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서있는 나무 /김후란 밤새 눈이 내린 그 이튿날 눈밭에 발을 담근 겨울나무들 여럿이서 혼자서 세상을 응시하는 철학자 되어 장엄한 침묵 속에 서있다 모차르트의 ‘구도자의 저녁기도’가 흐르고 추운 겨울나무에겐 길게 흘러내린 그림자뿐 말없이 내게 기댄 그림자처럼 시와시 /2012/ 가을호/ 푸른사상사 적막한 풍경을 앞에 두고 서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고요히 창 앞에 서서 눈밭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이의 내면 풍경은 어떤 것일까. 봄날의 눈부신 새싹들, 여름날의 출렁임, 가을의 만추가 다 지난 다음 고요한 흰 빛 위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서있는 나무들은 침묵하는 철학자의 모습이겠다. 그것을 발견한 시인의 눈도 이미 세상의 연연하던 것들로부터 마음을 놓아 보내고 ‘구도자의 저녁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기순 시인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농특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보건진료소 설치는 의료취약지역 인구의 경우 500명(도서지역은 300명 이상) 이상, 5천명 미만이 돼야 한다. 이 법이 문제다. 특히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소규모 섬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악법이나 다름없다. 본보 ‘무의도(無醫島)라 아플 수도 없어요’ 제하의 기사(4일자 1면)를 보면 이 나라의 보건의료 행정을 알 수 있다. 서해안에 위치해 섬을 보유하고 있는 한 자치단체 관계자의 “섬 주민들이 많지 않은데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보건지소를 건립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코멘트가 우리나라 보건의료행정당국의 인식을 보여준다. 경기도 서해안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안산시 풍도와 육도, 화성시 제부도, 국화도, 입파도 등 총 5곳이다. 이 가운데 695명이 거주하고 있는 제부도에만 보건진료소장이 상주해 있을 뿐이다. 제부도는 섬이긴 하지만 하루에 두 차례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나타나기 때문에 육지의 병원으로 나갈 수 있다. 나머지 섬은 의사는 물론 간호사조차 없는 ‘무의도’이다. 풍도 119명, 육도 25명, 국화도 55명, 입파도 18명의 주민들은 실질
공자보다 39세 어린 자유(字游)라는 이가 가르침을 받으러 공자 앞에 섰는데 얼굴이 너무 못생겨 재능 또한 모자라지 않을까 의심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은 뒤로는 물러나 덕행을 닦는 데 힘쓰고, 밖을 나가 다닐 때는 지름길로 다니는 일이 없었고, 공무가 아니면 대부(大夫)들을 만나는 일이 없어 그를 따르는 제자들만 300명에 달했다. 이러한 평판을 전해들은 공자는 나는 말 잘하는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가 재여(宰予)라는 이를 잘못 보았고(재여는 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고 교제에 재능이 있었다. 공자가 그에게 말을 조심하도록 누차 말했음에도 그는 스승인 공자에게 거슬린 모습을 보였고 정당한 논리를 펼친 뛰어남을 인정하면서도 번지르르 한 말을 경계했다),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자유(子游)를 잘못 보았다고 술회했다. 사기에 용모로 사람을 판단하여 채용하고 재덕은 보지 않는다(勿取以貌)라 했고, 이언거인(以言擧人)도 이와 같다. 명마를 고를 때도 털만 보고 하지 말라 하였고(見毛相馬), 말을 고를 때 그림첩만 보고 고르지 말라(按圖索駿)했다. 행불유경(行不由徑)이라 하여 지름길만을 택해 가지 않듯이 편법을 취하면 당장은 좋지만 나중은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해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쯤이면 중요한 행사를 떠올린다. 올해로 스물아홉 해를 맞이하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한국여성대회이다. 3·8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을 기념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섬유 공장의 노동자였던 여성들은 생존을 의미하는 빵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빨간 장미를 들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했고, 1910년 코펜하겐에서 ‘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하자는 결의가 채택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1920년 3월 8일, 최초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했으나 일제강점기와 탄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85년부터 여성의 날을 다시 기념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 캄보디아 등 몇몇 나라의 경우 여성의 날은 국가가 지정한 공식 휴일이며 유급 휴가를 보장받는다. 2013년 한국여성대회의 이슈는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호주제 폐지, 여성인권 관련법 제정, 성폭력친고죄 폐지 등 알토란같은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가 존
현재 오산시의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따로국밥’이다. 나 홀로 의정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동료애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험악한 분위기다. 이런 상황이 연출된 원인은 무엇보다 동료의원 간 소통부재와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있다. 시의원은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집행부를 견제하는 게 본분이다. 하지만 오산시의회는 그야말로 오합지졸(烏合之卒) 그 자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 권익은 뒷전이고 당파적 이익이 최우선인가. 민주당 시의원들은 지난달 15일 같은 당 소속인 최웅수 시의장에 대한 제명결의안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그야말로 자중지란의 형국이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게 만드는 반(反) 지방자치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의회 의장 또한 의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의원 간 화합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키 힘든 상황이다. 의회의 상생발전을 위해서라도 당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지만 디딤돌 역할도 절실하다. 만약 민주당의 제명결의안이 ‘당리당략’ 때문이라면 지역 주민을 볼 낯이 없다. ‘특권층’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랬다면 더 큰 문
