했을까. 또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처음 국가보훈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부처의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국가보훈의 역할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 역할과 중요성 인식에 부족한 것 같다. 국가보훈.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연 국가보훈에 대해 얼마나 알며, 또 그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보훈’의 사전적 의미는 ‘공훈에 보답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일반적으로 국가 차원에서의 보훈, 즉 국가보훈을 일컫고 있으며 국가의 보은 작용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미조차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인 듯한 국가보훈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보훈은 존재한다. 통일신라 상사서, 고려 고공사, 조선 충훈부 등 우리나라도 국운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모두 보훈을 중시했다.
난감하다. 그 이름 세 글자로 귀한 지면을 더럽혀야 하나. 어지럽다. 그러나 해야겠다. 그 황망한 사태가 벌어진 후 내가 본 가장 짧고도 적확한 반응은 “윤창중. 자진해야 한다. 그것이 자네가 선택할 마지막 기회이다”였다. 한국 문단의 기라성 같은 시인과 소설가를 배출한 강원고등학교 문예부의 스승인 최돈선 시인의 일갈이다. 또 하나. 최근 페이스북에서 독설미학(毒舌美學)의 정수(精髓)를 선보이고 있는 홍성식 시인은 패왕(覇王)과 우미인의 예를 들며 이렇게 갈한다. “…/못난 놈. 저 하나 살겠다고 함께 일 해온 주위를 욕보이고, 딸 또래 여자애까지 ‘이상한 여자’로 몰아가는 이런 것들을 데리고 무슨 정치를…./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던 1979년 늦가을 밤. 김은 철몰라 찧고 까불던 차지철을 지칭하며 이렇게 일갈한다. ‘각하, 저런 버러지 같은 새끼와 정치를 합니까?’/내 보기에 쪽은 윤창중이 차지철보다 더 팔고 있다. 나라 쪽, 각하 쪽, 청와대 쪽, (전직)기자 쪽, 사내 쪽. 아니다. 마지막은 아니구나. ‘논어’에 따르면 ‘자신을 위해 자신을 변명하는 건 군자의 법도가 아니’기에.” 이미 사내가 아니므로 사내의 쪽을 팔 주제조차 못 된다는 이야기일 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