미국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다음 달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중도하차했던 안 전 교수는 정치권 재진입의 통로로 서울 노원 병 보선을 선택했다. 특유의 ‘간보기’와 뜸 들이기로 불확실성을 키우기 일쑤였던 그가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4월 선거에 직행하는 과단성과 승부욕을 선보였다. ‘정치인 안철수’의 진화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안 전 교수의 보선 출마결정은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현장수업을 밟아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주변의 출마권유를 뿌리치고 곧바로 대선무대에 올라섰던 그의 정치궤적을 되돌아보면 외견상으로는 ‘후퇴’지만, 5년 후를 염두에 둔다면 대권고지를 향한 교두보 확보라는 전략적 포석의 측면이 강해 보인다. 대선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 70여일 동안 숙성시킨 결론인 만큼 충분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다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전 교수가 가장 유리한 시기에, 그것도 가장 안전한 방법을 통해 컴백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과 지적이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원 병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안 전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집안 이야기지만 아들의 중학교 입학까지 입방아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부회장의 아들은 서울에서도 영재들만 모인다는 Y국제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를 잘해서 당당하게 입시전형에 합격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이 부회장은 ‘한부모 가정 자녀전형’을 이용, 아들을 ‘사회적 배려대상자’ 자격으로 좁디좁은 입학문을 통과시켰다. 이 부회장이 이혼했으니 한 부모 가정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본래 취지를 훼손시키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합법’적이지만 ‘정의’롭지는 못하다. 특히나 세계를 상대로 공정한 룰을 요구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의 후계자가 할 일은 아니다. Y국제중학교는 2008년 개교 당시 서민들은 상상치 못한 엄청난 학비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그러자 귀족학교라는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사회적 배려대상자’ 특례입학이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입학을 꿈꾸지도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취지다. 지구촌에서 손꼽히는 재벌가에서 자녀를 외국 명문사립학교에 보낼 수도 있지만 국민과 호흡하는 후계자 양성을 위해 노력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가지치기 /김왕노 가지치기는 아버지의 오랜 버릇이었다. 가지로 갈 양분을 열매로 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가지치기뿐이라는 것을 아버지 말씀하셨다. 아버지 가지치기 하던 전지 가위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새파랗던 날마저 벌겋게 녹슬어 있다. 벗어 놓은 장갑도 삭은 채 그대로 있다. 아버지가 가버린 것에 대해 합세해 항의하듯 아버지 가신 후 작은 열매만 맺는 배나무도 무성해진 잎만 철마다 대놓고 내 눈앞에다가 흔들어 대는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들고 세월의 웃자란 가지나 쓸데없는 가지를 신나게 전지하고 싶던 튼튼한 전지 가위 하나 아버지 가신 후 나마저 녹슬어 버려 날마다 후회로만 푸르러 가는 것이다. 시인은 포항 출생으로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이 땅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크고 슬프다. 그것은 과거회귀로 삶을 성찰케 하거나 암울한 시절들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해가 바뀌면서 육체와 정신의 그믐은 타락하기도 하고 기능대로 역설적인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시인의 진술처럼 열매를 가져다주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늘 새로운 마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위시켜주기도 한다. 또 기다림의 자세와 미학은 늘상 반복되는 나무들의 단상만 아니더
휴일 아침 반가운 얼굴들이 한적한 관공서 마당으로 모여든다. 모두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활짝 웃는다. 아침부터 예고된 비가 서둘러 하루 전날 밤부터 내려 나들이 길을 열어 준다. 청명한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상큼했고 주위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벌써 눈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혹한에 사무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던 생각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새소리까지도 한결 맑고 높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돌다보니 하늘빛을 쏙 빼닮은 바다가 눈으로 들어온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해우소를 다녀온 사람들과 커피나 그밖에 간식거리를 손에 든 사람들과 한 데 모여 사진도 찍고 또다시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한참이나 동행을 한다. 연휴의 관광지는 음식점마다 북새통이다. 빨리 달라는 성화에 신발이 안 보인다는 투정을 들으며 들어간 곳은 기대를 능가하는 실망을 안겨준다. 뜨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커피를 한 잔 들고 낯선 곳에서 길을 더듬어 바닷가로 향했다. 멀리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나도 그 길을 걸었다. 오후의 봄볕이 쏟아지는 바다는 평화로운 그림이다. 부표에 빨강과 흰색의 대비가 선명한 깃발은